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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Sep 21. 2023

몸이 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때로는 멍하니 보내도 된답니다


몸은 내게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이제는 사용할 예정이란다.

올해 초부터 내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주인아~ 나는 더 이상 힘이 없어. 넌 눈치가 없어서 너무 없어. 어떻게 새벽 6시부터 밤 2시까지 나를 부려 먹니? 노동법은 인간에게 적용되니 인간의 몸인 내게도 과잉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걸~"

"네가 왜 하는 게 없니? 한번 써봐 "

블로그, 다이어리, 입트영, 스페인어, 일본어 원서 읽기, 드로잉, 운동(살 빼기), 회사 키우기

굵직한 것만 추렸다. 이것을 하루에 조금씩 하려고 도전해 보니 자꾸 곁가지만 끼어들고 이 중 하나라도 성장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야할 것과 보류한 것들을 나열해 보자.


<입트영>

라디오를 듣고 교재의 내용을 읽고 녹음해서 카페에 올린다. 1순위로 올릴 때 짜릿함이 좋다. 다음날 누군가가 먼저 올릴 때는 경쟁심이 발동해서 더 열심히 매달린다. 생각보다 발음이 좋다고 스스로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공부할 때는 분명 재미있었기에 너무도 아까웠지만 순위에서 밀렸기에 <언젠가 보관상자>에 살포시 이사해 준다.


<드로잉>

그림의 떡이다. 정말 하고 싶은 장르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언젠가 보관상자>의 2번째 손님으로 모셔둔다.


<일본어 원서읽기>

4월부터 잠정 휴식에 들어갔다. 

도쿄타워가 끝남을 기준으로 5월에 스페인으로 출발하기 위해 잠시 휴식기에 들어섰다.

어차피 스페인에서의 한달간은 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7월부터 다시 시작하여 2번째 책 "나미야 잡화점"을 읽고 있다.

그만둘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참고 견뎌보려고 한다. 이렇게라도 발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운동>

새벽 기상이 어려워지면서 자꾸 안 하게 된다. 일주일에 2번 정도 걷고 온다. 이렇게 하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저 밥맛이 좋아질 뿐이다.

확실히 한시간30분 걷고 오면 몸이 달라짐을 느낀다.


<다이어리>

5월 스페인으로 출발하면서 결국 공백을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계속 빈칸만 쌓여간다.

속으로 되뇌는 한마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혹시나 믿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알고 있던 결과였지?"

할 말이 없다. 지구력이 개미OOO만큼도 없는 내가 그럼 그렇지~라며 개탄할 뿐이다.


<나의 일상>

올해 초에는 급기야 안정제를 먹기도 했다. 2주간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다. 그동안 죄책감이 생겨난다.

자야 해서 자는 데도 '내가 이렇게 잠만 자도 되는 것일까?' 묘한 느낌이 가득하다.

깨어있는 시간에 뭐라도 하려고 들면 손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그나마 아침 산책 정도만 겨우 할 뿐이다.

 


<쉬어야 하는 이유>

누군가가 내게 말한다. 지금 그 시간이 너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오랫동안 기름 한 방울 치지 않고 굴려 먹은 기계처럼 사용해 왔기에 이제는 수리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가만히 기다려야 할 때이니 몸이 하라고 하는 대로 있어 보라고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내 속에는 위의 것 외에도 수많은 화두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나마 저것들은 하고 싶은 범주에 있기라도 하지. 다른 것들은 해야 할 것과 해내야 하는 것 그리고 꼭 해야 하는 것들인데 그것은 어찌 풀어가면 좋을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대로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스페인에서의 한 달은 오랜 지인과의 인연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한국어가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오롯이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낯선 환경을 극복하는 시간 동안 다른 잡음이 끼어들지 않아서 좋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내게는 꺼내지 못한 그것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휘적휘적 흔들리는 걸음으로 걸어간 뒤에는 그것이 뭉쳐서 내 어깨에 매달려 있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돌리고 싶다. 뭔가를 자꾸 배워서라도 뛰어넘어 보려고 기를 쓰는 것이 애처로울 정도다. 아닌 거 잘 알 텐데 말이다.

몸이 내게 말한다.

몸 - "그만해. 나도 힘들다. 너는 이제 피터 팬이 아니야. 뱃속 나이 빼줘도 네 나이를 생각하면 다 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나 - "그런 거니?"

몸 - "응 내가 널 가장 잘 알잖아. 하나씩만 해도 돼. 그래도 넌 모두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저력이 있어. 다만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돌다리 건너듯 하자."

나 - "싫은데~ 해야 할 것이 산더미야. 사실 아무것도 이룬게 없잖아"

몸 - "지금은 그래야 할 때야. 그래야 3년 후의 너와 10년 후의 네가 보일 거야. 그 녀석이 말한 것처럼 되고 싶지는 않잖아? 아직 우리에게는 30년이 남아있어. 그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수는 없어."

나 - "알았어. 그럼 뭐부터 할까?"

몸 - "하지 마!!!! 아니다 운동만 해"

요즘 내 어휘가 딸림을 심각하게 느낀다. 노화의 결과인지 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이 멍한 것도 사실이다. 첫 말을 떼기도 어렵다. 여러분들의 강의나 글들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적재적소에 잘 맞는 말씀들을 잘하시는지 부럽기만 하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그것을 정리해 나가면서 만들어 낸 결과 일것이다. 현상적인 표면만 보고 부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글 모이를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팀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싶어서다. 멍한 날들이 반복되는 것은 안고 가려고 한다. 몸과의 약속도 지키는 선에서 글공부만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내가 만족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일단은 만족이다.

이렇게 한다면 몸이 원하는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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