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제주다. 아는 척하느라고 지금 나의 상태가 동가식서가숙이 아닐까 라며 여기저기 떠벌리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우리의 만년친구 네이버에게 질문한다.
동쪽집에서 먹고 서쪽집에서 잔다는 뜻으로,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지조 없이 이리저리 빌붙음을 가리키는 말........ 이란다.
지금 나의 상황이 지조 없이 빌붙음은 아닐 텐데, 인연설에 입각하여 그런 상태일까? 잠시 반문해 본다.
아닐 거야. 난 분명히 초대받았으니까 환영받는 인사(人士 :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사회적 활동이 많은 사람)
가 맞을 거야 라며 등에 솟는 식은땀을 후다닥 식힌다.
우쨌든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자고 먹고 쉰다는 의미였는데 그렇게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경계의 의미로 그대로 제목에 두기로 했다.
제주에 사는 지인의 초대로 제주에 일주일간 머물기로 했다. 마침 빈 숙소가 있으니 와서 머물면 긴밀한 협의를 하자고 하신다. 여행에 목마른 나는 두 번 생각지 않고 비행기 티켓을 찾아본다. 하루를 최대한 다 쓰고 싶은 욕심에 새벽 6시 20분 출발 비행기를 예매했다. 전날 밤 짐을 꾸리다가 후회했다. 한 시간만 늦게 예매했어도 새벽 지하철로 김포공항으로 가면 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교통편이 불편하다. 옆지기의 출근시간을 새벽으로 바꾸는 민폐를 만든 셈이다.
각설하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찾아야 하는 표지판은 으례껏 향하던 렌터카 방향이 아닌 버스정류장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으로 차를 렌트하지 않는다. 지인과의 일정 동안은 그(그녀)의 차를 이용할 것이고, 나만의 시간은 뚜벅이를 선택했다. 마침 서울처럼 길 찾기 앱으로 교통편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목적지만 선택하면 괜찮다. 그리 많은 곳을 다닐 생각이 없으므로 알맞은 선택이다.
숙소는 입지가 탁월하다. 위치는 제주 공항에서 325번 버스를 타고 45분 남짓 지나면 바로 숙소 앞에 도착할 수 있고, 거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 바다가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를 한가득 눈에 담을 수 있다.
30분 책 읽고 바다멍, 30분 할 일 하고 바다멍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공항으로 가는 이유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TV를 연결해 줄까? 하시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잠시라도 넷플릭스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게 넷플릭스는 애증의 수렁이다.)
책을 읽다가도, 음식을 만들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글로 쓰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난다. 메모하는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은 나로서는 '에이 좀 있다가 책상 위에서 쓰지 뭐~ '라며 미뤄둔다.
신체의 노화는 뇌의 기억회로에도 영향을 준다지. 30초 후에는 깡그리 잊어버린다. 지금도 잊지 않기 위해 결국 해야 하는 숙제도 미뤄두고 급히 메모 겸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짓기를 하시는 작가님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매일 밤마다 톡으로 대화를 나눴어도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까? 지인과는 그리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랜 지인처럼 대화를 하게 된다. 뭔가 끈이 이어진 것처럼, 만날 때가 되어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연이 되었다.
'나를 왜 선택했어요?'
'당신이라면 맞을 것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가면 알겠지만, 당신이라면 할 것 같았어요'
지인은 어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살짝 두렵다. 내 속에 숨겨둔 단점과 허점이 나의 장점과 재능을 가리고 있어서 새로 뭘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하기 싫고, 자신 없음으로 밖으로 마구 표출되고 있을 터인데, 틈새를 비집고 결국에는 가능성을 보셨다는 말에 뭉클하다.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는 다짐을 한번 더 하게 된다.
선언의 힘을 깨닫는 요즘이다.
평생 동안 여행이라고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 전부였다.
여행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나름의 자유여행을 다녔다. 대부분은 후회막심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남들의 여행기를 보면 꽤 알차게 다녀온 듯하다. 나의 경우는 문자 그대로 <맨 땅에 헤딩하기>였다. 한동안 나는 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나~라는 자괴감도 많이 안고 있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처럼 생각을 달리 해보았다. 어떤 여행이던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타인의 완벽함은 누군가의 조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대부분이고, 사진 찍는 것도, 목적지를 미리 정하는 계획적인 것도 해보지 않은 채 여행이라는 것을 시작했으니 그동안 해온 여행이 모두 그때그때가 처음이었다는 공통점을 찾았다.
아침 7시 조금 출출한 느낌에 근처 편의점으로 간다. 삼각김밥과 훈제계란 3구를 사고 편의점을 나선다. 문득 눈앞에 보이는 골목의 풍경이 새삼스럽다. 대마도의 골목어귀처럼 보인다. 지난 대마도여행에서 목도했던 그때 그 골목, 스팸무스비를 팔던 작은 가게 앞처럼 보인다. 외국의 골목은 낡은 것도 운치 있게 보이는 어설픈 여행자의 시선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낡을 만큼 낡았고, 하단에는 제주의 바와 바람에 의해 세월을 몸으로 받아낸 듯한 나무 대문이 있다. 매력이 철철 넘친다. 이어지는 담벼락은 현무암으로 만든 걸까? 옆집의 담벼락과 대조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음 편에서 일하며 보낸 3일간의 시간을 기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