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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Dec 04. 2020

그래서 고맙다 말하려구요.

살포시 브런치북 추천 드려요.

마음이 아픈 언니가 있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혼자 먹는 점심밥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도.

모두 마음이 아픈 언니를 위한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침 조례 시간부터 보충수업이 끝날 때까지.

1 분단 세 번째 줄에 앉은 소현이는 선생님을 제외한 반의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래서 였을까?

대부분의 반 아이들은 그녀를 교실 안을 부유하는 먼지 같은 존재라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존재'


"쟤는 왜 맨날 저러고 있어? 쟤는 왜 맨날 학교 행사마다 빠지는 건데? 쟤는 왜 수행평가 제외자야? 쟤는 대체 왜.."


소현이는 학기 첫날부터 담임 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를 받는 특별한 아이였다. 조별 수행평가나, 반 별로 진행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열외 판정을 받았고, 심지어 소풍이나 수학여행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유를 알리 없는 예민하고 까칠한 사춘기 소녀들이 그녀를 곱게 볼리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연신 무언가를 적어대는 소현이 주변으로 근거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은... 쟤.... 신병 같은 거 걸린 거래.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무당한테 갔더니 글쎄 신내림을 받아야 낫는 병이랬나봐..."


그때부터였다.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 그 누구도 소현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말을 걸어서는 안될 것 같았고, 말을 건들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 저 음울한 아이와 가까이 있으면 나한테도 귀신이 붙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내려앉은 햇살만큼이나 빛나던 피부, 단정하고 고왔던 눈매, 입술을 다부지게 다문채 붉은 줄이 그려진 노란 공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소현이를 보게 되었다.

호기심이었을까? 두려움에 맞서려는 객기였을까?

대체 무얼 쓰고 있기에 연필을 쥔 손가락이 희게 변한 줄도 모른 채 푹 빠져있는지. 귀신이 씌었다는 이 아이가 노트 위로 적어내는 말들이 들리는 소문처럼 귀신을 부르는 주문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폭이 1센티도 안 되는 노트한 줄에 깨알 두 개를 쌓아 올린듯한 점들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봐야만 그제야 노트를 가득 메운 저 작은 점들이 글씨였음을 알게 하는. 어깨를 좁히며 오롯이 몰두해야만 써질 것 같은 깨알의 글씨들이 노란색 노트 안에 가득했다.


"야! 김 소현!"


대답 대신 양손으로 공책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는 소현이가 보였다. 그리고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엔 의심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소현인 조심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다가온 내 시선을,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소리 없는 그녀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한테 말 걸면 안 돼. 그거 몰랐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그날부터였다.

신병 걸린 애 옆에 있다가는 똑같이 귀신을 보게 된다는 그 무서웠던 헛소문이 조각나 버린 날이. 그런 애와는 절대 말을 섞어선 안된다는 암묵적 규칙 깨어진 날이.



쓰고 싶은 말들이 많다고 했다. 써야 하는 말들이 많다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일찍이 학교 생활을 접어야 한 언니를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짧은 동화 같은 거야. 아니, 동화보다는 길고 지루하지만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얘기 있잖아. 그걸 쓰고 있는 거야. 쉬는 시간이랑 점심시간 틈틈이 쓰다 보면 집에 가기 전에 한 두 편이 완성돼. 그걸 언니가 읽어."


"언니는 다른 소설책은 거짓말 투성이라 읽기 싫데. 잘 모르겠지만, 언니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가 그랬데. 인생이 전부 거짓말인데 그 이유가 거짓된 소설 때문이라고. 그래서 언니는 내가 쓴 얘기만 읽어. 거짓이 없어 좋데."


열다섯 살.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배려하려 들지 않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구르는 낙엽에 이유 없이 까르르 웃어 보여도, 신나는 코미디 프로를 보며 통곡을 해도 어디 하나 이상할 것 없어 보이던 사춘기 시절.

소현인 그 시절을 오직 글을 써 내려가는 것으로 ,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한 위로의 글을 쓰는 것으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그릇된 소문도 견뎌내고 있었다.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마음이 아픈 언니를 위해 거짓 없는 글을 쓰고 있는 소현이가 대단해 보이다가도 몹시 안쓰러워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매번 코를 훌쩍였다.


그렇게 우린,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등하교를 같이 하며, '2학년 3반의 이상한 애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엿가락처럼 붙어 다녔다. 그녀가 잠들기 전 썼다는 기묘한 이야기를 읽고, 한결 나아진 언니가 이젠 약을 줄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나누며 서로를 의지했고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양분 삼아 열다섯의 우리를 성장시켰다.


" 그래서,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


"거짓을 쓰지 않는 소설가. 진짜를 쓰는 소설가."


"그게 돼? 소설은 말 그대로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섞어 쓰는 거 아냐? 그게 아니면 다큐멘터리지!"


"언니가 아홉 살 때였나? 그때 처음으로 울면서 했던 말이 '시끄럽다' 였어. 언니 말로는 어떤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귓속에서 계속 말을 걸고 있었데. 처음엔 엄마가 티비를 켜 놓은 줄 알았고, 다음엔 아빠가 라디오를 틀어 놓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오직 언니에게만 들린 소리였던 거야. 그땐 영문을 몰라 언니가 무섭기만 했어. 언니는 매일 울거나 소리치거나 심해지면 약을 먹고 자거나. 딱 그 모습뿐이었거든. 소아 스트레스성 이명? 몰라 병원에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으레 그럴 수 있다고 약 먹고 쉬면 괜찮다고 했다는데.... 언니는 괜찮지 않았나 봐. 언젠가 학교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언니가 연필로 귀를 찔렀나 봐. 그 바람에 피가 났고..... 흠..... 그 모습을 본 반 애들이 언니를 괴물취급했었나 봐. 엄마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서는 나오지 않았데. 그렇게 학교를 나온 뒤부터는 한 번도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 그런 언니의 유일한 즐거움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내가 쓴 글이었나 봐. 그걸 알기 전까지는 언니가 내 방에 들어와 몰래 일기를 훔쳐보고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마다 화가 났는데..... 늘 멍 한 표정의 언니가 내가 써놓은 글을 읽을 때마다 웃는 모습을 본 뒤로는. 진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니가 말한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 글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도 웃게 하는 글 말이야. 난 그게 진짜 글이라고 생각하거든. "



그 해 겨울방학.

내내 우린 함께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물론 진심이 부족해 진짜가 되지 못한 내 글은 늘 소현이 언니에게 퇴짜를 맞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겠다는 열망은 열여섯 살이 되어도 변함이 없었고 그 열망의 결과물을 얻고자 우린 시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다.

'니가 뭔데 거길 나가?' 냐고 묻는 담임 선생님에게 '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글을 쓰려구요.' 라는 대답을 남기고 말이다.


백일장 결과 발표가 있기 몇 주 전.

갑작스레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현이의 전화를 받았다. 아픈 언니를 위한 좋은 치료법이 미국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큰딸과 그런 언니를 둔 막내딸이 한국에서 함께 자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인정한 소현이 부모님의 거짓말이었을 테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현이의 목소리가 밝았다. 아마도 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을 거다.


"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진짜로 우리가 상을 받게 되면 내 건 꼭 니가 갖고 있어 줘. 잘 갖고 있다가 다음에 만날 때 전해줘야 해. 알겠지?"


소현이가 미국으로 떠나고 정확히 한 주가 지나 우린 나란히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뛸 듯이 좋았어야 했는데, '니가 뭔데 거길 나가'냐는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복댕이를 봤나'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후로, 손에 덩그러니 놓여 갈 곳 잃은 상장을 받은 후로는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열여섯 살이 20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 브런치를 표류하다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제목 '스칼렛'.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뛰었다. 조바심이 났고 주인공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속이 답답했다. 방금 전 돼지 머리를 빨며 비릿한 돼지 냄새를 맡은 사람이 나였던 것 마냥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도 선명한 글이었다.


다음 글을 읽고, 또 다음 글을 읽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글을 쓴 작가는 분명 불우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상처를 글로서 승화시킨 그런 사람 일거라고. 그런 경험이 없고서는 마음 저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스칼렛'에 대한 원망을, 상처 받은 자들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뚜렷하게 묘사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내 확신과는 달리 소개란에 적혀있는 '신소운 작가'는 겨울왕국에 살고 있는 선생님이며 세 아이의 엄마였다.  상처로 얼룩져 그것을 글로써 토해내야 하는 사람이 아닌 간간히 단편 소설을 문예지에 올리는 어쩌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 방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 펼쳐진 현실처럼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궁금해하다 갑자기 울컥. 연락이 끊긴 소현이가 생각났다.

진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신소운 작가가 어쩌면 진짜의 소설가가 된 소현이 일 것만 같아서.




총 열 한 꼭지. 한 글당 15분이 넘는 브런치 북 '내가 사랑한 거짓말' 엔 책 제목처럼 거짓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진실된 이야기들이 단편 소설로 꾸려져 있다. 읽는 내내 단 한 번도 이 이야기들이 참일지 거짓일지 의심 하지 못 할 만큼 몰입력 강한 우리들의 이야기.  


'거짓을 그리고 오해를 낚음에도 오늘의 끝과 내일의 시작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우리를 찾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픔 가득한 위선 아래에서 발견되는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글을 읽는 내내 명치끝이 막힌 느낌은 비단 슬플 때만이 아니라 황홀한 순간에도 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매 순간이 진짜인 그런 책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끼고, 또 아껴 읽으며 위로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다섯 살 소현이와 함께 글을 쓰던 그 시절의 내가 되어 진짜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어린 소현이가 어른이 되었다면 분명 '내가 사랑한 거짓말' 같은 진짜의 이야기를 썼을 테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겠지.


"진짜 이야기는 마음을 뛰게 만들어. 마음을 뛰게 만든 글은 그 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진짜 글을 읽은 사람들은 따지려 들지 않고 무조건 믿게 되지. 그런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거야."


'내가 사랑한 거짓말' 안에서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신 '신소운 작가님' (https://brunch.co.kr/@smilekay)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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