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는 이제 그만~
제목이 새삼스럽다. 한 번에 하나씩은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해오다 보니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것이 더 이상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더불어 성격 또한 많이 급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0대 초반에 접어들 무렵 영상편집을 시작하게 된다.
게임제작 초기 시장 무렵 게임제작사에서 디자인을 할 무렵 영상이라는 개념을 접했고, 프리미어로 간단한 편집(프로그램 사용)을 할 수 있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 알게 된 회사는 기업과 군 홍보영상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때는 영상의 초기 인트로 혹은 제목을 3D로 만들었고, 그에 대한 아르바이트 정도만 생각하고 입사한 나는 어느 날 영상의 A컷 편집을 요청받았다.
" 저 영상편집 할 줄 모르는데요~ " 생각해 보니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에 대해 참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 자르고 붙이는 것은 할 수 있지? "
"네 그 정도야 뭐~"
근데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나는 내가 만지는 컴퓨터는 고장 나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늘 쓰던 컴퓨터는 괜찮지만 내 것이 아닌 새로운 컴퓨터의 경우는 늘 고장이 나곤 했다. 그래서 영상편집용 컴퓨터는 가격이 비싼 것이라 손대기가 두려웠다. 그때 내 소개로 회사에 컴퓨터를 납품하던 영상 동호회 동생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누나 괜찮아. 고장 나면 내가 고칠 테니까 자신 있게 해 봐~"
훗날 그 녀석이 말한다. 진짜 누나 때문에 고생했다고 ㅎㅎ 그 징크스 안 믿었는데, 그런 징크스 가진 사람 2명 봤는데 그중 하나가 '나'란다.
영상 중 흔들리는 부분만 잘라내면 되는 A컷 편집은 어렵지 않았기에 다 잘라두었다. 그것을 본 감독님은 6시간 분량의 영상을 1시간 분량으로 정리해 두라고 한다.
'허걱, 내가 그걸 어떻게 하나요?'
편집 구성안을 보면 인터뷰로 쓸 부분은 표시를 해두었으니 그 앞뒤로 자르면 되고, 풍경과 같은 부분은 풀샷, 미디움샷, 클로즈업샷의 개념으로 3컷씩만 남겨두면 된다고 했다. 각각의 길이는 대략 5초 내외로~
영상을 보다 보면 가장 멋있어 보이는 장면만 남겨두고 다른 것은 자르라고 했다. 디지털 편집이니 필요하면 다시 꺼내면 되니까 괜찮다고 용기를 준다.
그런 식으로 어느새 나는 A컷 편집에서 가편을 하고 있었고, 본편 편집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마지막 종편은 종편실에서 마무리하고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왜 내게 편집을 맡겼어요?"
"하나 해보니 잘하더라, 그래서 다음도 맡겨보니 제법 하더라고. 나도 이렇게까지 따라올 줄 몰랐어 하하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어쨌든 나로 인해 편집 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회사에 공을 세운 셈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지상파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7편 넘게 편집하는 전문 편집자가 되어 갔다. 이렇게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는지 생각해 보니 그냥 회사가 집이다. 게임회사에서도 거의 그렇게 살았다. 밤샘은 당연한 것~
사실 편집자는 자신의 생각을 영상에 반영하지 않는다. 작가가 써 준 편집대본의 내용을 보면서 옆에서 PD가 편집방향을 가이드하면 그 작업을 오퍼레이션 할 뿐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감독님과 때때로 편집내용과 방향을 상의하면서 작업하다 보니 나 혼자 본편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미래의 직업을 생각해 볼 때 방송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PD가 되기 위한 언론고시를 뚫어낼 자신이 없어서 지레 포기하고 있던 차였는데, 우회하여 방송이라는 환경 속에 조용히 스며있었던 것이다.
하고자 하면 결국 하게 되는 인연이었을까? 그렇다면 정면돌파를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외주제작사의 영상편집자 말고 프로듀서로서 출발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 계기가 어느 날 생겼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
그러고 보니 제목에 쓴 문장에 대한 언급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보통은 3차원 효과와 같은 것은 종편실에서 만들게 되지만, 우리는 자체 제작을 많이 했다.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한 명. 그리고 감독님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과도기 인이라 디지털편집과 3D 효과에 대한 개념을 필요시에만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 편리성은 인정하지만 효과를 즉시 볼 수 없음(렌더링이라는 시간이 필요함)에 매우 짜증을 내는 사람이었고, 당시의 PC도 슈퍼컴이 아니라 일반컴으로 사용했기에 꽤 시간이 필요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즉 자신을 속인다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아무리 이해시켜도 안 된다. 어르신 똥고집을 어찌 이기리~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세요~"
3D 프로그램의 애니메이션을 렌더링 걸어놓는다. 그런 다음 포토샵을 열고 이미지 수정을 하여 삽입하고, 자막을 고치는 등 대기 타임을 최대한 활용했다. 내가 그렇게 하는 동안 커피 타임을 30분 정도 보낸 감독은 다시 와서 묻는다.
"됐냐?" - 게임회사 재직 시 대표님도 똑같이 물었다. 결국 대표들은 똑같다.
그렇게 일을 하던 나에겐 멀티태스킹이 당연한 듯 자리 잡았다.
집에서도 비슷하게 일한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하다. 대청소라도 할라 치면 세탁기부터 돌리고, 방청소를 시작한다. 안방을 치우다가 욕실의 물건을 발견하면 욕실로 가져다 둔다. 그리고 욕실의 정리를 시작한다. 욕실에서 주방의 물건을 발견하면 주방으로 가지고 간다. 그 길로 주방의 정리를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한 곳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 듯 혹은 가지에 곁가지를 뻗어 나가듯 일을 하는 묘한 방식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씩 마무리 해가는 깔끔한 방식이 아닌 것이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 방식대로 살아왔는데, 이젠 아닌 것 같다. 결론이 안 난다. 그리고 점차 지쳐간다.
작년 한 해는 매월 작은 성취를 가질 수 있었고, 뭔가 도전하는 것에 재미가 있었다. 반대로 올해는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도전과제가 모두 중장기여서 일수도 있다. 하고 싶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시다발로 시작한다. 그랬더니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그래서 결심했다. 한 번에 하나씩만 하자.
그래야 결론도 보이고 성취도 보일 것이다.
오늘부터는 다시 만다라차트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뇌와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이제야 감지하고 있다. 마음의 성급함을 따라가기에는 자신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끊임없이 보내는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니 이들은 파업을 선언했고, 휴업을 넘어 폐업상태로 갈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는 즈음이 지금이다.
알았어. 하나씩 할게. 22년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성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