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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Aug 31. 2020

골드미스가 말하는
​아줌마 언어.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나보다 3살 어린, 현재 대형 광고 기획사에 근무 중인 능력자이며 경력자, 당당한 돌파력으로 노처녀에 대한 시선을 한 방에 날려버린 골드미스, 즉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시원시원한 생김새만큼이나 자기 할 말은 모두 하고야 마는 쿨내 진동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영국에서였고, 타국에서의 생활이 늘 그렇듯 우리는 외롭고 힘든 순간에 만나 가족처럼 의지하며 길고 긴 외국 생활을 함께 이겨냈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금까지도 전우애 넘치는 애틋함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렇게 전우애 넘치는 파이팅으로 서로를 보듬던 그녀의 시선이 멀게 느껴진 것은. 나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더 이상 신선하고 반갑지 않게 된 것은 대체 언제부터일까. 어느 날부터인가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동경되던 그녀의 싱글 라이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통화도 그랬다. 반갑고도 씁쓸함이 공존하게 되는 그녀와의 대화.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이런저런 안부들 속 내가 그녀에게서 듣는 말은 거의 대부분 "형부가 잘 계신지, 조카는 잘 크고 있는지, 언니는 살은 안 쪘는지, 맨날 집에서 심심하진 않는지..." 한마디로 별것 없는 재미없는 일상의 것들이고, 내가 그녀에게 묻는 말의 대부분은 "너의 경력은 잘 다져지고 있는지, 지금 트렌드는 무엇인지, 까마득해 이젠 기억조차 없는 직장 생활의 고됨은 무엇인지...."에 대한, 즉 내가 넘보지 못하는 신나는 세상 속 일상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고 모든 시간을 육아에 집중하며 살다 보니 나는 그녀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녀를 향한 질문엔 반드시 "요즘 사람들은 뭘 좋아해?"가 있었고, 그녀는 그런 내 질문에 질타하듯 "언니! 그러지 말고 좀 나와. 밖으로 나와야 뭘 알지. 매번 내가 말해주면, 듣기만 한다고 알겠어?"라고 대답한다.


그래... 늘 겪는 일상을 아줌마가 신기한 듯 물어보니 당사자 입장에선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만 가끔 그녀는 서운하리만큼 내 질문에 냉랭하게 반응했다. 마치 떼쓰는 아이를 혼내는듯한 목소리로 말이다. 서운함이 느껴지려던 그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가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혹시, '아줌마 언어'라는 게 뭔지 알아?"


" 아줌마 언어? 그게 뭔데?"


정작 아줌마인 나는 처음 듣는 말을 잘 나가는 골드미스에게 들으니 뭔가 또 신박한 요즘 유행어인가 싶어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은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대화에 흥을 실어 얼마 전 모임에서 듣게 된 이야기를 늘어놨다. 이야기는 이랬다.


잘 나가는 현재를 살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벌써 7년이 넘어가는 이 모임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싱글들만의 모임이 되었고, 화려한 싱글들이 모여 값비싼 음식을 먹으며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의논하며 세상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살고 있는 자신들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했다.


원래는 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있었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가정을 꾸려 모임에 나오지 못한 뒤로는 자신을 포함해 겨우 넷 만이 이 자축 파티를 이어나갔는데 어느 날 결혼해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빠지게 된 친구가 '뜬금없이'모임에 참석 의사를 밝혀왔단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아이 셋 딸린 엄마'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외형상으론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세련되고 이쁘기까지 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15분 남짓 들었을까? 자신과 친구들은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뻔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기에 '놀라 자빠질 뻔' 했느냐고 묻자 (다행히도)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180도 달라진 친구의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는 모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이야기를 쉼 없이 늘어놨는데 재미있는 것은 누구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서 거침없이 떠들어 댔다는 거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대낮부터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민망까지 줘가며 시댁 얘기부터, 남편 얘기, 심지어 부부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모두 털어놓더니 갑자기 '아이 하원 시간' 이 다 되었다며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 친구의 융단폭격 같은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남은 친구들은 한때 똑 소리 나던 친구가 알맹이 없는 얘기를 늘어놓고 분위기까지 난감하게 휘젓고 가버리자 혹시 그 친구에게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추측하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때였다. 다른 한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으며 하는 말이


"저러는 거 다 아줌마가 돼서 그래. 아줌마가 아닌 사람들에게 '아줌마 언어'로 말을 하는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겠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당최 그놈의 '아줌마 언어'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언니! 아줌마 언어는 아줌마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아줌마가 되면 하게 되는 말이라고!"


그녀 말인 즉, 아줌마가 되고 나서 사람들과 섞이는 기회가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 아줌마들끼리만 모이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모인 아줌마들은 결국 아줌마가 겪는 집안일, 시댁일, 자식일, 남편일들과 같은 한정적인 경험만을 말하다 보니 현재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들이 말할 법한 세련된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사회에 무리 없이 녹아있는 그녀들은 현재 내가 겪는 일과 인간관계, 미래의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아줌마들은 아이들 얘기, 식구 얘기, 먹고사는 얘기에만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공감하며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얘기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만다고.

한마디로 소통 못하고 이 말이 분위기에 맞는 말인지 뭔지 배려 따위 없이 그냥 떠들고 마는 사회성 떨어지는 말, 아줌마들만 알고 있는 경험을 일방적으로 늘여놓고 보는 게 바로 아줌마 언어라고 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너도 그렇게 생각해?"울컥 화가 치미는 목소리로 묻는 내게 그녀가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나도 얼마 전에 백화점 주차장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글쎄 단 10분 만에 그 집 사정이며, 집안 사생활까지 모두 알게 됐거든.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따발총처럼 자기가 알아서 죄다 불어버리더라고. 나도 그거 보고 아줌마 언어에 무게를 실었지."


"혹시... 언니도 그래? 언니도 처음 보거나 오랜만에 본 사람한테 묻고 따지지도 않고 언니 얘기부터 오픈해?"


그녀의 질문을 듣고 나는 뭐라 답을 할 수 없었다. 속으로 뜨끔하기도 했고, 뒤돌아 생각하니 나도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그딴 소리는 대한민국 아줌마들한테 실례되는 소리라고!' 따끔하게 호통치고 싶었는데 그녀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기에 차마 거짓으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를 포함해, 내가 만나본 아줌마들은 거의 대부분 '아줌마 언어'로 소통을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에 겨우 꼽히는 정도였으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고, 그녀가 나쁜 뜻을 담고 얘기한 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런 질문을 들은 것 자체가 화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단 한 번도 아줌마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골드미스가 어찌 깊고 깊은 아줌마의 의미심장한 세계를 알겠느냐마는... 그래도.. 그렇게 세상 모든 아줌마들을 폄하할 필요가 있었니?


그녀의 말은 뾰족한 송곳이 되어 내 가슴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는 아줌마의 의미가 우리네 엄마 세대의 그 아줌마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억척같고 눈치 없고 무식하게 자기 할 말만 하는 목소리만 큰 사람. 내가 싱글이던 시절, 엄마 연배의 아줌마들을 보며 했던 비아냥에 가까운 무시가 업그레이드가 되어 내게 돌아온 것 같아 정말 슬펐다.


그녀와 전화를 끊고 나는 어떤 아줌마인지 생각해봤다. 싱거운 아줌마 언어를 하고 싶지 않아 학부모 모임을 끊어낸 내가 그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등교시키고 카페에 모여 집안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지 않는다고 내가 특별할 수 있을까? 시사저널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데 관심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아줌마가 아닐 수 있는가.... 결론은 나 역시 별것 없는 아줌마라는 것이다.


오늘도 무얼 먹을까,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하루살이 삶에만 급급해있는 아줌마. 한 아이의 인생을 키우고 있는 원대한 업적을 이뤄내고 있음에도 그조차 무시되는 삶을 살고 있는 아줌마. 당당하게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버린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나부터 나를 '지루하고 보잘것없는' 아줌마의 틀에 가두려 했다는 게 견딜 수 없이 답답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할걸 그랬다.

"야~ 이 기지배야! 아줌마 언어가 뭐 어때서. 니들처럼 속으로 숨기고 포장하고 안 그래서 얼마나 쿨하고 좋다고!"

"그게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만큼 자식 키우고 가족 보듬느라 생긴 당당한 자기표현이라고!"

차라리 속 시원이 말할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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