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킬번댁 Jan 08. 2021

사회적 거리두기, 눈사람 너도!

이런 제길. 코로나!!

오후 7시였다. 뭐하냐 묻는 친정아버지의 전화에 "지금 저녁 먹는 중인데?" 했더니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으면 언제 소화시키고 잘 건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아빠는 몇 시에 저녁을 드셨길래 그런 말씀 하시느냐?" 물었더니 " 이 녀석아! 저녁은 6시에 벌써  먹고 드라마 한 편 보고 자려고 준비 중이지!"라고 대답을 주신다. 그러면서 덫 붙이신 말씀이.


"그래! 기왕 늦은 저녁이면, 윤이 (손녀딸) 저녁 후딱 멕이고 밖에 눈 온다. 그냥 눈도 아니고 함박눈이 내리니 소화도 시킬 겸 애 눈 구경이나 시켜주거라!" 하신다.


아빠와의 전화통화는 늘 이렇게 이상 요란하게 흘러간다.

틀린 것 같은데 또 맞는 것 같고, 맞는 것 같은데 또 이상하다.

세상이 요지경이라 그런 건지 이상한 말들이 그럴듯하고 그럴듯한 말인데 이상해 정신이 없다. 이번도 그랬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빠의 이상 요란한 말에 휩쓸려 저녁 9시에 그것도 영하 15도의 날씨에 눈 구경을 가야 할 판이라  '아빠는 무슨!! 이상한 소릴 하고 있어!! 지금 이 시간에 눈 구경을 가냐고, 소화시키다가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고 하니 그럼 내일이라도 반드시 윤이한테 눈 구경을 시켜야 한다며 약속을 받아내신다.


손녀딸 사랑이 차고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분이셨으니 눈만 보면 우리 집 개 아들처럼 좋아 날뛰는 손녀딸 생각이 절로 들어하신 말씀이란 걸 알고는 있다지만.

'세상에! 이 시국에 무슨 눈 구경! 눈 구경은 집 창문 너머로 하는 것도 충분하지!'라는 이 절로 들어 '네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라고 대충 답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우리 아바지가 아니던가.  딸내미의 건성 넘치는 음성을 (귀신같이) 잡아챈 아빠가 거듭 당부에 당부를 얹어 말씀하셨다.


" 너 이 녀석! 이런 날은 춥고 힘들어도 나가는 거야. 나가서 애 눈 구경도 시켜주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태워 주고. 그게 다 추억으로 남을 건데 엄마가 돼서 그걸 힘들다고 안 해주면 너 엄마 하지 마라!"


"그리고, 니가 무슨 재설 작업반 반장도 아니고, 최전방 군인도 아니고, 눈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 애들은 추억이 바로 재산이다. 좋은 추억이 많이 쌓여야 마음에 병도 안 드는 거고. 그러니 힘들더라도 애를 위해 니가 애를 더 쓰고 그래라. 너 기억 안 나냐? 너 어릴 때, 5학년 땐가? 눈 올 때마다 뒷산 약수터에서 시멘트 포대 끌고 썰매 탔던 거? 너 마흔 넘어서도 그 얘길 하잖냐! 다 그런 거다! 부모는 힘들어도 자식 위해서는 다 하는 거다! "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전화를 끊었다. 어둠이 깔린 창 밖 너머의 세상이 온통 희고 그래서 눈부셨다. 바람이 부는 모양인지 도로에 수북이 쌓인 눈발이 부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뱅글 돌아 휘리릭 땅으로 내려앉으며 춤을 추었다.

겨울왕국 엘사가 만드는 눈바람의 모양 같다는 아이의 말에 그렇구나... 대답은 했지만, 글쎄.... 겨울왕국이고 엘사고 간에.


'분위기 보아하니 눈이 녹긴 글렀구나. 내일 고생길이 훤히 열리겠어. 제기럴!'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보다 2도 낮아진 기온과 어제 본 것보다  쌓인 눈을 보니 흐아... 한숨이 나오지만 어쩌랴.

벗어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가자!

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 구경도 실컷 하고 썰매도 타고 오자!


언제부터들 나오셨는. 

아파트 단지는 이미 눈을 굴리고 또 다지며 눈사람을 만들고 눈사람이 아닌 것을 만들며 즐거워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란한 기쁨이던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훈훈하니 정겹다. 오랜만의 소란도 반갑고 훈풍에 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살살 녹고 있던 참이었다. 


앗! 그런데 이거 뭐지? 갑자기 손질 안된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 내리는 처럼 까칠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마스크 때문인가 싶었다.

마스크 때문에 더 이상 루돌프 같은 코에서 흐르는 콧물을  수 없어 서운해 그런가 생각했다.

아니다. 그런 이유로는 거치적 거리는 이 불편함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 왜 그러는 건데?

풀리지 않는 의문에 골몰해 있는 사이 발자국이 덜 한 눈밭을 찾은 아이가 손짓했다.


" 엄마! 여긴 사람들이 안 왔나 봐. 발자국이 없어. 이 정도면 코로나 걱정 안 하고 눈사람 만들 수 있겠어."


그때였다. 누가 내 뒤통수의 잔머리를 족집게로 잡아 뜯는 것 같은 따가움이 온몸을 타고 짜르르 흘렀다.


따스한 풍경 안에 담겨있는 생경함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개인 또는 서넛의 가족이 무리 지어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서로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낯선 풍경 때문이었다.


'눈사람 조차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2021년 겨울. 그 진귀한 풍경 이라니.'



익숙지 않은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 모습과는 반대였던 어릴 적 기억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을 시작으로 (매해. 한 번도 빠짐없이. ) 눈이 오는 날이면 2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사촌들과 함께 집 뒷산 비탈에 올라 눈썰매를 타거나 눈놀이를 했다. 그날도 그랬다.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비탈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는 것을 확인한 아빠가 이런 날은 집에만 있을게 아니라며 사촌들을 불러 모았다. 


다음 해 스무 살이 되는 사촌 언니부터 얼마 전 고래를 잡아 바지 아래 춤에 이상한 종이컵을 신기하게 차고 있는 동갑내기 사촌까지 총 일곱 명의 대식구가 인적이 끊긴 비탈길을 점령했다. 그리고 아빠의 전두지휘 아래 나눠진 썰매파와 눈싸움파를 오가며  시린 겨울바람이 볼에 생채기를 낼 때까지 신나게 놀기를 반복했었다.


얼마나 놀았을까? 갑자기 (고래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호기롭게 썰매를 타던 사촌 녀석이 썰매를 타다 중심을 잃고 데구루루 비탈길 구석으로 박혀 버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제자리에 있어야 할 종이컵이 바지 아래로 데구루루 빠지는 통에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그 아픔을 알리 없던 우리들은 엉거주춤한 그 모습이 재미있어 배를 잡고 데구루루 구르며 웃었고, 일곱 명 대식구의 웃음소리는 산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아파트 단지에 닿아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몇 동 몇 호에 사는 누구와 골목 건너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어떤 아이들이 매끈한 고무 대야를 끌고 오거나 단단한 널빤지를 들고 나타나서는 함께 어울려 놀기를 원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년 약수터 비탈에 눈이 쌓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동네 아이들은 그곳에 모였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마스크 없이. 사회적 거리 따위 유지하지 않은 채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눈 위를 뒹굴며 어울렸다.


눈이 오면 으레 그리 노는 줄 알았다.

흐르는 콧물을 옷소매로 쓱 닦아도 바이러스니 어쩌니 하는 걱정 없이. 설레어 추위를 느낄 틈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즐겁기만 한 것. 그렇노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눈사람 조차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만들어야 하다니.

세상 참 요지경 속이다!



우리 옆으로, 어림잡아 3~4 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있는 가족이 보였다. 눈사람을 제친 특이한 조형물이어서 그랬는지 이글루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모여있었.


모여든 구경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숨결이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이글루의 완성과정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런! 

아직은 사회 규범보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꼬맹이가 구경꾼들을 스쳐 이글루로 달려가는게 아닌가.


순식간에 달려 나온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고 구경꾼들은 그런 아이를 마치 바이러스 덩어리라도 되는 듯 차갑게 피하며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신기한 이글루를 만드는 가족들 틈에 내 아이도, 옆집 아이도, 호기심이 많은 꼬맹이도. 너나 할 것 없이 두루 한데 모여 눈을 나르고, 그 눈을 빚어 멋들어진 이글루를 완성했것이다. 그렇게 힘을 모아 함께 이글루를 만들었던 아이들은 눈이 오면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모여 눈놀이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 테고. 그랬다면. 그럴 수만 있었다면.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행복한 겨울남았을 텐데...


아이가 골라놓은, 발자국이 별로 없는 화단에 자리를 잡았다. 포슬 한 눈을 한 움큼 집어 토닥이니 제법 단단한 눈 뭉치가 만들어졌다. 이리 굴리고, 눈덩이에 살을 더해 다듬어 강아지, 오리 가족을 만들었다. 둘만 있으면 심심할 것 같다며 속눈썹에 하얀 얼음을 달고 있던  딸내미가 깍두기 눈사람을 만들었다.


강아지와 오리가 결혼해 깍두기를 낳았다는 믿지 못할 사실에 낄낄 거리며 웃고 있는데 모자를 푹 눌러써 눈이 겨우 보이는 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눈사람 만들어요? 우린 저기 밑에서 토끼 눈사람 만들어요."


"우린 강아지랑 오리랑 깍두기 눈사람이야!"


"우와 신기하다. 그런데 깍두기 눈사람은 뭐예요?"


" 응.. 깍두기 눈사람이 뭐냐면..."


" 철수야! 사람들 근처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엄마가 말했잖아. 너도 조심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조심해야 해!"


모자를 눈썹 아래까지 눌러쓴 아이는 강아지와 오리가 결혼해 깍두기를 낳았다는 신비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러 떠나버렸다. 아이의 발걸음 뒤로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가 무슨 겨울왕국 엘사와 안나도 아니고. 왜 함께 눈사람을 만들지 못하는 건지. 화나고, 안타깝고, 슬프지만.

어쩌랴.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는 우린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고 지켜줘야 하는 것을.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졌다. 이제 그만 주변을 정리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신비한 눈사람 가족들을 사진에 담아두고 집으로 가는 길. 2미터 아니 3미터 보다 더 멀게. 팔을 길게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듬성듬성 자리한 눈사람들을 봤다.


눈사람은 귀여웠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행복이 빠진 눈사람의 모습은 안쓰럽고 씁쓸해 달갑지 않았다.


2021년도에 첫눈이 내리면. 그땐 우리 다 함께 웃으며 눈사람을 만들 수 있으려나?

그때까지 우리. 이 힘겨움이 지나갈 때까지.

마음만은 절대 거리두기 하지 말자고, 그래 해보자고 약속하고 또 부탁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