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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가. 여름을 싫어하는 나에게 여름을 더더 싫어하게 만드는 장마와 폭염의 반복. 집을 나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약속이나 나갈 일이 딱히 없다면 하루 종일 칩거를 자처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뜨거운 햇빛을 바닥에 푹 퍼져 이겨낸다.
첫 날은 날씨를 핑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즐겼다만.. 이틀, 사흘이 지나고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초조함과 조급함이 온 몸을 지배했다. 더위를 먹은 것인지, 동거하는 냥이들과 동기화라도 됐는지 어떠한 의욕도 나지 않는 무기력까지 찾아왔다. 지루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오늘이 됐네' 하고 다시 지루해한다. 여름이 지나면 나아질거야.. 합리화까지.
'無' 아침에 일어나 집안일하고 해가 뜨거워지면 방바닥에 퍼질러 TV만 본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면 운동하고 씻고 자는 반복된 일상. 새로운 일을 굳이 하지 않았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 어제를 반복하는 오늘. 그러나 매일의 반복은, 그것도 비생산적인 매일의 반복은 되려 몸과 마음을 잠잠해지도록 했다. 시야에 중요한 것들만 보이도록 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고양이, 집, 맛난 음식. 나에게는 어떠한 꼬리표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나'로서 온전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오늘에 행복과 감사함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되려 자족감과 자존감을 느낀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꿈의 방향을 잃지 않고, 공부며 계획이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어떠한 꼬리표도 없이 집에서 나로 존재하고 있다. 여행이나 가야 느꼈던 자족감과 자존감인데 도시, 그것도 집에서 긴 지루함의 끝에 느끼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루함이 지속되면 처음은 괴롭지만, 익숙해졌을 때 몸과 마음도 가라앉아 조용해졌다. 서서히 내가 본래 하고 싶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떠 사랑하는 존재들과 다시 하루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재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