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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Aug 24. 2020

식스 센스급 대반전. 엄마, 황혼 이혼을 말하다.​

"나 니 아빠랑 이혼 할랜다!"

자리에 채 앉지도 못했는데 엄마의 입에선 상상할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을 잘못 알아들은 동생이 엄마에게 되 물었다."엄마! 아빠가 이혼하쟤?"


그랬다. 우리 집은 아빠를 중심으로 엄마의 인생이 돌아가는, 남자들이 모두 식사를 끝 마친 뒤에야 여자들이 밥을 먹거나 또는 겸상이 불가능한 집. 한 마디로 부인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쉽게 나와선 안 되는, 모든 인사 결정권이 아빠에게 달려있는 그런 집이다.


무슨 조선왕조 500년 같은 고리타분한 소릴하고 있느냐 하겠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동생이 말귀를 못 알아먹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엄마는 곧은 자세로 앉아 무릎 앞에 놓인 종이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혼 신청서'

평소의 아빠였다면 마음에 안 드는 소리는 절대 듣지 않을 테였다. 목에 힘 빡! 주고 아무 말 대잔치로 대환장 파티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어깨가 땅에 닿을 듯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한 숨만 들이쉬고 내쉬며 엄마의 말에 반박도, 억지도 부리지 못하고 마른 얼굴만 쓰다듬을 뿐이다.


엄마 말은 그랬다.

불같은 남편 비위 맞추며 살기를 36년 여전히 남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탈 없이 잘 자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자식들 보고 있노라면 이게 인생의 낙이라 생각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올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살길 잘했구나 싶어 매 순간이 감사함이라고 생각했다.

예순 중반이 다 되어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남편이긴 하지만 이제 남은 건 우리 둘 뿐인데 서로 위하고 살면 니 아빠도 달라질 거라 기대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있는데 아빠가 짜증 섞인 말투로 반찬 투정을 부렸단다. 그날따라 몸살 기운에 힘이 들어 '있는 거 먹지 무슨 반찬 타령을 하냐'라고 구시렁거렸는데 "글쎄 니 아빠 이러고 어떻게 밥을 먹냐며 성질을 벼락같이 내더니"그대로 집을 나갔단다. '하아... 아부지.....'


그때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게 눈물인지 울분인지 알 길도 없고 막을 도리도 없었다고 했다.

'아.. 나는 은퇴가 불가능 하구나. 평생 남편 밥 차려주고 성질 받아주다 인생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살면서 처음으로 1층에서 9층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 높은지 생각해 봤다고 했다.


상황이 극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무서웠다. "엄마. 그건 아니지"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거다. 그 몹쓸 병은 소리 없이 다가와 엄마의 마음을 절망의 나락으로 떠밀었고, 그것도 모자라 삶을 앗아가려 했다.


더 끔찍한 건 그런 엄마의 마음을 가족 중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는 거다.


건물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제를 발견하면 그 즉시 수리하거나 때맞춰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쓰고 안전하다. 건물도 그럴진대 심지어 사람의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른 척 넘어가 버렸으니. 아니, 불평을 안 한다고 만족한다 착각했으니.

'우리 엄마 진짜 외로웠겠다.'


엄마의 결정은 무겁고도 단단했다. "당신! 나 월세 얻을 보증금만 빌려줘요. 당신이 평생 힘들게 일해서 마련한 집인데 공으로 달라고는 안 해. 그렇다고 한 푼도 없이 떠날 수는 없으니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보증금만 빌려줘요. 꼭 갚을게. 그리고 너희들도 잘 들어. 니 아빠랑 같이 안 사는 것뿐이지 엄마 역할을 안 한다는 게 아니야. 필요하면 손주도 봐주고 김장도하고 뭐든 도와줄 테니까 심각하게들 생각하지 말어." 그럼 엄마는 뭐하면서 살 건데.

"나는 설거지를 하든 식당에서 일을 하든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너희들은 부담 갖지 말고 애 잘 키우고 너희들 인생이나 잘 살아. 너희들한테 이런 모습 보이게 된 건 정말 미안해."


그때였다. 엄마 말을 듣고 있던 동생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빠. 그러니까 엄마한테 좀 잘하지. 엉엉" " 우리 엄마 평생 고생이나 하고 흑흑, 아빠는 왜 자꾸 엄마 속상하게 해서.. 훌쩍. 빨리 잘못했다고 그래. 엉엉" 동생은 눈물인지 콧물인지 분간이 안 되는 액체를 연신 쏟아내며 반쯤 돌아 앉은 엄마와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빠의 손을 붙잡고 두 분의 거리를 좁히려 애썼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게 느껴졌는지 이젠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서른넷의 어른이 엉엉 소리를 내며 부모님의 폭탄선언에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이가 많든 적든 자식에게 부모의 이혼은 감당하기 힘든 문제임엔 틀림이 없었다.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부터라도 '아빠 뒤치닥 거리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겠다는 엄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가 깨진다고 생각하니 누군가 갈고리를 심장에 쑤셔 넣은 듯 마음이 아펐다. 동생과 합심해 엄마를 말려야 할까, 아빠에게 다시는 엄마 속 썩이지 않겠다는 각서라도 받아야 할까. 온갖 잡생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졌다. 늘 그래 왔듯 엄마가 이 번 한 번만 참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지만 그래선 안될 것 같았다. 더 이상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정이 유지되는 건 절대 안 되는 거였다. '그러기엔 엄마가 너무 불쌍했으니까.'


엄마의 의견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존중은 하고 싶었다. 분위기가 마치 아빠가 버림받은 것처럼 되었지만 아니다. 아빠도 응당 책임을 져야 했다. 자그마치 30년이나 넘게 원인제공을 한 책임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했다. 내가 엄마 아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거나, 끝까지 책임질게 아니라면 모든 선택은 당사자 본인들이 결정해야 했다. 연세가 드셔서, 그동안 살아온 정이 있어서 이딴 말은 모두 나 편하자고 만들어낸 소리일 뿐이다.


"그럼 이혼하세요."


무슨 생각이 들어 이런 말은 한 걸까?


"야! 그만 울어! 무슨 초상났어? 너 앞으로 엄마 아빠 인생 책임질 수 있어? 대신 살아줄 거 아니면 두 분 결정에 맡겨 그게 맞는 거야."




지금까지 잘 참고 살아왔으니 이렇게 된 거 쬐꼼만 더 참아요. 그래서 요 평화로운 분위기 계속 끌고 갑시다 하는 말은 폭력이다. 지금까지 키워준 것도 감사한데 엄마에게 폭력까지 부릴 수는 없는 노릇.

아빠도 마찬가지다. 미안해 안 그럴게 대충 넘어가자 식의 이벤트성 모면으로는 끝내 해결이 안 됐다.

백세 인생이라는 가정하에 엄마 아빠는 아직도 40년의 시간을 더 살아가야 했다. 엄마가 폭력을 당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른 척하는 방관자가 될 순 없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동생의 말을 뒤로하고 아빠의 생각을 물었다."니 엄마가 원하는 데로 해줘야지"


결국 우리 집은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대신 조건을 걸었다. 2주의 이혼 조정 기간이 있듯 엄마 아빠도 그런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아빠가 반성을 하고 엄마가 용서를 하고 그런 시간이 아니라 30년이 넘는 긴 시간 함께한 서로에게 예의를 갖춰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게 가정을 깨는 가해자 부모가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는 피해자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두 분 사이에는 자식도 있고 손주도 있어 마주칠 일이 잦을 테니 안 보고 살긴 힘들다. 그러니 친구는 못되더라도 쌩판 남은 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선전포고!! 엄마 아빠 헤어졌다고 두 집 살림하듯 부모님 살피는데 연연하기 싫다. 그건 인력과 시간 낭비가 분명하니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했으면 자식이 안 들여다본다고 서운해할게 아니라 하고픈 거 하시면서 씩씩하게 살아가시라....' 이 말을 하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오는 걸까.'


엄마는 그러겠노라 말했고 아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평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바람을 이루며 여전히 손주들의 일등 할머니, 딸들의 조력자가 되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며 잘지내고 계셨다.


문제는 아빠였다. 틈틈이 상황을 체크하러 집에 들를 때마다 아빤 엄마가 학원에 간 사이를 틈타 쉬어빠진 김치에 술을 마셨고 엄마와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유령 처럼 살고 있었다. 한 날은 아빠에게 전화가 와 놀란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술안주가 부실해서 계란 프라이를 하나만 해달라는 거였다. 계란 프라이를 못하는 환갑이 넘은 남자. 처음으로 엄마의 마음이 100%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함께 식사하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데면데면하기를 벌써 2주. 우리 네 식구는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게 아니라면 섣부른 오지랖도 독이 된다는 걸 이해한 동생은 이번엔 울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어떠셨어요? 이혼 생각은 변함없으세요?" 엄마는 변함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빠는 달랐다. 갑자기 엄마의 손을 부여잡더니 한 참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흐으윽.... "고개를 숙인 아빠의 어깨가 들썩였다. 아빠는 한참 동안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아무 말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그 흐느낌 속에 그동안의 미안함과 반성, 아빠의 힘겨웠을 시간이 느껴졌다.


"여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36년 만에 처음으로 듣게 된 아빠의 미안해 소리가 엄마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엄마가 으이그 소리를 반복하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아빠의 흐느낌이 미안하다는 말 보다 잘하겠다는 다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모진 말에 두 분이 상처 받지 않았을까 죄책감이 밀려왔다.


"흑흑.. 엄마, 아빠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면 안 돼?"울지 않겠다고 약속한 동생이 울기 시작하자 나도 더 이상 참을 길이 없었다. 결국 온 식구 모두 눈물을 쏟는 상황. 나이 서른여섯에 이게 무슨 일이냐.....


다행히 두 분은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되었고 엄마가 쏜 황혼 이혼의 꿈은 불발되고 말았다. 물론 극적인 화해 이후에도 일촉 측 발의 상황이 종종 발생해 몇 번을 더 소환됐지만 그날 이후 엄마도 목소리가 생겼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두 분은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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