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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Jan 31. 2024

잘 쓰는 다이어리는 어렵다

계획과 기록을 연속적으로 써야 할 필요성

22년부터 다이어리 쓰기에 발을 걸쳤다.


다이어리 쓰기 시작했다고 깔끔하게 말을 하면 될 것을 걸쳤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나를 믿지 못함이다. 내가 가진 수많은 단점 중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은 꾸준함이 없다. 특히 꾸준히 기록하는 은근과 끈기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일로 필요한 것은 기록해 둔다. 어쨌든 일과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사회적 도덕적 개념이 탑재된 경우는 <최선>과 <체면>이라는 단어 뒤에 숨기 위해라도 잘하는 듯하다.


꾸준히 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집에 굴러다니는 연도 지난 다이어리를 그냥 쓰기로 했다. 한 달 정도 꾸준히 쓰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 정도면 할 만 한데? 사실 다이어리샘한테 스스로 인증을 받기에 가능했지만, 일 년 정도 이렇게 습관을 붙이면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결국 PDS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한 5개월 썼을까? 작년 5월에 스페인에서 한 달 머물면서 다이어리 쓰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날을 살아가는 데도 다이어리에 뭔가 많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특히 PDS 다이어리는 Plan(계획), Do(실행), See(감상)을 써야 한다. 나는 실행은 쓸 수 있지만 플랜을 쓰고 감상을 쓰는 것에 약했다. 계획을 써도 지켜내지 못할 때 속상하고 화가 난다. 그것을 감상에 쓰면 되는데, 이 속상함을 매일 쓰려니 다이어리의 색이 점차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 보인다. 점차 다이어리 쓰는 것이 거대한 숙제의 늪에 빠지는 것 같았고, 처음의 의도와 달리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빠지고, 이틀이 결국 한 달과 6개월을 만들어 간다. 


올해는 아는 디자이너님의 템플릿을 선물로 받았기에 프린트해서 사용하고 있다. 일단 플랜은 쓰지 않는다. 감상은 별도의 노트에 쓰고 있지만 꾸준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계속 써야 한다. 점점 내 기억의 힘이 빠지고 있다. 며칠 쓰지 않은 곳은 하얗게 백지다. 기억 속의 그날도 똑같이 백지다. 플래너에 하루를 꽉 채워쓰지 않아도 용서해 줄 거다. 놀았던 날은 솔직하게 놀았다고 기록한다. 이렇게 부족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 두기로만 정했다.



출처 : 엔바토 유료 이미지

기록의 습관, 꾸준함이 왜 없는 걸까? 

게으름이라는 단어로만 치부하기에는 가끔 억울하기도 하다. 내 속에 가득한 반항심에 대해 이해와 위로가 필요하다. 나는 뭔가 메이고 갇히고 잔소리를 듣는 게 싫은 것 같다.


어릴 적 엄마는 5분 간격으로 나에게 뭔가를 자꾸 지시하고 지적했다.


"OO아, 반찬 꺼내오랠?"

"방 치웠니?"

"물 좀 가져와라"

"약국 좀 다녀와라"

"방 아직도 안 치웠니?"


하나를 시키면 그걸 해내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어린 필자가 해내는 물리적 시간을 기다려줄 여유가 그녀에게는 없었는지,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물을 컵에 담아 가져가는 그 시간 중에 또 다른 일거리가 주어진다. 어느 순간 내가 엄마의 5분 대기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나는 엄마에게 반항했다.

"고만 좀 시켜. 그리고 시켰으면 할 때까지 기다려요. 물 가져오는 시간도 못 기다려서 방 치웠냐고 잔소리하면 내가 두 가지를 동시에 어떻게 해?"

"내가 그랬니? 몰랐다 ㅋ"


이런 두서없는 엄마의 모습은 최근 엄마와 대화 끝에 엄마의 성장기 결핍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원망이 줄어들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요즘말로 귀에 피가 나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잔소리가 시작될지, 엄마와 딸의 일상대화가 시작될지 구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단점의 대부분을 어릴 적 나의 성장기에 영향을 준 엄마나 주변인들의 탓이라고 모두 미루는 것은 비겁하다는 것은 잘 안다.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나만을 탓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크다. 


같은 엄마의 자녀, 즉 내 형제들을 보면 나와 동일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한 나와 같은 삶을 살지도 않았다.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형질과 가족 간 서열, 자녀를 대하는 양육자의 차별적 태도에서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을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나의 인간관계부터 나의 내면까지 부정적인 것만이 더 많이 보였고, 무조건 나를 탓했다. 변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나를 비난했다. 그러고 나니 자존감이 점차 낮아진다. 특히 엄마의 지적과 인색한 칭찬, 아빠의 침묵은 나는 원래 가진 것이 없는 아이로 스스로 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심리 상담실에서 경험한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던 과정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상담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준다. 특별히 나의 지난 시간에 조미료를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간격을 두고 그랬군요. 그때의 기분은 어땠어요?라는 문구로 나를 끌어갈 뿐이다.


심리상담실에서 5일간 상담을 받았었다. 5일 동안 기억의 일부를 꺼내다 보니 엉킨 실타래 같던 기억이 점차 색깔별로, 종류별로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 즉 엄마와 또 다른 인물에 대한 이해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공감도 형성되었다. 물론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라는 답답함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그들의 몫일테고 이미 지난 일들이니 따질 생각은 없다.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답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긍정의 비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 담긴다. 일기를 쓰거나 나도 모르게 뭔가를 적고 있을 때 긍정의 어휘를 쓰려고 해 보지만 알게 모르게 부정적 의미가 많이 담겨있었다.


예를 들면 <비록>과 <아마도> 그 의미와 쓰임새가 다르다.

비록 : 아무리 그러하더라, 예) 비록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될지라도 

아마 :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거나 생각하여 볼 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말, 예) 아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록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될지라도, 아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라도" 두 개의 문장 중 예전에는 앞의 문장을 먼저 선택했다면, 점차 후자의 문장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느낌은 후자가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다이어리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눈은 밖을 향해 있어서 나를 정면으로 볼 수 없다. 나를 있는 방법은 거울을 통해서, 혹은 나를 닮은 자녀를 마주할 때가 아닐까? 그조차도 어느 정도 외부 유입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에서 나를 바라볼 있어야 때, 다이어리가 최선의 기록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앞으로도 계속 나가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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