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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Apr 30.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3-1

돌고 돌아 제자리로?

연구간호사의 길을 뒤로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던 중 드디어 엔클렉스(미국간호사 면허시험)에 합격을 했다.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면서도 합격 후에도 미국에 가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고, 당시엔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기 보단 그저 간호사로 일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바지런히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틈틈이 공부와 이직준비를 하던 차에 한 종합병원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간 병동에서 일한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려면 가능한 많이 병동간호사의 경험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규모가 큰 병원을 가게 되니 오히려 병동에서 일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지원서를 쓰면서 수술실과 병동을 선호하는 것으로 작성도 했지만 직군 시험이 끝나고 최종면접에 가보니 서류를 냈을 때 이미 내가 일할 부서는 정해져 있었다. 그건 바로 신규간호사로 근무했던 PA. 이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는 의사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법적인 업무를 많이 하는 간호사말이다. 일했던 것이 싫었다거나 그 업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이든 해외든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고유의 업무에 충실했을 때라고 믿기 때문에 면접에 갔을 때 당황하고 좀 속상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에 이제 40대가 가까워진, 약간의 경력을 가진 간호사를 반기는 종합병원은 없었다. 다만, 병원에서 원하는 부분의 경력이 있었고 나이에 따른 서열이 조금은 무뎌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경력자가 있어야만 하는 부서였기에 나에게도 면접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 PA면접을 보러 온 간호사들은 그날 면접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그룹이기도 했다. 한 분은 면접자 중 나이는 가장 많으셨지만 이미 그 병원 계열의 타 병원에서 오랜 경력이 있으셨고 거의 추천에 의한 합격이 보장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비교불가. 면접관이 추천인 이름을 물어보시곤 더 이상 질문 없음. 21세기에도 인맥과 학벌의 파워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다음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압박면접에 가까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래도 연륜은 대단하였다. 차분히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말하던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용기를 내었다.


내 차례가 왔고 니가 대단하고 일을 잘하면 뭐 얼마나 잘하느냐는 식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걸 빙빙 돌려서 좋은 말처럼 할 뿐이었다. 나이 든 간호사들은 그 자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자기 생각이 있고, 그만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하지 않아서 골치 아프다는 식이었다. 게다가 간호사를 뽑는데 도대체 인사과, 행정과, 이런 의료인이 아닌 담당자가 왜 질문을 하는 건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결국 나는 뽑을 테면 뽑고 말 테면 말라는 식으로 나를 안 뽑으면 너네가 아쉬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일을 잘해왔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며 나를 원하는 곳에서 일할 것이라고 답을 했다.


입사 후에 함께 면접을 봤던 동기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내가 압박질문에 전혀 쫄지않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듣고 감탄했다고 한다 ㅋㅋ 나이 많다고 대놓고 무시하고 자기들이 우리 목숨줄 쥐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화가 나서, 맘대로 하라고 나도 일 안 해도 좋다는 맘으로 이야기한 거라고 했더니 대단하다고 했다.


그 당시엔 그렇게 지나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참 안쓰럽다. 어려운 공부를 치열하게 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해도 의사처럼 독립적으로 일할 수 없는 의료인이기에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속할 곳을 가기 위해서 또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일하기 시작하면 환자와 다른 의료진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일은 다반사요, 가끔은 내가 비서인지, 호텔업 종사자인지, 청소여사님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은, 또는 가야 하는 병원에 항상 을이 되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마음이 다시금 문득 들었다.


아무튼 면접을 잘 마무리하고(?) 그 병원의 경력신규(?) 간호사가 되었다. 아, 이것도 할 말이 있다. 경력간호사면 경력이고 신규간호사면 신규이지, 당최 경력신규간호사는 어떤 의미일까? 내 짐작으로는 일은 경력자로서 해야 하지만 급여는 신규로 받는다는 말인 듯하다. 실제 그랬으니 말이다. 솔직히 나는 일하는 직장에 그리 큰 기대를 갖는 편은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무한정 퍼줄 수도 없으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고,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게 사람 아닌가. 돈은 줄 수 있는 최소한으로 주고, 일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시키는 경험을 간호사가 되니 참 많이 하게 되면서 직장이 생겼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첫 주는 전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내가 일하게 될 병원에 대해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병원은 봉사와 희생을 간호사에게 요구하는 곳이었다. 다른 직종에게도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간호사에게는 확실히 요구했다. 뭐 이미 봉사와 희생은 해왔으니 그걸 꼬집어 말한 것 이외의 차이는 없다고 보겠다. 오티가 끝나갈 무렵에 부서가 확정되어 공개되었는데, 역시나 내가 갈 부서는 신규 때 경험했던 정확히 그 부사였다. 앞서 말했던 일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비하인드가 있다. 수술실이나 병동경력을 만들고 싶던 나는 기존경력인 PA로 발령을 받았는데, 많은 수의 간호사들이 자신의 경력과 관계없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던 것이었다. 내 뒷자리의 동기는 소아과만 10년 경력이 있었는데 성인외과병동 중 하나로 발령이 나서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고, 수술실에서 4년 경력으로 입사한 다른 동기도 엉뚱하게 신생아중환자실에 가게 되는 등 정말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이 비하인드의 절정은 병원의 태도였다. 모든 간호사의 경력을 바탕으로 발령을 낸 것이니 만일 부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면 된다고 했던 것이다. 바꾸어주거나 고려해 준다는 말인 줄 알았다가 그 말을 듣고는 순간 ‘저건 또 무슨 아름다운 개소리지?’라는 생각에 일순간 강당이 싸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 내 옆자리의 동기는 더 이상 오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경력을 인정받아서 배정받은 부서이니 절대로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오티가 끝나고 부서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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