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ia Jan 02. 2024

그때 모습 그대로

나를 찾는 여행 12번째

나뷰챌린지는 이미 끝났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느린 손은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음에도 느린 속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무리하고 싶다는 소소한 고집이 나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이 무슨 미련스러운 고집인지 모르겠어요.


글을 써보니 확실히 내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쉽게 쓰입니다. 아마도 배움이 짧고 경험이 적어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얘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동안의 내 모습을 마주 보는 날입니다.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아서 피했습니다. 돌아보면 볼수록 후회가 가득했거든요. 선택한 결과가 맘에 들지 않을 땐 옳은 선택을 한 적이 없다고 아파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지나간 날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하지 못했던 말과 선택을 뒤늦게 해 봅니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다른 선택을 한 나를 상상해 보곤 하죠. 그러다 보면 현실이 싫어지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이불킥을 하고 있는 거죠.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3년 한 해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해서 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반발을 하기 시작합니다. 도망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발이었어요.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로 무작정 쓰던 글은 나의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라고 이유를 달았죠.


ㅣ 가장 특별한 나의 과거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


특별하지 않아서, 너무 평범해서 누구에게도 눈에 뜨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7살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남기고 간 소꿉놀이를 가지고 싶어 하던 나의 기억,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던 10살의 나.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진학 전 중학 졸업 전 2월의 어느 날, 수업만 하고 자습만 한 채 보내던 날입니다.

무료해서 온몸이 비비꼬이던 날, 내 손은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친구가 물어봅니다. 

"J야 모하노?"

"대본 쓴다."

"뭔 대본?"

"춘향전"


갑자기 춘향전이 떠올랐습니다. 연극 대본을 마구 쓰고 있는 겁니다. 

후다닥 쓰고는 짝꿍에게 보여줍니다. 

배꼽 잡고 웃는 짝꿍의 옆자리 아이가 보고, 그 옆자리 아이도 봅니다. 심지어 반장도 봅니다.

결국 모월 모일에 우린 연극을 하기로 합니다.

사또의 의상은 아이들의 목도리를 벗겨서 X맨처럼 두르고 가슴아래로 끊을 묶어줍니다.

춘향이의 옥살이는 도화지로 대충 감옥의 창살을 만들어서 손으로 들게 합니다.

누군가가 춘향이 목에 "칼"을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알아보니 목교라는 형틀이라고 하네요.

그것 또한 도화지를 세로로 두 장 붙이고 가운데 살짝 구멍을 뚤어서 걸어줍니다.

연극에 참여할 사람을 모으니 다들 싫다 소리는 안 합니다.

춘향이 역은 서로 하려고 하는데 변사또는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작가 겸 연출가인 내가 변사또역까지 함께 하기로 합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웃었습니다. 처음 하는 연극이고 즉석연기라 대본을 암기한 아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읽었던 춘향전의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내가 쓴 대본에는 나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았기에 자유롭게 애드리브를 마구 날리는 친구들입니다.


친구가 담임선생님을 불러옵니다. 우리끼리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요. 결국 선생님을 모시고 한번 더 앙코르 공연을 하게 됩니다.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제자들의 연기가 마냥 귀여우셨을까요. 크게 웃어주시던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기억에 남습니다. 교무실에 가서 한번 더 하자는 것을 정중히 거절해 드렸습니다.

왜냐고요? 하교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졸업을 며칠 앞둔 중학교 3학년 졸업예비생들의 무료한 하루는 그렇게 왁자지껄 즐거운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대본이라는 것을 써 가던 나의 그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나도 모르는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모쏠인 주제에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기 일쑤였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ㅣ 그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학교를 졸업하면 응당 사회인이 됩니다. 줄지어 대학교라는 건물을 통과하고 나면 줄지어 회사라는 곳으로 모두들 걸어갑니다. 가끔 다른 길을 찾아가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회사를 가죠.

회사에 들어가고부터는 글을 잃어버렸어요.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소녀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창의적 사고는 잃어버리고, 복사 잘하는 복사기가 된 듯했습니다.


과거의 나를 오롯이 바라보려는 노력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제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잘못된 선택이던 아니던 그 선택 역시 나의 선택입니다. 가야 할 길을 간 것이 맞습니다. 잘못 갔다고 느낀 건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죠. 당장의 현실 타파가 해내고 싶다는 절실함을 이겨버린 겁니다.

작은 고통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안일무사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프로듀싱하는 동안 알게 됩니다. 원고를 읽어내는 시선과 정리 능력은 그때부터 생긴 것일 겁니다.


이제 나는 글쓰기와 프로듀싱이라는 1%의 천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99%는 노력과 꾸준함으로 만들어가는 후천적 능력일 것입니다. 108배를 하면서, 8km를 걸으면서 나에게 말해 줍니다.

오늘의 한걸음이 100걸음이 되고, 오늘 쓴 한 줄의 글이 한 권의 책을 만들어간다고 말이죠.

지금은 끄집어낼 때인 것 같습니다.

100걸음이 지나고 나면 고도를 올려볼 예정입니다. 가끔은 힘들어야 지치지 않을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