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걷고 짧게 생각하는 여행 첫 번째
게임 제작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방송 외주 제작을 하던 때까지, 새벽 기상은 기본이고 밤샘은 옵션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열정 부자였던 나는,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걸어보고 싶어졌다. 강의와 회사 운영 지원까지, 해야 할 일과 책임질 일이 넘쳐나던 그때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다.
보통 여행이라면 길어야 열흘 남짓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최소 서른 날 이상을 걸어야 한다. 긴 시간을 스페인에서, 그것도 매일 걷는 고행의 시간으로 보내기로 마음먹고 지인 모녀와 함께 2019년 성탄절, 12월 25일에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3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와 마주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 길에서 나는 메리와 비쎈떼라는 부부를 만났고, 우리는 걷는 동안 점점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 여행을 가면 머물고 있는 숙소 한편이나 때로는 캐리어나 큰 가방 속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도시를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신기하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대도시의 풍경,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보면서 ‘아, 여행 중이구나’를 실감하곤 했다. 더 많은 곳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고, 더 많이 느끼지 못해 아쉬워했다. 남들처럼 알찬 여행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남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순례길을 걷는 행위는 이전의 여행과 전혀 다른 시간을 안겨주었다. 여행이면서도 고행과 같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음 행선지까지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지도를 보고 한쪽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대부분 말이 없다. 그곳은 더 높은 하늘과 더 풍부한 구름을 보여주었다. 하늘의 색은 더 깊었다. 눈을 살짝 내리면 멀고 먼 땅이 보였다.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길 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앞으로 남은 길만큼이나 걸어온 길이 보였다.
고민도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아니, 생각이 단순해져 갔다.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그 마을에서는 쉴 수 있는지, 먹을 곳은 있는지에 대한 생각만이 남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목적지 마을에 과연 두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는 쉼터가 열려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겨울 시즌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쉴 곳을 찾고 허기를 채울 수 있으면, 그걸로 하루 해가 저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 삶이 이렇게 단순했던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매일이 위기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일 눈을 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는 떴고, 나는 달렸다. 어깨는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처럼 평온해 보여야 하는 날들을 위해 수면 아래의 발은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길 위의 시간은 먹고, 자고, 쉬고만 반복하게 했다. 오로지 나의 것만 하게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에는 앞으로 겪게 될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는 금세 후회와 방황으로 이어졌다. 너무 무거운 가방 때문에, 이걸 내려놓고 포기해야 하나 수없이 갈등했다. 그때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조금만 더 가보자”고, 지친 내 등을 슬쩍 떠밀어 주었다.
걷기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나자, 한국에 있었으면 숙제처럼 달라붙어 있었을 고민들이 하나둘 내 곁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가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거리가, 고민의 실체를 조금 더 멀찍이에서 보게 해주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나에게 의지하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맨날 나만 혹사당한다”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마음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서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싫어’, ‘아니야’, ‘할 수 없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못 했던 것이 결국 원인이었다. 그래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리적 가스라이팅을 남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계속 주입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이 나를 가둔 것 같았지만, 결국 내가 만든 방에 내가 스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셈이었다.
스무 날쯤 지나자 부드러운 흙길은 점점 줄어들고,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깔린 길이 길게 이어졌다. 도시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바닥과 다리는 점점 더 아파왔지만, 마음의 무게는 그와 반대로 가벼워지고 있었다.
눈을 뜨면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의 생각은 온전히 나에게만 머물렀다. 먹고, 걷고, 쓰고, 정리하기. 단순한 루틴 속에서 하루가 흘렀다. 그 반복이 오히려 편안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긍정 에너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순례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이 조금 더 착해지는 것 같다고, 누군가 말했다. 내려놓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포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좋고 싫음을 인정하게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날 흘린 눈물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대성당을 마주 보았을 때,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의 의미를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다.
800km를 잘 걸어냈다는 안도였을까.
스페인의 가족이 되어 준 메리와 비쎈떼와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이었을까.
그냥, 다들 우니까 나도 따라 울었던 걸까.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 길을 걷고 나서 소감이 어떠냐고. 나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고,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고만 말했다. 왜 걸었는지 화가 났다가, 자연을 보면서 명상 아닌 명상의 시간이 주어져 감사했다가, 급기야 무념무상해져 갔다.
잘했다. 도착했어. 애썼어.
그때의 나는, 그 정도 말밖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