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 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아래층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었고 아파트 특성상 층간 소음이 발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엇보다 아래층 이웃과 인사를 트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빈손으로 인사하기 민망해 배 한 박스를 사들고 아랫집으로 향했다. 초인종 마이크에 대고 윗집에 이사 온 사람이라고 나를소개 한 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현관을 향해 뛰어오는 아이들의 소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비친 건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과 배가 볼록한 임산부였다.
미리 준비한 뇌물을 전하자 아이들이 과일이 생겼다며 신나 했다. 발랄한 남자아이 둘을 보는 순간 나도 신이 났다.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예민한 직업군을 갖은 이웃이 살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이 집도 나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집이니, 거기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이 둘씩이나 있으니 층간 소음에 너그러울 거라 기대했다.
바짝 긴장한 마음을 풀고 앞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당부의 말을 한 뒤 집으로 올라왔다.
아래층 이웃이 깐깐할까 걱정하는 신랑에게 신이나 답했다.
"걱정할 것 없을 것 같아. 아랫집은 무려 아들이 둘씩이나 있는 집이고, 지금 임신 중인 그 아이도 아들이래."
이사한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근처에 살고 있는 동생네가 놀러 왔다. 아이들은 고맘때의 아이들답게 한 껏 들떠 신나게 놀아댔다. 피아노도 몇 번 치다가, 곰새 다른 방으로 옮겨가 레고 놀이를 하다가, 베란다로 건너가 자기들끼리 낄낄 거리며 놀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벨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아파트에 살며 세대 인터폰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없었어서 처음 몇 분은 이게 대체 어디서 울리는 벨인지 두리번거리기만 했었다. 잠깐 소리가 끊기는 듯 싶더니 다시 요란하게 울리는 인터폰 소리.
화면을 보니 아랫집 호수가 적혀있다.
얼떨결에 수화기 버튼을 누르자 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너무 떠드는 것 같아요. 우리 애가 어린이집 낮잠 적응 중이라 지금 잠자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윗집이 너무 떠들어 애를 재울 수가 없어요.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겨우 오후 1시를 넘어선, 한마디로 인간들의 행동이 가장 역동적일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집 안을 운동장이라 생각하고 뜀박질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조용히 해달라니....
살아생전 처음으로 층간 소음으로 인한 전화를 받은것도 당황스러운데 그 이유가 '내 아들내미 낮잠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으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층간 소음은 무조건 윗 집이 '을'의 입장이니 미안하다고 말 한 뒤 아이들을 단속시키는 수밖에.
그날을 시작으로 하여 아랫집 그녀는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이 친구들이 놀러와 한 두 시간 놀고 있다 보면 어김없이 세대 호출 인터폰이 울린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우리 집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며 실내화를 신는지 확인했다.
심지어는 손님 초대는 가급적이면 지양해 달라는 부탁 같은 으름장을 던지는 게 아닌가.
그녀의 예민 레이더는 온통 우리집을 향해 있었다. 다른 세대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이라던가, 악기 다루는 소리, 놀이터에서 떠드는 소리까지 소리라는 게 들린다 싶을 땐 그 탓을 모두 우리 집으로 돌렸다. 억지인게 뻔히 보이는 사실조차 우선 우겨넣고 보자는 심산 같았다.
내 대처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 분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소음 방지 매트도 깔았고, 실내화도 신고 다니고, 저녁 8시 이후엔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지냈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손님 초대를 일절 금하며 아랫집 눈치를 살피며 지냈는데....
단지내 놀이터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가 내게 따지듯 물었다.
"그쪽이 자꾸 뛰니까 우리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연락이 왔잖아요."
처음엔 그녀가 외계어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인간에게 기본적인 상식이 이 정도로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하지만 세상은 늘 반전의 연속이듯 말끔한 그녀에겐 타인을 배려한다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공감능력이 전혀 없었던 거다.
그러니 본인 아래층 집이 한 층간소음 항의를 윗집에 따져 묻는 것이겠지.
더 이상은 참을 수도 참을 이유도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아래층에 사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물었다.
어째서 그쪽이 말한 층간소음이 두 층 위인 우리집 탓이 되는지. 우리 집 소리가 얼마나 크게 울렸길래 콘크리트 벽을 타고 아래, 아랫집으로 전달이 되고있는 것인지.
새로 이사 온 아래 아랫집 이웃의 말은 그랬다. 위층 형제가 뛰고 소리치는게 보통이 아니었으며 본인도 참다 참다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소음이 멈추지 않고 심지어 베란다에서 담배까지 피워대는 바람에 견딜 수 없어 연락한 것이었다고.
"그래서 제가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글쎄 저보고 그렇게 예민하면 어떻게 아파트에 사냐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 가시라고 하는 거 있죠."
정작 자신이 저지른 잘못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타인이 만들어낸 불편한 상황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람.
아니, 타인의 잘못엔 채찍질하며 요란하게 대응하고 자신의 실수엔 갖은 이유를 만들어 포장하는 사람.
더 최악은 본인이 만들어낸 잘못까지 남에게 뒤집어 씌우며 발악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웃사촌 이었다니.
시끄럽다고 윗층에 항의하는 아래 아래층,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아래층, 아래아래층의 층간소음이 우리집 때문이라고 아랫층의 항의를 받는 우리 집.
이렇게 세 집의 층간소음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신기한것은, 우리 아랫층만 빼고, 난 아래아랫층, 우리집 윗층과는 무리없이 인사하며 오며가며 먹거리도 주고받으며 훈훈하게 잘 지내고있다. 그녀도 그럴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호구 잡힐 줄 알았으면 이사 온 첫날 배상자를 건네줄게 아니라 목소리 크게 '나 정말 예민한 사람이니까 건들지 말아요!'라고 으름장을 건네줄걸 그랬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처럼 나도 인터폰을 받자마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싸웠어야 했어.'
이젠 이사 첫날처럼 윗집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나를 '을'이라 생각하며 맞춰가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시끄럽다 떠들면 (그녀가 아래 아래층 에게 말한) 그렇게 예민하면 단독주택 이사 가시라 권하기도 하고, 아무렴 아들 셋이 뛰는 강도와 오후 4시에나 집에 들어와 있는 아이 한 명이 뛰는 강도가 같냐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늘 들려오는 그녀의 저급한 변명.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아래 아래층이 너무 스트레스받게 하니까 서로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이 있어 친정집에 가게 되었다. 현관문 도어키를 누르려는데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박스 하나. 택배라 하기엔 송장이 없고, 그리고 발견한 상자 앞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글씨들의 모임.
'이사 준비로 인한 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사과하며 양해와 배려를 구하는 인간적인 말들'
상자엔 읽기만 해도 훈훈한 메시지만 붙어있는 게 아니었다. 코로나 19 사태를 겪고 있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손 소독제와 알뜰한 종량제 봉투가 선물로 함께 들어있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그들에게 애정과 친근함을 느낄 줄이야.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임을 느끼게 될 줄이야.
문득 우리 아랫집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사 첫날 내가 건네준 배를 받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한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독제가 든 박스를 본 나처럼 기대하지 않은 상대의 친절에 감사했을까?
내가 인사를 간 이유는 윗층에 산다는 이유로 층간소음에'을'의 입장이 됐음을 시인하려던게 아니라 순수하게 이웃사촌과 잘 지내고싶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짐작이라도 했었을까?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어쩜 이렇게 좋은 이웃을 두었냐는 내 질문에 엄마가 말했다.
"덕을 많이 쌓으면 되는 거야."
아직 내가 쌓아놓은 덕은 먼지 한 톨에 불과한가 보다. 턱없이 부족한 공덕 때문에 5년의 층간소음 전쟁의 주인공이 된 것이겠지. 이해하고 이해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쌓은 덕의 덕을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