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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일주일,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2

발길이 적당해서 좋은 곳, 식도락

by Sonia



식도락(食道樂)[식도락]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



YH선생님이 묻는다.

"어디 갈래?

"지역민의 추천받고 싶은데요~"


손바닥에 담긴 작은 컴퓨터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서도 먹을 곳, 쉴 곳, 즐길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발 빠르게 그곳을 경험한 부지런한 네티즌 덕에 그곳의 평점도 확인할 수 있어서 실패의 확률도 극히 낮다.


반대로 칭찬이 자자해서 막상 가보면 실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먼저 가본 이의 평가를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별점을 올리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이런 세태를 굳이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맛집 검색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구구절절 사유를 밝히는 게다.


여행을 하게 되면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고르고, 원활한 이동을 위한 적절한 위치와 적당한 금액의 숙소를 정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리고 방문(관광)할 장소를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식당 리스트를 찾아낸 후 그곳을 다음 방문지로 정한다. 이런 루틴대로 계획을 세우다 보면


유명관광지-유명맛집-유명관광지-유명맛집의 순으로 일정표가 만들어진다.

혹시나 해서 슬쩍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나와 동일한 일정표가 이미 많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송에서 소개된 여행지를 따라 코스를 그대로 짜도 된다. 90%는 실패하지 않는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류의 여행이 내겐 벅차다. 일단 인생에 기리 남을 사진을 건지기가 힘들다. 나와 같은 코스로 방문한 이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너도 갔니? 나도 갔어!라는 동질감이 남는다. 남들 덜 가는 곳 가볼 때의 시간이 더 좋아지고, 시간계획표대로 뙇뙇 움직이지 못하는 몸뚱이를 가졌기에 다소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일주일 간의 제주 여행에서도 미리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생각해 두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여전히 무계획으로 제주땅에 발을 디뎠다.


우충충한 흐린 날에도 또렷이 보이는 노랑 건물 KAFFEE 오늘 베를린
사장님이 사진 작가, 그 외에도 작가님의 사진이 도처에 있다.
쿠헨(독실 가정식 타르트)와 독일 달마이어 홀빈으로 핸드드립 커피


전날 신촌 근처 에이바우트에서 YH 선생님과 미래에 대해 심각? 하게 얘기 나누던 중 사진을 배워야 한다는 상호 합의를 만든다. 최근 YH선생님이 프로필을 찍었다고 해서 보내주셨는데 많이 실망했다. 의상이 검은데 배경까지 검으니 일반인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다.


매번 의뢰를 할 수가 없으니 배움이 필요할 듯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정물을 잘 찍는 구도다.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색감 그리고 전문적인 노하우가 생기겠지. 무엇보다 사진을 보는 눈이 더 시급할 지도 모르겠지만...


만드는 능력이 없다면 주문할 줄 아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원활한 의사소통이 진행될 것이고 먼저 내게 맞는 사람들을 주변 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인맥과 소개마케팅이 꽤 유효하다.


그래서 방문한 곳. 사장님이 사진작가이신 <오늘 베를린>.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내부를 살펴보니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아픔이 단전 끝에서 슬쩍 올라온다. 사진이 슬픈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슬픈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다.


미루고 미루고 감추고 감추었던 그것이 새삼 떠오른 탓이다. 아니야 지금이 그때인 거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의미가 있는 거야(이적님의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 중) 무엇이던 때가 되었으니 그때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라며 슬쩍 다독이고 표정을 갈무리한다.


직접 내려주시는 핸드드립 커피는 확실히 부드럽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적당한 농도와 목 넘김이 부드럽다. YH선생님이 주문한 연유 핀드립 커피는 커피 자체로는 맛있지만 연유와 섞이니 내겐 많이 달다. 인도 가정집에서 먹은 혀가 얼얼할 정도의 단맛이 연상될 정도로 달다.


사장님과 YH선생님이 서로 아시는 사이여서 잠시 자리에 앉아 말씀을 나누신다. 여유 있는 시간에 오라시며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서야 우린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짐을 남긴다. 그분의 표정에 "너도?"도 있었지만 "우린 1+1입니다"를 내세우며 다음에 올 거라고 눈도장 찍어둔다.


방문자의 마음은 나만 아는 곳이면 좋은 곳, 운영자에게는 당연히 많이 알려져야 할 그곳 <오늘 베를린>.

다만 방문한다면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그리 큰 공간이 아니라서 타인의 이야기를 원치 않아도 듣게 되는 경험을 얻고 싶지 않은 곳이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풍경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사진작가님의 사진과 사진집으로도 나눌 대화가 많다.

혼자 인 채로, 여럿이어도 기분 좋은 카페로 오래오래 그곳에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예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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