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이야기는 먼저 남편의 어머니이자 나의 시어머니와 함께 소주 한 잔 마시며 나워야 함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서 건방지게 시어머니와 대작을 하려 드느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 상하기 딱 좋은 얘기는 술기운을 필히 빌려야 한다.
소주병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 한 잔, 나 한 잔, 번갈아 가며 원 샷을 때리고, 두 번째 잔은 알아서 각자 채운 뒤에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그렇게 연거푸 세 잔쯤 마셨을 때, 취기가 얼추 돌아 마음이 여유로워질 때 나는 술기운을 빌려 당신 아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것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오만방자함을 술기운 때문에 듣는 둥 마는 둥 하여 분명 귓등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주 한 잔에 나의 묵은 감정을, 기분 상함을 탁!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용기도 없고 강단도 없는 나란 사람은 차마 남편의 만행을 시어머니께 고자질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이러다 속병 나겠다 싶어 글로서 하소연을 하고 있다.
오늘만 해도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딱 하나 모자란 300명이 추가되었다. 다음 주엔 일일 확진자가 2000명을 웃돌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질병 관리본부에서 내놨으니 이럴 땐 외출을 자제하고 최대한 집에서 몸을 사리는 게 최고의 방어가 아닐까 싶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도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당분간 등교를 중지한 상태고 남편의 회사 역시 두 번째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왜 전염병이 창궐한 험난한 지금의 상황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남편의 재택근무가 큰 걱정으로 다가오는 걸까. 불특정 다수를 만나야 하는 남편이 회사를 가지 않음으로 해서 코로나 위험에 덜 노출된다는 점은 지극히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어째서 마음이 답답해 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코로나가 발병한 뒤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부부 문제를 나 또한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집에 함께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져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웃을 수 없는 슬픈 이슈 말이다. 무슨 그런 비약이 다 있느냐 말할지 모르겠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같이 있는 게 당연히 낫겠지. 붙어있는 시간이 길면 애틋하겠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 삼대독자 종손에 무녀독남 외동아들과 함께 2주간 내리 붙어있어 보니 그건 아니더라.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코로나 확산 때, 남편은 2주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컴퓨터며 모니터며 뭔가 복잡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와서는 방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서재로 만들더니 급기야 출입을 금 해달라는 요구까지 해왔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시길래 그러나 싶었는데 하는 일의 특성상 외국 바이어들과 전화할 일도 많고, 화상 회의 스케줄도 많으니 정돈되지 못한 가족들이 화면에 보인다면 그래.. 민망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알겠다고, 근무지만 바뀌었을 뿐 휴가는 아니니 당신의 상황과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리고 최대한 편히 일할 수 있게 맞춰준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남편의 서재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뜻이 아니었나 보다. 남편은 무슨 이유에선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내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을 하다 말고 목이 마르다며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질 않나(회사에선 물 마시러 안 일어난 답니까), 9시에 먹은 밥이 채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도 본인의 직장인 배꼽시계가 12시가 됐다는 이유로 점심을 찾는다던가(아침 먹고 집안 청소한 지 겨우 1시간 지났어요), 오후 3시가 되면 동료들과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이라며 집에 있지도 않는 믹스커피를 찾았다. 처음엔 재택근무의 세계에 첫 발을 들인 그도 낯설겠지 싶어 나도 하는데 까지는 맞춰줬다. 그랬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건 뭐지? 뭔가 불쾌한 기분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일주일을 보내고 마지막 남은 한 주의 주말. 재택근무의 마지막 주말이었으니 남편의 수발들기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을 부랴부랴 차려준 뒤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게 쉽지 않아 이 말, 저 말을 썼다 지우며 반복하기를 어언 몇 시간이 흘렀나 보다. 방에 있던 아이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오더니 "엄마.. 나 배고파.." 한다.
길어야 한 두 시간쯤 지났으려나 싶었던 시간은 벌써 4시간이 훌쩍 흘러 오후 2시가 넘었고 아침 먹은 지 벌써 6시간이 흘렀다는 소리니... 우짜 쓰까... 우리 딸내미 배 많이 고팠겠다. 서둘러 뭐라도 먹여야지 싶은 마음에 밥을 볶는 찰나 문득 집에 있는 남편이 생각났다. 오늘은 회사에 일이 없는 황금 주말 아닌가. 왜 나의 남편은 주말에도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하는가.
밥을 볶다 말고 서재안 남편의 행방을 파악하려던 순간 굳게 닫힌 방문 사이를 타고 나오는 웃음소리. 그렇다. 나의 남편은 일명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서재라는 곳에서 개인 방송을 보며 히히 낙락 세월을 낚고 계시는 중이었다. 지난 한 주를 통으로 날름 먹어 치우더니, 이번 주 역시 꽁으로 넘기려는 수작이 목격되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오장육부 저 끝에서부터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뭐 하고 있는 거야? 애 배고프다잖아"
"응? 그래? 난 자기 바쁜 것 같길래 오늘 점심 먹기는 글렀구나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 지쟈스. 맙소사. 이게 말이냐 방귀냐. 나는 지금까지 나의 시간을 당신에게 헌납하며 희생 하였 것만 당신은 나를 위해 단 몇 시간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었더냐? 내가 비록 비루하게 누가 읽어줄지 아닐지 모를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나의 시간과 정성을 무시한다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인 것이냐?
자칫하는 순간 손에 들린 밥주걱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가정하게 씩씩 거리며 남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바쁜 것 같으면 당신은 안 먹더래도 적어도 아이 밥은 챙겨 줬어야지. 아니면 나를 부르던가... 아니... 무조건 당신이 챙겨 줬어야지. 나는 당신 일하라고 숨소리도 안 내고 챙겨주고 도와줬잖아!!!!
억울한 마음이 울컥 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남편은 태평성대한 목소리로 되려 아이를 탓한다.
"아빠는 엄마가 밥 안 해주길래 포기했는데 너도 포기하지 그랬어"
그렇게 그는 다시 한번 나의 분노에 노크했고, 손에 들린 밥주걱은 상황에 맞게 제 할 도리를 다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이번엔 더럽고 치사해 점심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정확히 12시 30분에 점심 메뉴인 라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물이 끓는 걸 깜빡하고 잠깐 노트북에 뭔가를 쓴다는 게 물을 반이나 증발시켰을 줄이야. 아차 싶은 마음에 서둘러 물을 채워 넣고 다시 물이 끓길 기다리는 순간 서재에 있던 남편이 큰 소리로 묻는다.
" 아직 라면 안됐어?"
"아니 아직도 라면을 안 끓인 거야? 여태 뭐했어? 또 글썼어?"
남편이 왼쪽 입술 끝을 살짝 말아 올리며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또 글썼어? 또 글썼어?
그 말을 듣는데... 난청이 온 걸까? 갑자기 또 글썼어 이 말이 '또 이런 써글....로' 들리는 건 왜일까?
그 순간 일일 드라마에 나오는 '김치 싸대기' 장면이 떠올랐다. 라면 면발을 야무지게 집어 헛소리 작작하는 남편의 뺨에 찰지게 쫙! 붙여주고 싶었다. 이왕이면 라면 면발이 머리를 한 바퀴 돌아 촥촥 감겨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끓고 있는 면발로 어찌할 수 없는 일, 라면 끓이던 젓가락을 내동댕이치고 황소울음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음뭬.. 아니... 뭐라고?"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앞서 글에서는 이기적이라던가, 눈치가 없는 캐릭터일 것 같지만 그건 오로지 집에서만 그러할 뿐 사회에 나가면 제법 일 잘하는 사람으로 통하는 모양이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거나 이해타산을 따지는 얄팍한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결을 하는 책임감이 투철한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깔끔한 성격의 보유자이기에 주변에서 내놓는 평판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성격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네가 유난 떠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항변하겠다. 남편의 이런 똑 떨어지는 성격은 사회에선 주목받을지언정 오랜 시간 얼굴을 보며 생활해야 하는 가족에겐 불편한 성격임엔 틀림이 없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라. 청소기를 돌려야 할 때, 쓰레기를 버려야 할 때 일일이 사사건건 누군가가 오더를 내려야 실행을 하고, 서류 결재 맡듯 오늘 하루 일정을 브리핑 한 뒤 처리해 나간다던가, 득이 되지 않는 일에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손해라고 여긴다던가, 집안일과 바깥일을 은근히 나누는 사람이 아무리 밖에서 인정을 받는다 한들 가족 사이라면 살짝.. 피곤하지 않을까?
결국 코로나는 우리에게 질병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민낯을, 더 나아가 인간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창궐로 인해 누군가는 종손에 삼대독자 무녀독남 외동아들과 24시간 내내 함께 붙어있느라 진이 빠지는 고난을 겪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년 시절을 생략해야 하는 아픔과 상실감을 겪을 것이다. 이는 분명 상처를 만들 것이고 상처는 우리의 몸도 마음도 심지어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텐데....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손 놓고 울고 있어야 할까?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우리 생활을 바꿔 놓을 테니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병을 전파하는 것도, 걸리는 것에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특히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가족은 삶의 원동력이자 생의 이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남편의 재택근무 더하기 아이의 전면 원격 수업. 다시 한번 온 식구가 한 집에 복달 거리며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우리 정말 잘 지내보자. 남편아. 잊지 말자. 당신은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 즉 주말은 가족을 위해 보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