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 얼그레이티

by 이안


일하는 곳이 공원에 있으면 조금 덜 헤집어진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바로 옆에 나무가 있는 벤치에 앉아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앞에는 분수가 물을 시원하게 하늘 위로 뿜는 강이 있고, 그 근처에 늘 오리 대 여섯 마리가 꽥꽥 울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도시락을 까먹고 있으면, 근처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오리 앞에 선다. 오리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뭐라도 얻어먹는다. 일주일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땐, 오리들은 저 멀리서 사람이 보이기라도 하면 꽥꽥 울며 다가갔다. 먹이를 잡아먹는 야생 본능은 어느새 사라지고, 울면 먹이를 받아먹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것이다. 점점 더 표독스러워지는 울음소리, 커지는 덩치에 처음 봤던 하얗고 보드라운 털의 오리가 아니었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요즘은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모든 일이 내 그릇에 넘치는 일들만 오는 것 같아 버겁기만 하다. 이러한 불안정함에 자신을 내맡기라는 것이 도교의 가르침이었을까. 외부의 불안정함은 내부의 편안함과 편리함만을 추구했다. 편안한 옷을 입고, 글 쓰기가 갑갑해 휴대전화만 붙잡고 생각을 쓰기보다 쓰인 생각을 보는 일만 지속해 왔다.


약간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너무 나쁜 녀석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당면하고 이겨내 더 단단해지기를. 조금의 기대라도 걸고 설령 실망하고 자책하더라도 버텨내기를.


오늘은 따뜻한 얼그레이티를 마시며 느리게 하루를 열었다.

이전 14화0014 오늘은 정보와 손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