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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Jul 18. 2024

서가에서 찾은 거울

3

 


 오랜만에 책 좀 읽을까 해서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을 갈 때면 늘 하는 취미 같은 행동이 하나 있는데, '서가 보물찾기'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무작정 찾아간 도서관에서 발길이 닿는 대로 책의 장르는 상관없이 끌리는 서가 앞에 발을 멈춘다. 그리고는 신기하고도 재밌어 보이는 책제목들을 찬찬히 살핀 후,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둘 골라 자리에 앉아 읽거나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서가를 구경하던 중, 재미는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드는 책이 있었다. '나의 핀란드 여행'. 내겐 인생영화 중 하나인 '카모메 식당'의 한 배우가 촬영 중 다녀온 핀란드 여행에 관한 에세이였다. '이걸 빌리면 과연 내가 다 읽을까?' 고민을 한참... 안 빌리는 게 더 찝찝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책은 다행히 심심풀이로 읽기에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핀란드에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난 저자가 겪는 핀란드의 모습. 언젠가 나도 핀란드를 꼭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하던 북유럽 특유의 여유와 디자인 그런 모습들이 책 속 장면들과 일치할 때면 여행 욕구가 더욱 샘솟는다.



"핀란드에는 아시아의 혼잡함이 아닌, 독특한 여유가 있다"



 어떤 여유일까? 궁금증 가득 안고 읽어본다. 핀란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나를 감화시킨다. 촬영 중 누군가의 휴대폰 알림이 울리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맥주 쏘기'라는 벌칙을 주어 촬영 끝에 모두가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하는 규칙이었다. 그래서 스태프들은 알림이라도 울리면 기뻐한다고.


 독특한 여유라는 게 이런 것일까? 이 에피소드를 곱씹어 봤다. 만일 내가 화를 냈다면 얻어지는 것은 뭘까? 감정을 쏟아내는 화풀이, 그 후 내게 오는 찝찝함, 상대가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 다운된 분위기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당장보다는 멀리 보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내렸다. 쉬는 날에는 여유가 있다가도 일상이 시작되면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좁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남의 작은 실수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못난 사람이 된다.


 머리는 또 어떨까? 24시간을 잘게 쪼개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의 계획을 짜고 그대로 이행한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친구가 놀란 적이 있다. 잠깐 친구를 만나고 다음 약속을 가야 했을 때, 나는 친구에게 "4시 50분에 출발해야 돼"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딱딱 시간 맞춰 움직이네,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나는 그런 내 생각과 행동에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장마에 집콕생활을 이어가던 중, 시간 말고 몸의 리듬에 따라 움직여봤다.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읽고, 할 일을 좀 해야겠을 때 하고. 딱히 큰일이 나지 않았다. 무언가 미루거나 못하는 일도 없었다. 그때 나에게 슬며시 여유가 생겼고, 남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겨 웃어넘기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핀란드 사람들에게 있다는 독특하고도 우아한 여유. 누군가 실수했거나 그 사람으로 인해 피해가 와도 적절히 서로 상처받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여유 있는 어른. 그러기 위해 늘 공부해야겠지. 장르 상관없이 책은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신비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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