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며 쓰는 것과 돈 벌며 쓰는 것은 천지차이
사실 나는 영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니, 나는 예민한 청력 덕분에 음악과 언어 등 귀로 듣고 표현하는 모든 것에 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 음악을 참 좋아했는데 몇 번 들었던 클래식이나 성당에서 성가, 교회에서 찬송가 등 익숙한 음악은 머릿속에서 자동재생을 할 수 있었고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그 음을 정확히 찾아내는 능력이 있긴 했다. 후에 음대교수님을 알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듣게 되었는데 '절대음감'이라는 것을 내가 가졌던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계속 연습하고 사용해야지만 유지되는 능력이기 때문에 그때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라떼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웠는데 듣는 귀가 남달랐던 덕분에 영어를 잘하지는 못했어도 듣는 영역에서만큼은 남보다 빨리, 정확하게 익히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만 겨우 배우던 영어이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이런 나의 능력을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만으로 발전시킬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건 고등학교를 입학해서였다. 나의 모교는 내가 사는 행정구역에서 교육적인 변화를 시범적으로 시행해 보는 일명 '시범학교'로 당시에는 파격적인 영어교육을 시도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특별한 방법으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듣기/말하기/쓰기/읽기의 4 영역으로 나누어 네 분의 선생님이 한 분야씩 전담하여 수업을 해주셨고 특히, 말하기 수업은 캐나다출신 원어민 선생님이 하셨기 때문에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특별영어말하기 수업에 내가 참여할 수 있게 추천해 주셨는데 알고 보니 반에서 단 한 명만 추천을 받아서 참석할 수 있었고 대부분 각 반에서 반장, 회장이거나 성적이 가장 좋은 아이들이 참석했기 때문에 나는 내 수준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들과 함께 영어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부담스러웠지만 재미있었고 시험영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시간은 더욱 나에게 영어를 즐겁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특별수업 마지막날, 수업을 들은 아이들끼리 돈을 모아 방학 동안 캐나다로 가실 선생님께 특별한 선물을 해주자고 의견을 모았고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밝은 녹색의 넥타이를 준비해서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 선물을 받은 우리의 귀여운 캐나다 청년 선생님은 또 도대체 어떻게 그 넥타이 색상과 같은 정장을 찾아냈는지! 짠하고 나타나 마지막수업을 해주셔서 놀랍고 우습지만 무척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도 덩치에 맞지 않는 커다란 서양인들의 놀랄만한 귀엽고 감동적인 행동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DNA에 심겨있는 듯하다. 이런 경험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도 나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게 되었고-넉넉지 않은 형편이 주된 이유여서 무료교육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의 나의 영어의 초석이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그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영어는 웬만큼은 할 줄 알고, 재미있는 교과목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였다. 잘하고 싶긴 했지만 방법도 몰랐고 내 주변에 영어를 쓰는 환경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다니던 교회에서 필리핀으로 선교활동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영어를 잘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아주 크게 깨닫게 되었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 속한 섬나라이지만, 지리적인 문제로 식민지가 된 경험이 있었고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지만 모국어에 준하는 언어로 자리 잡은 곳이기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매우 편한 나라였다. 선교활동에 동행한 일행 중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언니와 오빠가 있었는데, 머물던 숙소에서 문제가 생기자 영어로 멋지게 해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영어를 꼭 배우고 잘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그 경험 이후로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살아볼 생각까지는 하질 못했고 그저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미국에서 왔던 교회오빠가 무료영어과외교실을 열어준 덕분에 가장 나의 컴플렉스였던 된장발음을 고칠 수 있는 또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특히, 한국인이 제일 어려워하는 L-R, B-V, P-F 발음은 사실 지금도 쉽진 않지만 그때 아주 집중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영어발음만큼은 어디 가도 꿀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행복했다. 물론, 발음만 정확하다고 해서 영어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내세울 것 없던 토종한국인에게는 무한한 발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동경(?)과 관심 덕분에 간호사가 되었을 때 호주와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미국간호사가 되기를 결심하는 데 그리 오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가 정말 좋았다.
그러나 미국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미국으로 간호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넘어야 하는 산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엔클렉스(N-CLEX)라는 미국간호사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이민비자 신청에 들어가 있는 비자스크린을 위한 영어점수이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기로 했으니 간호사시험을 치는 것까지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를 위한 직업을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예전엔 없었다고 알려진 영어점수요구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영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영어시험이라는 것이 우리가 한국에 살면서 평생 동안 치렀던 영어시험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징그러울 정도로 공부를 해야 했고 그 경험을 한 이후에는 영어에 대한 사랑(?)이 많이 식었다.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비영어권국가의 간호사들이 치러야 하는 비자스크린이라는 절차에는 영어시험을 필수로 넣어뒀는데, 지금은 미국 내 간호사의 부족이 심각하여 난이도가 평이한 시험-토익, PTE, OET-까지도 인정해 주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준비하던 당시에는 토플(TOEFL)과 아이엘츠(IELTS)만이 유일한 인정시험이었다. 토플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시험이기 때문에 도전하려고 했으나 스피킹 기준점수가 26점으로 너무나 높았기 때문에 아이엘츠를 선택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엘츠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스피킹영역이 나를 너무나 오랫동안 괴롭히기 시작했다. 스피킹은 면대면으로(in person) 내 앞에 원어민이 질문을 하고 내가 대답을 하면 점수를 채점하는 시스템이라 주관적인 기준이 있고 때로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점은 아무리 준비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에게 점수를 부여한다는 것을 아는 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이었다. 어쩐지 면접처럼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라도 해야 점수를 잘 받을 것 같다는 요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시험에서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수긍할 수 있던 점수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준비를 하는데도 말도 안 되는 점수를 주는 것 같아 속이 터지고 시험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도 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제는 점수를 못 받을 것 같아서 로봇처럼 매일 하던 공부를 하고 쳤던 시험에서 오히려 긴장이 풀려 자연스러움이 더해졌는지 평소에 치던 시험과는 다른 감독관의 반응을 알아채고는 혹시?라는 생각을 했고, 이는 나의 예상대로 아이엘츠 아카데미영역 스피킹 7.0을 받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좋아하던 언어 중 하나가 영어였고, 나름대로 오랜 시간 손 놓지 않고 공부도 했는데 시험에서 요구하는 점수를 받기 위한 길은 너무나도 험했고 달랐다. 아마도 내가 시험을 치는 요령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의사소통은 되었겠지만 잘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고생한 시간에 비해 허무하게 점수를 받고 나니 기쁜 마음도 잠시, 영어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냥 영어로 된 걸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었다. 사실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영어의 필요성과 절실함은 있지만 예전만큼 노력하지 않는 걸 보니 또 시험이라도 쳐야 공부를 하려나 싶기도 하고 어쩌다 이렇게 영어기피증이 생겼나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 공부했던 영어가 있기에 곧 입사할 병원에서도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준비하는데도 수월한 점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다시 심기일전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그래도 잘 한 고생이었구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고 잠시 공부를 하며 영어를 썼던 생활은 내가 돈을 지출하며 쓰는 것이었기에 모두가 나에게 친절했고 따뜻했지만, 이제는 영어를 쓰며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을 시작할 것이기에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마나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맨날 힘들고 어렵기만 하겠는가!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도 속 터지고 힘든 일이 없는 것이 아닌데 내가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나의 직업에 대해 존경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기쁜 일이고 좀 더 성공하는 삶으로 한 걸음 다가간다는 생각에 맘속으로만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ㅎㅎ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도 나의 영어와 같이 꼭 해야 하는 것이지만 징글징글하고 쳐다보기도 싫은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것이 아까워서 어거지로 하거나, 그것도 다 싫고 포기하고 싶어서 고민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면 체하는 것 같이 내가 도대체 무얼 위해 이걸 해야 하는 것인가 현타가 오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사는 것이 사람의 인생인가 하는 괴로움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 역시 투정했지만, 그래도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고 애써보니 그걸 넘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 주변에도 미국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그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의 행적이 쉬워 보였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엄청 긍정적으로 보는 것인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변명하는 것을 정말 많이 보았다. 그렇기에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빛나는 것 같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달리해보면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더라도 그것이 나를 위해 정말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안다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고 꼭 끈질기게 도전해서 성취해 내시길 응원한다. 그래야만 내가 느낀 그 기쁨을, 내가 받은 그 보상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하다면 작은 성공하나를 이루며 그 불안감을 떨쳐내고 나의 오늘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바꾸는 행동을 꼭 하기 바라며 나의 영어공부 회상기를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