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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May 13.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3-2

결국 제자리로.. 백수가 되다.

부서의 사람들은 대체로 좋았다. 새로운 식구들을 환영해 주었고 아직 어수선했지만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는 7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20대-30대 초반이었고 예상처럼 나만 기혼자였다. 이 중 이전 경력이 PA 또는 SA인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절반이 넘는 동기들이 지금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응급실, 병동 출신이었고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나는 수술방과 외래, 병동을 넘나들며 일해봤던 경험 때문에 한 번 가서 보고 듣는 순간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나의 업무인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수월했다. 부서출근을 시작한 후에는 나에게 따로 주어지는 일이 생길 때까지 알아서 공부하고 할 일을 하는 시간이 한동안 있었는데 멍 때리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젊고 열정도 많았으니 내 걱정이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서출근 둘째 주가 되면서는 출근하는 길도 익숙해지고, 업무를 위해 이동하거나 시간에 맞춰해야 하는 루틴도 생겼으며 회식 등으로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일 자체는 무리 없이 적응해 가는 시기였다.


그러던 내가 그 병원을 결국 그만두게 된 것은 어쩌면 사소한 이유였으며 근무한 기간조차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병원에 대한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나와 같은 일을 경험하는 간호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가능한 빠른 미래에 이런 일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일반외과는 항상 응급수술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분과이다. 그래서 외과에서 PA를 하게 되면 으레 오버타임근무와 당직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에 이 경우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주고 양해를 구하며 실제 업무 때 어떻게 일을 나누어할지 의논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병원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입사하고 3주가 지나자 갑자기 떠오른 의제인양 당직근무에 대한 이야기를 스멀스멀 했고 확정이 안된 것처럼 말하면서도 소문 같은 이야기로 며칠을 듣게 했다. 게다가 이미 면접 때와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간호사를 대접하는 방식을 습득하였기에 곧 억지로 당직을 하게 할 것이라는 촉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 PA들만 모여서 처음으로 회식을 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끼리 만난 건 처음이라 더 반갑기도 했고 기존에 일하던 선생님들도 같이 일할 동료가 많아져서 든든해하셨기에 기쁜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내가 감수하기엔 당직이라는 건 어려운 조건이었다. 당직날 병원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대기하며 연락이 오면 출근을 하는 일명 ‘콜당직’을 해야 하는데 콜당직은 연락받고 1시간 내로 병원에 도착해야 는 것이 보통 원칙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대중교통으로는 한 시간이 넘고 자가용으로도 40분가량 떨어진 곳에 거주 중이고, 새벽시간에 그 먼 거리를 전화 한 통을 받고 출근해서 일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병원은 외래와 병동을 담당하는 PA와 수술실을 담당하는 SA로 나뉘어있는데 당직은 모든 간호사가 다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예상한 업무와도 달랐다. 이미 이전 경력일 때도 수술실에서도 일은 했기 때문에 당직으로 응급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되지는 않았지만 외래와 병동 근무만이 입사 시 내 업무였고 당직은 없던 조건이었기에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고민할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PA, SA는 레지던트와 인턴(전임의)을 대신하는 업무이므로 응급수술등의 당직 이후에도 다음날 정규근무를 해야만 한다.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 수밖에 없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밤샘근무를 한 이후에 오전에 퇴근해서 쉬는 것이 아니므로 업무에서 실수나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는 위험성이 큰 상태에서 정신력만으로 일해야하기 때문에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기혼자라서라거나 또는 당직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 배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럼 핑계로 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선례로 인해 나이가 많거나, 기혼자들을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음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나는 결국 차라리 퇴사라는 결심을 하고 동기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했다.


약속한 듯 동료들과의 회식 다음날 당직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관리자를 맡고 있던 조장 간호사에게 퇴사의 뜻을 전했다. 고맙게도 나의 이야기를 전날 들었기에 이해해 주면서 간호부장과의 퇴사면담이 필요하고 그때 사직서를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가장 큰 빌런을 이때 만나게 되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가 갓 넘은 간호부장은 자신도 간호사이면서 간호사를 매우 우습게 아는 사람이었다. 관리자들이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을 테니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필연적인 사유가 있으니 나름대로 좋게 포장해 가며 설명을 했고 돌아온 이야기는 이러했다.

“내가 오늘은 급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

헛웃음이 났다. 네 말은 알겠는데 퇴사는 내가 정한다. 뭐 이런 건가?

그래서 나는 “네, 일단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부리나케 가방을 들고 나서는 간호부장 뒤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그리곤 락커에 유니폼과 아이디카드를 가지런히 넣어두고 잠금장치를 열어둔 채로 퇴근을 했다. 나는 면담을 했고, 퇴사의 이유를 밝혔으며, 퇴사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해봐야 내가 원하는 퇴사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같이 일한 동기들과 동료들에겐 인사를 하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웃기는 일은 다음날 또 벌어졌다. 모르는 휴대폰번호로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는 처음에는 절대로 받지 않는 습관이 있다) 그리곤 부재중전화로 바뀌더니 문자가 왔다. 간호부장이었다. ‘나 간호부장 000입니다. 많이 바쁜가요? 연락 주세요.’ 바쁜 건 어제의 당신이 아니었던가?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들을 말도 없는데... 그러고 나서 또 문자가 왔다.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입사해서 3주가 되도록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근로계약을 안 했는데 사직서를 쓴다? 내 상식으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무식한 방법이지만 나는 모르쇠를 시전 했다. 그랬더니 입사지원 때 사용했던 이메일주소로 사직원을 보내왔다. 그것 역시 작성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름답지 못한 퇴사였지만 이 병원과 얽힌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서 나는 일일이 정성껏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상태였고 모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피곤한 상태였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병원과는 다시 만나지 않길 바라면서 영영 헤어지는 시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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