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국만이 아닌 이유
내과병동이라서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겠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환자군이 이곳에는 있다. 그건 어떤 종류이든 마약에 해당하는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 우연히 접한 사람도 있고 모르고 시작한 사람도 있고 또는 통증 때문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가 중독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미시간은 오락용 마리화나가 합법인 지역이라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지만 마리화나는 피운다는 환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준으론 술담배는 안 해도 마약은 한다는(?) 이야기.
거기다 가까운 멕시코에서 불법적으로 미국에 넘어오는 마약 때문에 골치라는 뉴스를 보니 먼 태평양 바다 건너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라고 하던데 이곳은 오죽할까 싶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약물사용과 중독은 미국사회에서도 아주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선 활성화되어있지 않지만 미국에는 약물치료센터와 입원해서 치료받는 병동이 흔하게 있고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입원을 기다리고 또 재활을 한다. 하지만, 일반병원에 비해 시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치료를 제대로 받는 것이 쉽지는
않고 다른 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함께 치료를 받기 위해 일반 병원에 입원해서 중독전문가에게 협진의뢰를 하고 함께 관리를 하게 된다.
병동에 환자가 입원하면 기본적으로 환자나 보호자를 통해 의료정보조사를 하게 되는데 그 항목들 중에는 가정폭력이나 우울증, 술 담배 사용유무, 그리고 마약과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지를 묻게 된다. 대부분 순순히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말하지만 만일 숨기는 것이 있더라도 대답하는 대로 기록을 해두면 추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증거가 될 수 있어서 의심 가는 부분이 생기더라도 구두로 인계를 하고 우선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대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약물 중독환자를 만났지만 최근엔 약물뿐 아니라 본인의 기저질환까지 짬뽕된 아주 까다로운 환자를 담당하며 기 빨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늘 언급할 환자는 찐 약쟁이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마약에 손을 대고 담배도 중독(?)된 상태이면서 알코올중독에서 이제 공식적으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의 젊은 여자분이다. 술은 끊은 지 거의 1년이 다 되었다고 했고 담배는 최근에 피우지 않기
시작했지만 니코틴 패치나 껌은 싫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한 사유는 집에서 바늘을 밟아(?) 그 부위가 감염된 상태로 처음 와서 농이 차있는 부분을 긁어내는 시술을 받았고 항생제 치료를 받고 호전되어 퇴원을 했는데, 그 이후 욕실청소를 하다가 표백제에 그 발이 노출되어 다시 감염이 생겼고 재차 농이 생겨 긁어내는 시술을 받고 발을 꿰매지 않은 상태에서 입원하여 며칠간 상태를 확인하며 항생제치료를 받다가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하기로 해서였다.
나는 이 환자를 3일 동안 연속으로 담당했는데 첫날은 통증 때문에 약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별 탈 없이 밤을 보냈다. 그러나 내가 해주는 간호가 자기를 잘 맞춰준다고 생각했는지 갈수록 요구사항이 다양해지고 디테일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날 환자를 봤을 때는 그래도 통증이 약으로 조절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정도였다. 다만 술과 담배를 끊은 상태라고 했기에 금단증상은 막을 수 없었다. 약으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기에 특별히 해줄 것은 없었지만 먹는 것에 매우 집착이 심했다. 병력상 주의력과잉행동장애와 불안증이 있어서 조금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일단 지나치게 말이 많았다. 환자를 잘 파악하고 간호적인 치료가 필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환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태를 살피게 되는데 너무 말이 많고 요구사항이 많은 상태여서 집중이 요구되는 채혈과 같은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밤근무를 하는 나에게 저녁식사 이후에 제공가능한 런치박스(도시락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를 두 개 요구한다. 그리곤 호텔 룸서비스를 주문하듯이 다음날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메뉴를 읊어주며 주방에 오더를 넣어달라고 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원하는 메뉴를 몇 번씩 확인해 가며 식이오더를 넣어줬다(우리 병원은 간호사가 직접 오더를 넣을 수 있는 항목이 몇 가지 있다. 그 내용은 다음에 언급해 보겠다). 그러고도 또 몇 가지 스낵과 얼음컵, 푸딩을 주문하고서야 환자방을 나올 수 있었다. 당뇨가 없는 환자라서 그나마 실랑이를 안 해도 되어 다행이었다. 만일 당뇨까지 있었다면 줄 수 있는 음식도 제한이 있는 데다 저녁시간 이후에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자제시키는 것이 간호사의 업무이기 때문.
대망의 3일째 되던 날 밤은 다음날 수술을 앞두고 자정부터 금식을 해야 했는데, 이미 그날 오후부터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고 있었던 데다 금식으로 자정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할 생각을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자정이 넘어가자 배가 고파 죽겠다며 몇 시간 남았느냐 수술은 아침 일찍 가는 거냐 등등 참 여러 가지 질문들로 나를 말 그대로 달달 볶았다. 환자는 대부분 내 제안과 설명에 호의적이고 협조적이었지만 다음날 수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남은 음식들을 환자손이 닿는 곳에서 멀리 떨어뜨려놓고는 방을 나왔다.
그날은 이미 3일간 담당하던 환자들이 더 많아서 어려울 일이 별로 없을 예정이었는데 역시나 쉽게 흘러가질 않는다. 감사한 것은 그 환자를 제외한 다른 환자들은 큰 문제없이 잘 자면서 밤을 보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진통제를 주고 까무룩 잠든 환자를 확인하고는 차팅을 하면서 그 환자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 노트를 보며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카인과 IV drug(주사로 자기가 직접 마약을 사용하는 경우) 이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앞서 나를 힘들게 한 그 예민하고 지나친 모든 행동들이 마약에 노출되고 금단을 경험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퍼즐이 맞춰졌다.
역시 나는 내 몸을 힘들게 하는 환자보다는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환자들을 만나는 게 훨씬 힘들다. 매번 이런 환자들을 담당할 때마다 당연히 내공은 늘어난다.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게 되고,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상할 수 있는 일이더라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은 몇 번을 겪어도 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라고들 하지만 내 직업의 특성상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해도 일을 하는 시간만큼은 이타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해야만 한다. 평소에도 대부분은 이타적인 편이어서 스위치를 켜고 끌 필요가 없는 나여도 이럴 때는 정말 불 다 끄고 셧다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차라리 환자가 아주 이기적으로 나와서 내가 혼낼 수(?) 있는 정도로 무례하면 말이라도 하겠는데, 이런 류의 환자들은 자신도 자기를 어쩌지 못하는 데다 담당 간호사가 무언가를 해주면 너무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다스리며 환자를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간호사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내가 유일하게 이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존재다라고 주문을 걸며 내 마음을 다독인다.
꽤 오래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나라 마약경험자들이 어떻게 그 굴레에 빠져들고,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무슨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시작은 본인의 선택이기도 하고 또는 억울한 피해자에서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마약에 중독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마약만을 생각하며 살다가 범죄자가 되고 그런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마약을 끊어내는 노력에 평생을 쏟아야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겪어보지 않았어도 공감능력이 높은 나로서는, 해본 적 없는 그 마약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 느껴졌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끊어내고 더 이상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여러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마약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는 후유증들과 마약에서 깨어난 이후에 감당치 못하는 통증과 괴로움을 피해 또다시 마약을 찾으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포인트는 ‘마약은 끊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잊히는 것이 아니고 남은 평생을 마약을 다시 하고 싶다는 몸과 마음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만큼 사람에게 마약은 백해무익하고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런 사람을 환자로 만나다 보니 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평생을 살까 하는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 사건으로 죽음을 맞을 때까지 평생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에 끌려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러기에 적어도 내가 그런 사람들을 간호하는 간호사로 만나는 시간만큼은 미약한 힘이나마 그들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약에 찌든 환자들을 만나고 그 환자들을 간호하며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동료들에게 묻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전 세계 강대국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게 되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체계를 부러워했던 이유도 미국은 사보험으로 이루어졌기에 보험사의 입김이 무척 강력하고 제약사의 파워도 무척 크다. 보험사에서 인정하는 치료와 처방약에 따라 청구비용이 달라지고, 제약회사들은 보험사의 구미에 맞도록 합법적인 로비를 한다. 처방을 하는 의사들도 보험사의 인정이 환자에게 청구되는 비용으로 결정되기에 그들 아래 있는 경우가 많다. 진실과 바른 정보가 묻히기도 하고, 질병의 예방보다는 치료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도 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약을 많이 사 먹고, 치료도 많이 받으며 돈을 쓸 테니 말이다.
그러는 와중에 돈 없고 통증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처방약보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점점 약물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져야 통증조절이 가능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늦은 뒤다. 그리곤 다시 병원에 실려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치료를 시작하지만 그때는 치료도 어렵고 감당 못할 비용도 보게 된다. 슬픈 현실이다.
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던 이 환자를 3일 간 맡으며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이고 세계 1위의 선진국이기에 무조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꿈깨라고 해서 미안하다.
오늘도 약쟁이 소굴 같아 보이는 이 나라에서 내 몫을 하며 돈을 벌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다시 출근길에 오른다. 그리고 또 다른 약쟁이 환자를 만나더라도 그들을 위해 내가 하는 노력과 간호가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계받을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