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노력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쉬이~ 싸아~
바람소리 세차게 불어오는 틈에 가슴 가득 차오르는 화를 입 밖으로 꺼내어 낸다.
이렇게 라도 하면 잠시 화가 가라앉는 듯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잊어버린다.
아니 다른 일에 치여서 뒤로 밀리는 거지
잠시 한가한 틈이 생기면 미진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 불뚝 화가 치민다.
엄마에게 나는 무엇일까?
5형제의 막내이니 꽤 귀여움 받고 자랐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것과 달리 엄마의 가시권 밖에 있었다.
우리 집은 늘 사람이 많았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성장하고 결혼하여 독립할 때까지 거의 같이 살았던 걸로 들었다. 어린 시절 내 기억에도 고모들이 번갈아 가면서 집에서 살다가 나갔다가 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들의 결혼까지도 모두 치러주었다.
벌이가 꽤 되었음에도 늘 돈에 시달렸고, 대가족 살림을 꾸리는 엄마는 점차 헐크가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두통약 판토를 매일 2-3개씩 마셔야 하는 엄마, 웃는 표정보다 찌푸린 표정이 더 많았기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엄마가 학교에 방문한 것은 고3 생활관 실습 한번뿐이다. 입학식도 졸업식도 오지 않았다. 형제가 비슷한 시기에 졸업과 입학을 하니 엄마의 발걸음이 내딛는 우선순위는 당연히 오빠였고, 내 차례가 돌아올 무렵에는 엄마의 월차 연차가 모두 소진된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 졸업식 사진은 아빠와 함께였다.
엄마에 대한 갈증은 내 속에 있었나 보다. 성인이 되어 엄마의 품을 떠나서 살아갈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엄마를 챙기고 있다.
대구의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내 옆에 터를 잡으셨다.
이사 온 첫날부터 엄마는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모르는 사람과 싸움하기. 그 수습은 자식인 나의 몫이다. 엄마의 진창같은 싸움을 목격해야 하는 것은 늘 딸들이고 그 중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것은 오롯이 나뿐이다.
엄마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였어도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깨닫게 된 지난 15년간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은 요즘 표현으로 하면 가스라이팅이었다.
표면적으로 듣자면 다 내게 좋은 말들 뿐이다. 막내를 아끼는 엄마의 깊은 속내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묘하게 끝말 한 단어에 엄마의 원 뜻을 담아둔다.
가끔 엄마를 찾는 형제들은 앞부분만 듣고 뒷부분을 흘려들으니 막내만 아끼는 엄마로 인식하고 있다.
새언니들 조차 그렇다.
"아가씨는 좋겠다. 어머님이 아가씨만 챙기니까요~"
사실 엄마의 원 뜻은 아들과 손자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잘잘 포장해서 말씀한다.
일타이피를 해내신 거지.
그걸 바로 알아내는 나도 대단하다.
사실 같은 맥락의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바꾸어서 15년이 넘게 같은 결론의 다른 문장을 듣고 있기에 이젠 의심부터 하고 듣는다.
결론은 항상 같으니까.
엄마의 마음도 이해한다.
첫 마음은 막내 챙겨주고 싶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은 손자에게 가 있으니 원하는 목적으로 말이 가는 것이다. 엄마의 제안에 솔깃한 반응을 내 보이면 결국 엄마의 속내를 드러낸다. 주고 싶은 재산은 내 손을 잠시 스쳐 손자에게 도착하기를 바란다.
"너의 손에 잠시 머무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손자에게 도착하는 과정은 OFF the recoder로 진행되길 바란다"는 것이 진정한 속마음이신 것이다.
"그냥 말없이 손자 주셔요. 내게 더이상 말하지 말고!"라고 말해보면 그렇게 말하고 싶단다. 생색내기용을 하고 싶은 게다. 엄마도 포장지가 ㅠㅣㄹ요한 게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점점 엄마의 매니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보수 유노동. 승진 없는 말단 막내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엄마를 가시권 밖에 두면 편했을 텐데, 왜 엄마옆에서 함께 했을까? 엄마가 늙어가니 마음이 안쓰러워 곁에 머무르니 또 사단이 생긴다.
결국 엄마에게 "나도 못한다. 모르겠다. 알아서 하셔라"라고 큰소리를 내어버렸다.
고민이다.
또 연락을 끊어야 하나?
엄마의 삶과 생각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측은하다.
미련스러워 보이는 내게도 변화는 있다.
"엄마 싫어, 안 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못해도, 싫어도 나는 알았어 알아볼게라고 말하던 착한 딸이었고, 그것이 엄마를 가해자로 만들어었을 것이라는 자각이 들고나서는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불편한 시간을 보낸 후 대나무 숲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