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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Sep 25. 2020

결국 떡 하나를 더 먹는 건 미운 놈이다.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마음을 다해 애쓰는 친구가 하나 있다.

얼마큼 애틋하냐면 내가 있는 것을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외사랑은 아니었다. 내가 그 친구를 사랑하는 만큼 나 또한 그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 꺼라 생각했고, 설명하지 않아도 내 입장을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 마음을 설명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았다. 이미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굳이 구태여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마음을 표현하는데만 급급했다. 설령 내가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미 그 친구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기대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들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말, 힘이 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내 삶의 주파수가 그 친구를 향해 있기도 했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만큼,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만큼 행복이 늘어갔다. 지금 내가 돈이 없어 하루를 굶는다고 해도 그 친구에게 밥을 사 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힘들어도 그 친구가 만족한다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진심을 다해, 마음을 주며, 설령 내가 힘들고 지칠 지라도 친구가 행복하다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내가 하는 노력쯤이야, 희생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입장을, 어쩌면 힘겨울 내 상황을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 친구는 이미 이해하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난 계속해서 거침없이 좋은 것만, 사랑만 표현하기에 급급했다. 설령 내가 곪아 갈지라도.


그러던 어느 날,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겼다. 생각나는 사람이 그 친구밖에 없었다. 수천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혹시 나의 이런 부탁이 그 친구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혹여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수천번의 고민을 하고 또 하고 망설이다 주저앉다 결국 도움을 털어놓았다.


다행히 내 아픔에 대해, 내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깊이 공감해 주는 그 친구에게 난 한 없이 감사했다. 그동안의 내 사랑이 혼자만의 사랑이 아니었다는 안도감도 있었고, 그 친구를 향한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 같아 그저 기쁘기만 했다.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터 놓을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곤경에 처한 내게 손을 내밀어줄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짐했다. 앞으로도 그 친구에게만은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기로. 설령 내가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그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기로.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마음을 계산한 친절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분류해 넣은 마음들이, 친한 사이일수록 분명히 해야 한다는 메시지 창에 뜬 말들이 난 무엇 때문에 슬프고도 낯설었을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어째서 난 서러워 눈물이 났을까.

어쩌면, 친구가 그어 놓은 짙은 선을 내가 감히 넘어갈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친구와 나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선에 당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 마음은 이만큼, '너의 마음은 이만큼, 그래서 에게 더 줘야할 마음은 이 정도로 더 필요하니 그 마음분은 나중에 천천히 받고 싶다' 했다.


친구의 분명하고 정확한 마음 계산에 나는, 앞으로 나는 너에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줄 참이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내게 구원의 손길을 건네준 너에게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내 모든 걸 주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그동안 너에게 내 마음을 모두 나눠 줄때 단 한 번도 계산을 해 본적이 없었다고, 네게 줄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 사이가 계산이 되는 사이였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기 때문이다. 난 대체 우리 사이에 무얼 바라고 있던 것일까? 무슨 기대를 이렇게 제 멋대로 하고 있었을까.


'그동안 나는 너에게 단 한 번도 선을 그어 본 적이 없었어. 아니, 마음을 주는 게 그저 기쁘기만 했었고, 그 마음에 대한 계산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었어. 그냥, 너와 나 사이는 그래야 옳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이엔 마음을 계산하는 행위 따위는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랬는데.... 나는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주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나와 같지 않은 네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내가 치사해서 그런 거려나. 아니면 그동안 내가 착각 속에 살았기 때문이려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미운 사람일수록 잘해주어 감정을 쌓지 않아야 한다는 말, 밉상 짓을 해도, 이렇다 저렇다 따져 묻고 말해도 관계를 틀어버리기 싫으니 떡 하나를 더 주게 된다는 말.


미운 놈은, 마음은 덜 나눠줄지언정, 이해 안 된다 욕을 할지언정, 결국 떡을 하나 더 먹게 되는 것이고,

안 미운 놈은, 마음은 통할 지언정, 더 기대하는 대신 덜 조심하게 되어 결국 떡 하나를 먹는 만큼 떡 하나를 줘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 것인가.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사이는 서운은 하겠지만 미련이 없다. 그러다 어느 한 사람이 마음을 주면 그 마음이 더없이 커 보인다. 결과론 적으론 감사함이 남는다.


서로 이것저것 주고받는 사이는 풍족함이 있겠지만 계산이 선다. 그러다 어느 한 사람이 마음을 덜 주면 금세 그 빈자리가 느껴져 아쉬움이 생긴다. 결과론 적으론 서운함이 남는다.


아직 모르겠다. 나는 너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네가 그렇게 말해 내 마음이 너무 서운 했다고, 나는 사실 내 욕심보다 너를 더 많이 생각했었다고, 너에게 주는 모든 것이 아깝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내가 갖은 모든 것을 너와 나누고 싶다고, 그게 나의 기쁨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상대방의 기대에 어긋날까 봐 다시 선을 그어 버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친구의 마음을 알아 버렸으니, 결국 기대를 갖게 만든 내가 탓이 되어 버려 무섭다. 너에게 잘 보이려던 내 마음이 기대를 만들고, 그 기대에 보답하고자 내 가랑이가 찢어져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혹여 아프다고 말하면 '그러길래 나한테 왜 기대하게 만들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봐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내가 한심하고 꼴 볼견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것이겠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심해서 그런 것이겠지,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 그런 걸 테지,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 그런 거였겠지, 내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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