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가 된 이유

사람을 간호하는 직업

by 미국간호사 Sophia

오늘도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 3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벌써 우리병원에 한 달도 넘게 입원하고 있는데, 필요한 수술이 자꾸만 취소되어서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이야기한 지가 벌써 네 번째다.


이 환자를 직접 담당한 건 세 번째인데, 처음엔 그냥 ‘환자가 병원에 왔구나’였고 두 번째는 일하며 다뤄야 하는 중요한 약물을 두 가지나 가지고 있어서 좀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인데 네 번째 예정된 수술이 취소되지 말았으면 하는 맘으로 자정부터 금식해야 한다는 당부를 환자에게 건네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미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해 조절해야하는 약물이 꽤 많았고, 피검사도 하루에 몇번씩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치료를 하고 있는 중임에도 제대로 치료효과가 난다고 말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결과가 보이는 상태였다. 항생제와 혈전용해제, 투석까지 하고 있어서 자칫하다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는 환자였다. 그러다보니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피검사 결과가 안정적이지 않거나 수술의 난이도 때문에 여러 회의를 거치느라 이미 여러번 취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욕도 있고 수술예정인 부위의 통증조절을 제외하면 컨디션도 비교적 괜찮은 상태라고 환자가 말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태를 안정시켜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우리팀의 목표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입원 당시에는 자살요인이 있는 환자로 분류되어서 병실에 시터(sitter)라고 부르는 간호사의 눈을 대신해서 환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사람이 배정되어 있었고,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하도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간호사들마다 고개를 내젓는 환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입원하고 2주 정도까지 병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음식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간식과 음료를 요구했고 사소하지만 자기가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콜벨을 수시로 눌렀다.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을 만큼 환자는 간호사와 조무사를 괴롭히는 지경으로 불러댔다.


나를 포함한 한국 간호사들은 대부분 미국의 간호사들에 비해 무척 관대하고 친절하다. 환자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가능하면 들어주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환자를 맡은 날에는 원래 이런 환자였지 생각하며 해달라는 걸 다 해주고 더 해줄 건 없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이 환자에게는 약물이나 간호적인 처치와 더불어 마음의 안정과 위로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필요한게 있다고 징징대는 편이 까칠하게 굴며 거절하는 것보다 나았다. 그래서 내 한 몸 피곤해질 각오를 하고 오늘 밤 만큼은 그 환자의 인생에서의 하루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환자는 이래도 오케이, 저래도 오케이 해주는 나를 보며 뭔가를 느꼈는지 내가 뭘해야한다, 뭘하자는 말만 해도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결국 환자들은 신체적인 치료와 간호 뿐만 아니라,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이다.




잠을 자 보겠다며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침대에 누운 환자를 뒤로하고 차팅을 하려 컴퓨터에 앉았다가 불현듯 환자의 나이를 보며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 환자의 나이 때 한창 엔클렉스를 준비하며 미국에서 일할 미래를 꿈꾸고 이직과 영어공부를 했었다. 남편의 응원과 지지가 아니었다면 당시 일하던 연구간호사 일을 계속하면서 나 하나 받아주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충성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몇 년씩 급여동결과 업무증가로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 끝에 세 번째 엔클렉스에서 미끄러지자 나는 이런저런 여러 이유로 그 일을 그만두고 미국 간호사 면허 따기에 사활을 걸었다.


출근하면 따박따박 월급을 주고, 이미 4년을 넘게 일했던 자리라 나에게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있어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함께 일하던 나보다 몇 살 많은 동료들을 보며 내 미래가 다르지 않겠구나를 느낀 시점부터 나는 뭔가 다르게 살고 싶었다. 편안하고 안정된 것이라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은 실은 안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던 나였다. 그렇다고 미국 면허를 따면 달라지는 게 있다고 보장할 수 있나? 그것도 사실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더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길을 가보자고 마음먹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게 나의 30대였다. 40대가 넘어서야 미국에 오긴 했지만, 그 시절 내가 결심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매일 사소한 일들로 불평불만하면서 또 기뻐하면서 내 인생을 합리화하며 살았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을 포기하고 미국에 올만큼 미국병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적당히 잘 벌고 인정받는 것으로 내 40대를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그걸 포기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안되었던 것뿐이고, 오늘 내가 만난 환자를 통해 나의 과거의 선택에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의 환자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는 저 나이 때 뭘 하며 살았었나?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환자들은 나의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고 용기 있게 받아들인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 특히 내가 본받고 싶은 성품의 환자들을 간호하게 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꼭 물어보게 된다. 그저 아픈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를 넘어서 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에서 배우고 반성하고 다짐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참으로 좋아한다.


20대의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응대하는 서비스직에 몸담았다. 그리고 그 일이 나에게 꽤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에도 대단하고 놀라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반대로 절대로 닮지 말아야 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인간의 삶과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내가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외의 몇 가지의 이유가 합쳐져 간호사를 선택했는데 지금 뒤를 돌아 나의 인생을 보면 참 잘 선택했고 열심히 달려왔다. 환자를 만나며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다 나의 옛 기억까지 더듬었는데 이런 생각은 내가 지금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가꾸고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러 상황의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입퇴원이 비교적 한국에 비해 빠르게 돌아가는 미국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맡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 참 많다. 내과여서 그나마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력과 배경을 파악할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기에 기계처럼 약 주고 의사처방만 급급하게 처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에서 내 몫을 하는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병원환경은 간호사가 간호에 집중하는 시간보다는 주어진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더 큰 환경이라서 전인간호를 하기엔 간호사의 희생이 많이 필요하다. 환자와 개인적인 대화를 할 시간도 없고,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일을 더 처리해야 한다.


적어도 미국에 오면 잠시라도 환자와 수다 떨 시간이 있고 그런 시간을 통해 더욱 간호사답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업무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오래 일한 간호사일수록 환자에게 많이 감정을 이입하고 진심으로 내 일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간호사로서 참 부러운 광경이다.


이렇게 오늘도 밤을 새워 일하고, 환자와 이야기하고, 지난날을 돌아보고 나의 현실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생각하다가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제발 수술이 취소되지 않고 무사히 수술실로 가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끝으로 퇴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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