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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Dec 18. 2020

나는 오늘도 자가 유목민.

여섯 시 십 분 전.
제부를 기다리며 서둘러 매무새를 다듬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다.

기념일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나 물어보니 데이트는 무슨. 근처 아파트에 집 보러 가는 게 무슨 데이트냐며 심통 섞인 목소리로 답을 한다.


요즘 아파트 가격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 웬만큼 급하거나, 종잣돈을 갖지 않고서는 매매가 쉽지 않을 텐데. 서로의 경제 사정이야 안 봐도 뻔한데 무슨 돈이 있어 집이냐 묻자 무언가 불편한 듯, 거슬린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입을 삐쭉거린다.


솔직히 거슬렸다기보다는 지난 6개월간 집집, 그놈의 집 얘기가 해결이 나지 않아 갑갑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나온 표현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생을 보니 말 못 할 큰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아파트 시세야 클릭 몇 번이면 우루룩 쏟아지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한들 은행님의 손길을 빌려야 살고픈 집의 매매가 가능할게 뻔한데.  굳이 이 시국에 이사를 강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목소리에 울음 반, 답답함 반을 담아 말을 한다.


" 에휴... 코딱지만 한 방 세 개가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 그중 방 하나는 희한한 사다리꼴 모양이라 방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는 그런 구조의 집. 나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춘기 접어든 남매를 키우기엔 그 집이 딱히 충분하진 않더라고. 그래서 방 하나, 온전한 네모 방 하나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팠던 건데. 언니야... 어휴... 쉽지 않다."

 

동생은 지난 6개월 동안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를 생각해 네모 반듯한 방이 있고 거실이 조금 더 넓고 이왕이면 화장실도 하나 더 있는 집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더랬다. 마음 같으면야 방이 네댓 개는 되는, 대궐 같은 평수의 집을 갖고 싶었을 테지만 꿈이란 그리 쉬이 이루어 질리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


결국 꿈을 실현 하기엔 마주한 현실의 벽이 까마득 높게 솟음을 인정한 동생은 그저 소박하게, 다 큰 남매를 한 방에 재울 수는 없었으니 1인 1방만 이래도 가능한 집을 찾고 있는 거라 했다.


그런데 웬걸. 지난 몇 개월간 집 값이 미친 듯이 치솟아 휘청휘청, 난리 버거 지를 부리더니 종국에는 지금 갖고 있는 집을 팔아도 네모 반듯한 방 하나가 있는 집은 절대 찾을 수도, 살 수도 없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언니, 나 진짜 속상한 거 알아? 얼마 전 보러 간 집은 글쎄 한 달 사이에 1억이 올랐고, 또 어떤 집은 계약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벌써 계약되고 없더라고. 고작 10분? 그거 고민하는 사이에 집이 나간 거야. 또 말해 뭐해. 내가 아는 어떤 엄마는 얼마 전 분양한 아파트에 운 좋게 두 채나 당첨되더니 세상에 그게 한 채에 10억씩 올랐데. 앉아서 20억을 벌었다는 거야. 그게 말이야 방구야. 근데 나는 뭐야. 내가 100평짜리 집을 갖겠다는 것도 아니고, 갭 투자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애들 방 하나씩 주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바람인 거야? "


나도 안다. 요즘, 그래 요즘.

이게 대체 뭔 이상스러운 조화인지, 노릇인지 모르겠지만 부동산 똥풍 때문에 아파트든 빌라든 사람이 살만한 집이면 어디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버린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몇 달 전부터 들썩이기 시작한 부동산 파도가 어찌나 세게 넘실댔으면,  요놈의 파도가 대한민국 변방 촌구석에 있는 우리 아파트까지 넘어와 온 동네를 들썩이만들었을까.


때문에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뜬금없이  단체 톡방이 생겼다던가, 엘리베이터와 출입문에 날마다 갱신을 거듭하는 계약 시세가 적힌 종이가 붙었다던가, (이번 주 들어서는 조금 잠잠해졌지만) 아파트 가격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피크를 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투기 업자들의 거짓된 정보에 속아 잘못된 금액에 집을 내놓지 말라는 방송이 하루를 멀다 하고 나오기도 했다.


우리야 고작 한 채 있는 집. 당분간 집을 옮길 일도, 팔 일도, 없었으니 넘의 나라 얘기임엔 틀림이 없었지만 막상 동생의 한탄을 듣고 있자니 '거참. 세상 어찌 돌아가는 건지...' 보통일이 아닌 듯싶었다.




세상 말세다 싶고 동생의 한 숨이 마음에 남던 그날 저녁.

오랜만에 수원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는 오랜만의 통화임에도 안부인사 따위 급한 게 아니라는 듯 현재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너도 알잖아. 나 전세계약 지나면 이 집 사려고 했다니까? 딱 2년만 허리띠 졸라매고 종잣돈 모으면 누가 뭐래도 이 집 먼저 사려고 했다니까. 그런데 이게 뭐니. 자고 일어나면 1억씩 집 값이 올라.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세가에 대출 얹어 살 수 있던 집이 이젠 전세로도 갈 수 없는 지경이 됐어. 누구는 있는 집 몇 억씩 오른 것도 모자라 갖고 있는 분양 딱지만 몇 천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하는데 난 뭐야. 대한민국에 있는 이 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니? 나 요즘 너무 억울해 의욕도 없고 정말... 우울한 거 있지."


친구의 하소연은 끝도 없이 멀리, 멀리 달아나 결국엔 돈 한 푼 남겨주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더 달려서는 나라에 대한 원망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틀린 말이 하나 없었지만 뭐였을까? 그래도, 허리띠 졸라매고 모은 돈으로 얻어걸린 내 이름 적힌 집 한 채가 있어서 그랬을까? 그녀의 하소연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이 되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 될 거다. 걱정 말아라. 방법이 있겠지.

형식적인 위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친구에게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기분인지.

친구와 통화하는 동안 갖던 평온한 안심에 큰 구멍이 뚫린 듯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종이 한 장으로 앉은자리에서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지?

아무리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이라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야?

운이 얼마나 좋으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청약 딱지를 그리 쉽게 가질 수 있는 거지?


운 좋은 사람과 내 처지의 거리가 끝도 없이 깊고 넓어 보여 배알이 살살 쓰렸다. 쓰린 배를 쥐어 잡고 책상 위에 펼쳐진 가계부를 들여다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가지 세 개 1800원, 콩나물 두 묶음에 1500원, 오이 세 개에 2000원. 그리고 눈에 띈 노란 동그라미.

'시금치 1500원' 그 옆에 형광 별 세 개.


오늘 오전 집 앞 마트보다 400원 저렴한 시금치를 사기 위해 발품 30분을 팔아 얻은 대가에 대한 자축의 의미가 담긴 표시였다. 가계부에 적어 내려 간 시금치 이득금이 400원이 아니라 400만 원을 번 것 같은 만족감에 그려 넣은 별 모양이었다.


딱지 한 장이 몇 천만 원씩 거래된다는 억!! 소리 나는 말들을 들어서 인지. 갑자기 종이 위에 적힌 400원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대견했던 만족감이 궁색해 부끄러웠.




그렇게 궁색한 가계부를 보며 아무리 악착같이 아끼고 모은들 인생에 한 방이 없으면 그 또한 별것 없는 일지 모른다는 무연함에 괴로워하는 사이 퇴근한 남편이 격양된 목소리로 할 말이 있다며 의자를 끌어 앉았다.


남편은 목소리에 다급함을 실어 아파트 시세가 빼곡히 적힌 부동산 앱을 들이밀었다.  전화기 화면엔 오늘도 신고가를 갱신한 아파트 시세가 적혀있었다.


집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자기야!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 같은 월급쟁이 서민들은 평생 큰돈 질 일이 없어.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참에 우리도 돈 좀 만져보자."


물론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1년 내내 상사 눈치에 쪼그리며 번 돈을 불과 일주일 만에 벌게 된 모양새니 신명 나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집 값이 허리케인을 타고 상승한다고 한 들, 설사 이 집을 이득의 꼭지에서 팔았다 한 들, 우리 집만 호재 일리 없지 않은가.

내 몸 누일 또 다른 집이 영끌 없이 내 손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 않은가.


남편은 포기가 쉽지 않았던지 부동산이 아니면 ( 또는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면 우리 같은 월급쟁이는) 노후를 위한 대책을 세울 기회조차 없음을 강조했다. 오죽하면 부자 되는 지름길이 부동산, 주식, 유튜브로 정해져 있다는 소리까지 들리냐며 힘주어 설득을 하지만. 글쎄. 머리는 알겠는데 막상 순풍에 돗을 피려고 하니 겁이 나는 건 왜일까?


남편에게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을 해보자 말했다.

장장 10년이다. 아장 거리며 걷는 아이가 어느새 열한 살이 되어 친구들과 마음 편히 자전거를 타며 놀 수 있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목소리, 눈빛만 봐도 누군지 알아 먼저 안부를 묻는 이웃이 있는 곳이다.


백화점 하나, 그 흔한 패밀리 레스토랑 하나 없는 촌구석일지라도, 아이가 자라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눈길 닿는 곳마다 새겨져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을 아무리 억 소리가 난들 쉽게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무슨 유목민도 아니고 집 값 불리자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은 업그레이드라고 말하지만 연기 같은 헛된 희망을 얻자고 자가 유목민이 되는 건 싫었다.




씁쓸한 상처만 남은 남편과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 가계부에 적힌 글씨를 다시 봤다.


'시금치 1500원' 


어쩌면 내 열정의 값 일지 모를 저 금액을 보며 어떤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 저 글씨가 ' 분양권 프리미엄 1500만 원'으로 바뀔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우리도 유목민처럼 떠돌지 않고도 보장된 노후를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해봤.


지금처럼 몇 백 원의 티끌을 모으다,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집이 있어도 떠돌아야 하는 자가 유목민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마트 전단지를 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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