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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Nov 20. 2023

간호사 그거 꼭 한국에서 해야 돼?

호주나 한 번 가볼까?

 간호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당연히 졸업 후 한국의 큰 규모의 병원에 취업을 하고 가능한 오랫동안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남과 다르지 않은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간호대학을 다니는 동안 호주와 미국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깨달았고 그 이후에는 변변찮은 나여도 어디에선가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졸업하기에도 학교생활은 벅찼고 졸업 후 병원에서 밥도 굶어가며 일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하면서 한동안 그런 꿈은 나에게서 없던 것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나의 만 30살 생일이 다가오던 가을에 이전에 내가 적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공부 이외에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던 몇 년 전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부분이었다.


해외로 워킹홀리데이 가보기.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간호대학 이전에 잠시 다녔던 대학을 함께 갔던 친구로부터였다. 장학금을 받았음에도 학비와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던 나와는 달리, 부모님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던 그러나 독립적인 내 친구는 불현듯 호주로 떠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아주 오랜 뒤에 들었지만, 그 친구는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호주간호사를 꿈꾸게 되었고 도전했지만 너무나 힘든 조건이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외항사 승무원이 되었는데 호주를 가보지도 못했던 내가 지금은 해외간호사를 하게 되었다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두 번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올리게 된 건 호주에 있을 때였다.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 일을 도와주던 일본인이 있었는데 영어를 무척 잘했고 나의 고정관념에 있던 일본인의 이미지보다 독립적이었으며 야무져 보였다. 그 친구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고 했기 때문에 관심이 간 데다가 같은 여자이면서 나보다 몇 살 아래였기에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홈스테이에서는 나 이외에 다른 아시안 학생들이 함께 머무르기도 했고 홈스테이 엄마와 아빠도 전문직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평일에는 집안일을 하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쉬는 날이나 볼일이 있는 날에는 외출을 하는 그녀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비록 그 당시 나의 영어실력은 아주 유창하진 않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상대와 이야기를 하니 의외로 많은 부분을 소통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각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연애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도 간호대를 졸업하면 아슬아슬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할 수 있는 기준에 맞을 텐데 취업을 하지 않고 호주에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잠시 설명을 붙이자면, 워킹홀리데이는 특히 영어권국가가 많이 해당하고, 일본과 유럽의 몇 나라도 해당된다. 자신이 원하는 나라의 일정을 확인하고 접수기간에 신청하면 선정 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만 30세 생일이 오기 전까지 신청이 가능하고, 추첨 또는 선착순으로 선정되는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며, 선정되면 만 31세 생일이 오기 전에 출국하면 비자의 효력이 인정된다. 내가 최종합격한 병원에서 약 9개월 정도를 근무한 시점에 출국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고, 신규간호사의 상급종합병원 적응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일하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면 도피의 경로로 워킹을 가자! 며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호주워킹홀리데이를 거금을 주고 신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만 30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호주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게 되었다.




예상한 대로 병원에서의 업무는 쉽지 않았다. 아니,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 병동에서 3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가 많은데,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을 하는-대부분의 간호사가 부러워하는- 부서에 배정을 받았고 그래서 이 정도 일이 힘든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하며 버티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입사 후 9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일을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갈 것인지, 계속 근무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국에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워킹을 다녀왔더라도 나의 인생이 뭐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그 기회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고민했던 점은, 현재 병원의 경력으로 다른 병원에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 1년 미만의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11개월을 하거나 12개월을 하거나 경력은 경력인데, 11개월의 경력은 0년, 12개월의 경력은 1년이라는 암묵적인 룰 덕분에 나는 남은 3개월을 채우고 더 나은 미래를 찾아보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규 때 이 경력은 임상 내 경력-병원에서의 간호사경력-으로는 가장 긴 경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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