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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Aug 28. 2020

Z세대의 마음 표현.

1300억을 줄게.

요 며칠 전부터 온 몸이 찌뿌둥했다.

비가 오려고 몸이 쑤시나 싶었는데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뼈마디가 아픈걸 보니 딱히 날씨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유 없는 아픔은 오늘 아침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살짝 뻐근하고 불편한 정도의 아픔이 누웠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지자 덜컥 겁이 났다.


'요즘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는데 혹시 이거 코로나 증상 아니야? '


온갖 망상에 끌탕을 하며 몸살 기운에 걱정까지 덮어쓰고 밤을 꼴딱 새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아팠던 이유가 생각나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8월 27일 '우리 공주님 생일'


매 년 아이 생일을 기점으로 일주일 전부터, 내 몸은 마치 출산의 그 날을 기억이라도 하듯 이유 없는 고통의 신호를 보냈다.

'자.. 이쯤이야. 어때? 출산 시뮬레이션이 그럴듯하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거의 날이 다가올수록 고통의 강도는 점차 커졌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아이를 낳은 몇몇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무엇도 없었다.


힘들게 아이를 낳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이를 만났다는 소중한 날 이면서도 죽다 살아났다는 특별한 날이라서 그랬을까. 내 몸은 이미 잊혔어야 옳을 그때의 경험을 매년 새로운 듯 낯설게 반복한다.



어제보다 가뿐해진 허리를 일으켜 스트레칭을 한 뒤 부스스한 몸을 끌고 아이 방으로 갔다. 까칠하고 냉랭했던 어제와는 달리, 배꼽을 드러낸 채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 몸은 여전히 네가 세상 밖을 힘겹게 나오던 그때를 기억하는데 넌 언제 이렇게 커 버린 거니.'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발이 이젠 내 발보다 더 크게 자랐다. 조만간 키를 넘어설 테고 그러면 넌 내 품을 벗어나려 들겠지? 그때가 되면 난 서운할까 시원할까. 싱거운 생각인걸 알면서도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닐 거란 생각을 하니 왜 뭉클하고 주책맞게 눈물이 나는 건지.

아이 머리맡에 기대앉아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예전처럼 엄마 품이 최고라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새근거리는 엄마 바라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아가. 이젠 내가 안아달라고 졸라야 못 이기는 척 안아주는 시크 도도한 아이지만 여전히 말랑한 마음을 갖은 소중한 내 아가. 아이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 주어 고마워.'


불려놓은 미역에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침엔 밥맛이 없다는 아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어떻게든 든든하게 먹이 고픈 게 엄마의 마음 아닌가. 생일날은 필히 밥을 먹여야지 싶어 분주하게 덜그럭 거리는데 그 소리에 잠이 깬 아이가 부엌으로 오더니 아침부터 웬 소란이냐고 묻는다. 반가운 마음에 생일 축하한다고 말한 뒤 생일날엔 무조건 미역국을 먹어야 해서 국 끓이는 중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히 한 마디 던진다.

"아.. 오늘 내 생일이구나."


부지런히 아침을 해 먹이고 함께 차를 마시며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가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뭐 그럭저럭' 그럼 한 살 더 먹은 소감은 어떤지 물었다. '그냥 그렇지 뭐'.

왜 사춘기 아이들과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까.


작년엔 이렇지 않았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생일 전 달부터 설레고 들떠 어찌할 줄 몰라했던 아이가 불과 1년 사이에 이렇게 변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점잖아질 수 있는 걸까. 아이가 너무 빨리 크는 건 아닌가 아쉬운 마음에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내 손길이 불편했던지 거북이처럼 고개를 쑥 집어넣고는  일이 생각났다며 급히 방으로 몸을 숨긴다. 점점 무뚝뚝해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괜히 서운해졌다. 자라는 과정이겠지 싶다가도 막상 날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 마치 짝사랑을 거절당한 기분이랄까? 아이가 들어간 문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청승맞은 생각을 할 즈음 아이는 긴 수수깡과 봉투를 손에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자 엄마! 선물이야~!"


아이가 내게 전해준 건 색종이를 꼬깃하게 오리고 붙여 만든 작은 봉투와 신경을 쓰고 들여다봐야 할 만큼 작은 글씨가 촘촘히 적혀있는 주황색 수수깡이었다. 어떤 의미를 담은 선물인지 가늠이 안돼 생일을 맞이한 건 넌데 왜 나한테 선물을 주느냐며 촌스럽게 물었다.


"오늘 내 생일이잖아. 내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날 생일 주인공 만들어 줄라고 엄마가 고생했잖아.!"



아이가 전해준 수수깡 위엔 꾹꾹 눌러써진 글자가 길게 적혀있었다.

'엄마 나를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이렇게 긴 수수깡처럼 오래오래 살아서 나랑 행복하게 잘 지내자. 사랑해 엄마'


울컥, 정말 아이 얼굴을 잡고 눈물을 쏟아낼 뻔했다. 엄마를 생각해주어 고마워서라기 보다는 엄마를 생각할 만큼 속 깊게 자라준 아이가 고마워서. 수수깡처럼 길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는 아이의 말이 감사해서.

자식한테 낳아줘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보람을 느꼈다.

뒤이어 수수깡과 함께 전해준 꼬깃한 색종이 봉투를 뜯었다.

봉투에 담겨 있던 것은 500원짜리 두 개와 100원짜리 세 개. 총 1300원. 아이는 내 손에 들린 동전을 쑥스러운 듯 바라보더니 더 많이 주고 싶었는데 돈이 그것밖에 없었다며 미안해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전 다섯 개. 어떻게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할지 낯설게 만드는 동전 다섯 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수수깡 편지를 읽었을 때처럼 즉각적인 감동의 리액션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 1300원은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그냥 1300원. 껌 하나 겨우 사 먹을 정도의 가치만 갖고 있는 푼 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으며 받은 걸로 할 테니까 그냥 넣어두라고 말한 뒤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부끄러워하던 방금 전과는 다른 심각한 얼굴을 한 아이가 물었다.


"왜 엄마? 돈이 너무 적어서 그래?"


"엄마! 나는 엄마가 나 낳아준 거 정말 감사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 처음엔 옷을 사주고 싶었는데 강아지 입양하려고 모아놓은 돈은 모두 저금통에 있어서 꺼낼 수가 없었고 편지만 쓰는 건 미안했어.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엄마한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 지갑이랑 서랍 안을 싹싹 뒤져서 돈을 준비한 거야. 엄마는 이 돈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1300원을 1300억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한테 선물한 거야. 엄마는 1300원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거야?"


순간 누가 내 뒤통수를 초속 200킬로의 속도로 강타를 하는 것 같았다. 아차!!

상처 받은 얼굴이지만 굳이 티를 내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빠르다고는 해도 내 아이는 몸만 컸지 마음은 여전히 아기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미디어가 발달한 만큼 아이들도 속도감 있게 자란다는 걸 알면서도 내 아이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자라던 그 시절에 기준을 세워두고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1300원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어린애가 건네준 푼돈 쪼가리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웃음부터 났겠지.


나였다면, 아니 내가 자라온 세대였다면 부모님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몇 달 전부터 용돈을 모은다거나, 그날의 이벤트를 위해 내가 하고 싶었던 목표를 포기하면서까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으로 준비된 선물은 반드시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며 갈아 넣다시피 한 내 정성을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나서야 내 행동에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감사의 대상이 내 삶의 모든 중심축이 된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대가 갖고 있는 '부모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에 대한 기준'으로 생각해 봤을 때, 어쩌면 아이가 저금통을 탈탈 털어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면 난 더 큰 감동을 받았을지 모른다. 나를 위해 돈을 모았을 아이의 정성보다 쌓인 돈의 액수에 비례해 아이가 얼마큼의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 가늠했을 것이다. 1300원 안에 들어있는 큰 의미는 전혀 알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 흔히 Z세대라 말하는 아이들은 안정성과 실용성을 추구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내 아이만 해도 그랬다.

종이에 구구절절 편지를 쓰는 대신 짧지만 깊은 의미를 담아 수수깡에 마음을 써넣는다거나 굳이 저금통을 헐지 않아도 서랍을 뒤져 나온 1300원에 큰 의미를 담아 엄마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어떻게든 강아지를 키워야 한다는 제1의 목표를 희생하거나, 허물어트리지 않았고 영리함과 실용성까지 더해 제2의 계획을 만들기까지 했다. 나였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였다면 효심과 실용성이라는 갈림길에서 지금의 아이들처럼 절대 타협하지 않고 내 목표를 위해 정진하며 나아갔을까?


아이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긴 하지만 다른 세대를 둘러 태어났음을 인정하게 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더불어 그만큼 내가 몇 세대를 거듭해서 살아온 꼰대라는 사실도 덫 붙여야겠다. 우리 세대에는 효심이 부족하다 손가락질받았을 행동이 지금의 Z세대에겐 어쩌면 미련한 행동으로 비춰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 아이와 친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나와 다른 세대를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함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는걸 새삼 느껴본다.



혹여나 엄마의 무심함 때문에 마음 상했을 아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1300원의 가치가 결고 작아 무시하는 마음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라고 절대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그저 너의 마음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웃음이 났던 거라고. 내게 이 1300원은 1300억보다 더 값진, 값어치를 감히 책정할 수 없을 정도의 귀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았다. 수수깡에 적어준 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자고, 태어나 주어 감사하고, 너의 모든 것이 내겐 축복이라고, 기적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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