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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Dec 11. 2023

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

여전히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간호사가 된 이유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이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실제로 일해보니 나에게 천직이며, 아픈 사람이 건강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고 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규간호사들의 병원 면접을 보면 아주 여실하게 드러난다. 병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하고 있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모른 채 다들 그렇게 취업에 목을 맨다.


 실상은 다르다. 어차피 직장 생활해야 하고, 같은 시간 일하면서 급여는 더 받고 싶고, 전문직이니까 여성으로서 대체로 만족감 있는 생활이 가능할 것 같으니 -작은 규모나 적은 월급 주는 병원 말고- 전국적으로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로 가득한 큰 병원에 취직을 하는 것이다. 미국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누구보다 그런 생활을 꿈꿨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점을 관리하고, 봉사활동 시간도 채우며 동기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앞서나가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럼에도 졸업하고 보니 현실은 더욱 암담했다. 일도 힘들고,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고, 경력이 없으니 급여도 많지 않고, 이런 시간을 얼마쯤 견뎌야 내가 원하는 삶이 주어지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일하다가 워킹홀리데이로 도망갈 생각으로 비빌 언덕을 만들어 놓았을까!




 나이를 먹어도 어렸을 때보다 어렴풋이 좀 더 상황을 알아채는 능력이 늘었을 뿐, 이를 대처하고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나이가 중요한 우리나라 사회에서 남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아랫연차로 일하는 것부터 부담스럽고 불편한 존재였던 내가 진정 간호사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이유를 아주 오랫동안 곱씹으며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하나를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목표나 이유가 없었던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분명 간호사라는 직업을 꿈꿔왔다는 말을 진심으로 했고, 간호하는 업무가 좋은 날이 더 많았는데... 왜 나는 나 자신이 간호사가 된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걸까?


 희미하고 불투명했던 나의 마음을, 10년이라는 시간을 넘기며 간호사로서 꽤 다양한 업무를 하고 살아남으며 드디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 모든 외부요인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 생각해 보니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1. 나는 누구보다 나의 인생을 성공하도록 만들고 싶다.

지금의 나의 일상을 위해서 과거의 나는 다시는 그만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열심히 달리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 이유는 비록 내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이와 경력에 시작점은 늦었을지라도 만회하고 더 나아갈 만큼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나에 대한 사랑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이루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야 행복한 존재지만, 다들 남이 주는 사랑만을 원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내가 나를 사랑해 줬을 때만이 그 누군가가 주는 사랑의 크기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하며 마음이 편안했다. 이걸 제대로 느끼기 전까지 나 역시 몰랐었다. 어쩌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는 업무가 내 정체성이 되어서 더 그랬던 건 아닌가 싶다.


또, 그저 성공이라는 목표에 다 달아야 하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린 경주마 같았다. 이제는 그 성공이 결승선이 아니며, 하루하루 내 인생에서의 성공을 말한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성공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다.


2. 나의 성공을 통해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노력쟁이들에게 내가 걸어온 것과 같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하염없이 헤매지 않도록 인도하고 싶다.

처음 내가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20대 후반의 간호대학입학을 도전하면서 정말 외롭고 힘들었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주변에 그 누구라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아니, 내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잘했든 아니든 말 한마디라도...


어디든 첫 발을 내디딘 경험을 해봤던 사람은 안다. 그 길이 얼마나 불안하고 어두우며 무섭고 떨리는 것인지를.. 나는 나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고, 두렵지만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 없지만 그런 마음을 일부러 모른척하고 나에게 응원을 했다. 그리고 이루어냈다. 성취한 뒤에 내가 돌아본 나의 길은 분명 쉽지 않고 어려웠지만 이룰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임에는 지금도 이견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쪽 길이 맞아요. 잘 가는 중입니다'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멘토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보다 더 멋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더욱더 멋진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름대로 내 인생을 결과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봤을 때, 나에 삶은 간호대학을 진학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었다. 진학하기 이전의 나는 물론 그때도 열심히 살아온 것은 맞지만, 내 삶에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지금처럼 변함없는 일종의 안정적인 삶은 가능했지만 나의 가능성이라든지, 잠재능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꺼내볼 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위한 노력까지는 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농담처럼 흘러간 대화가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잘생겼다'는 발언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입을 삐죽이며 '여자애한테는 예쁘다고 해주셔야죠 잘생겼다는 건 칭찬이 아닌 거 같은데요?'라고 답했고 그 답에 선생님은 '외모가 아니라 너의 내면을 말한 거‘라며 내가 가진 잠재력의 30%만 발휘해도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될 거다라고 하셨는데 그때 어쩐지 지금 이 대화를 내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는 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하다.


나는 몰랐지만 내 안에는 평범하게 남이 시키는 대로 안정적인듯한 삶을 살겠다는 시나리오는 없었던 것 같다. 길을 돌아가고 험한 루트로 가더라도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며 몰개성이 넘치는 존재가 되려고 그랬나 보다. 그렇게 나는 특이하고 남다르며 뭐 하나 쉬운 것은 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간호대학에서 새로운 공부와 인생을 시작하면서 나는 남들보다 제2의 인생을 빨리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전부라고 느껴온 것들을 자의 반 타의 반 내려놓고,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는 정년퇴직자의 느낌을 이미 그때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으로부터 15년이 흐르고 난 지금의 내 인생은?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미친 듯이 바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물론 여전히 부족함은 있지만 완벽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혹시 지금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망스럽거나 앞으로의 인생이 깜깜하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경험을 하는 분들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건네고 싶다. 여러분의 인생은 아름답기 위해서 힘들고 짜증 나며 버겁고 답답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에서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결국 우리의 인생은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흐른다. 그러니 나를 너무 다그치고 혼내지 말고 인내하고 응원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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