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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Oct 23. 2021

탈 집구석.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이 나이에 남편 치다꺼리하기도 힘든데, 자식 치다꺼리까지 하란 말이야?"


아빠의 '큰딸 내외와 함께 살기' 제안은 엄마의 벼락같은 한 마디에 잊히는 듯했으나 복병으로 나타난 남편 덕분에 다시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아버님 하고 사는 게 왜 말도 안 되는 건데? 당신도 어렸을 때 외할머니랑 같이 산 적 있었다며"


남편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어이가 없어 눈만 말똥히 뜨고 있자 말을 바로 잇는다.


"솔직히 나 출장 갈 때마다 당신하고 윤이 걱정 많이 돼. 많게는 한 달 내내 나가 있잖아. 그때마다 당신이랑 윤이 생각하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힐 때도 있어. 그런데 부모님 하고 함께 살면 안전에 대해 걱정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 물론 불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서로 양보하면 되는 거고 윤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


남편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의 직업상 난 한 달중 반 이상을 남편과 떨어져 지냈고,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솔직히 무서울 때가 많았다.


문을 걸어 잠갔는데도 가끔씩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고, 특히 남편의 출장이 길어질 때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더 힘들기도 했었다. 그러니 남편의 말처럼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 분명 득이 되는 부분이 많으리라.


 하지만 구미가 당긴다고 덥석 먹었다가는 체하기 딱 좋은 상황.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 독립된 생활을 한 사람이, 엄마의 이혼 통보에 눈물을 흘린 동생과는 달리 '이혼하라! 대신 나한테 피해는 주지 말고!'라는 냉정한 말을 한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내가 얼마나 효심이 솟구쳐 나이 서른여섯에 부모님 등살을 견디며 살겠는가.


특히 아들이 장인, 장모 챙기는 냄새만 풍겨도 눈에 불을 켜고 싫어하는 시댁이 등 뒤에 버티고 있는데 굳이 눈치를 보면서까지 합가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정서는 무슨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난 남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콧방귀를 뀌긴 했는데 뭔가 마음이 찜찜했다. 아무리 가족이래도 사생활을 공유하며 는데 질겁하는 나인데도 남편의 말을 자를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아이의 정서에 관한 이유에서였다.


난 막장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아이가 조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2년간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본 경험 때문에도 그랬고, 손주를 향한 조부모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는 다른 무조건적인 사랑이기에 기회가 된다면, 아이를 위한다면 조부모 찬스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기회 같은 것이었다.


내게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내 인생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치유의 카드이고 그런 추억 덕분에 난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손녀딸 사랑이 누구보다 넘치게 과한 분들 아니던가.


분명 손주 사랑이 극진한 엄마 아빠니까 외할머니가 내게 만들어준 치유의 카드보다 더 강력한 것을 아이에게 만들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머리는 알겠는데 자신이 없다. 남의 집 아들인 사위는 함께 살자고 거침없이 말하는데 정작 나는 내 부모와 함께 사는 게 이렇게 고민이라니.


속으로 끙끙 거리며 잠 한 숨 못 자는 날들을 보내다 마침내 '어머님이 만들어준 아침 먹고 출근하고 싶다'라는 남편의 말과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 살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난 속수무책 백기를 들었다. 그래 내가 졌다.

그리고는 남편과 아빠와 힘을 모아 엄마를 설득했고 삼고초려 끝에  친정 부모님과의 합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역시나! 예정된 문제는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

합가 첫날부터 나와 엄마의 부엌 주도권 쟁탈전이 일어났고, 한잔 하기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손녀딸은 난데없이 물 잔을 들어 올려 짠을 외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한잔해! 짠! 을 외치고 있다니 정말....환장할레이션이다.


게 끝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고래싸움에 낀 새우가 된 나는 뜻하지 않게 부모님 사이에서 싸움의 중재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모님의 하소연을 듣는것은 또 다른 괴로움의 시작이었다.


아침잠이 없는 부모님 덕덕분에 첫 식사는 무조건 오전 7시, 즉 늦잠이라는 단어가 집안에서 사라지고, 느긋한 주말 브런치를 먹는 행복을 포기해야 는  애교였으니.


 정신은 피폐해졌고, 마음은 불안해졌다. 매일이 편한데 피곤했다. 자유가 사라진 것 같았고, 모두가 행복한데 나는 그러지 못한것 같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못된 연민까지 솟아나 날 힘없고 처량한 영혼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자유를 찾아 도망 갈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저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 손에 들어온 여행서 하나. 그래. 떠나야겠다.


 어떻게든 이놈의 집구석을 벗어나야 되겠다.


그렇게 몰래. 나는 탈 집구석 계획을 세웠다. 어디를 갈지, 경비는 어떻게 할지, 아이는 어떤 식으로 설득할지, 얼마나 머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식구들이 잠든 밤 다이어리에 몰래몰래 적어 두었다.


애도 있고 남편도 있으면서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남몰래 여행을 계획하는 일이 어찌나 행복하고 설레던지... 당장이라도 떠날 생각에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스릴 넘치는 계획의 막바지! 이제 비행기표만 끊으면 끝이었다. 그랬던 그날!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일부러 방문도 꼭 닫아 놨는데, 왜 아빠는 내가 없는 틈을 타 방 청소를 한 것일까?


아무리 엄마의 청소기 좀 밀으라! 는 소리가 무서웠다고는 하지만, 왜 굳이 굳게 닫아놓은 방 문을 열고 불친절하게  들어간 것일까? 책상에 늘어져 있는 책들이며 잡동사니가 아무리 지저분해 보여도 굳이 치울 것까진 없었는데 그러지만 않았어도 다이어리를 들키지 않았을 텐데.

이미 늦었다.


당시 아빠의 말은 그랬다.

"요것이 우릴 두고 어딘가로 도망치려고 하는구나!"


화장실에 다녀와 방에 들어서자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쎄 했다. 뭔가 들켰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아빠가 갑자기 손녀딸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윤아~~ 윤아!! 네 엄마 도망갈라고 그런다!!"


나는 괘씸죄에 걸린 거다. 그게 왜 괘씸죄인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대가족은 가족끼리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살아야 하는 거였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건 배신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아빠의 입을 막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딸내미는 할아버지 옆으로 와 엄마의 가출 계획을 상세히 듣고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아... 망했다.


"엄마! 미워! 나 버리고 도망갈라 그러고! 엄마 나빴어! 엉엉"


손녀딸이 울고불고 악을 쓰자 그 소리에 놀란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역시나 내가 자식 버리고 가출하려는 소식을 아빠에게 전해 듣고는 등짝 스매싱을 가감 없이 내리꽂으며 미쳤어를 연발했고, 그게 왜 잘못됐는지 모르는 난 그저 억울했고 아빠가 밉기만 했다.


대체 왜 이 상황에서 혼이 나야 하는 건데?


무심한 엄마가 되어 버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포기하긴 싫었다. 결국 설득의 길에 서기로했다.

나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그러면 정말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말에 엄마와 아빠는 기가 막히다며 뒷목을 잡았다.


"밥도 내가 다 해주고, 청소도 내가 다 해주고, 네가 힘들게 뭐가 있는데?"


아니. 어머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가 아니란 말이옵니까? 하지만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아빠도.


순간 두 분은 그동안 보지 못한 위험하고 단단한 케미를 보여주며  공격했다. 어찌나 죽이 척척 맞던지, 처음엔 냉정한 딸을 비판하는가 싶더니 결론은 어차피 가는 여행 우리도 함께 가는 게 이왕지사 좋겠다며 결론을 몰아가는데 이런 환상의 팀 플레이를 보았나....


진작 이렇게 죽이 척척 맞게 살지 그러셨어요. 그럼 나도 이런 쌩 고생은 안 할 거 아니에요. 왜 이제 와서 내 여행길을 막느냐고 소리치자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려고 했다고.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손녀딸. 엄마가 너 두고 도망갈라고 했나 보다.." "우리도 엄마 따라서 같이 가야겠다 그렇지? 엄마한테 너도 데려가 달라고 해 어서!"


말 잘 듣는 손녀딸은 그게 또 맞는 소리인 양 조르기 신공에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의 합동 공격에 딸아이의 눈물이 섞이니... 아수라장도 이런 아수라장이 없다. 갈 거면 같이 가야지, 아니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돌림노래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몇 바퀴 더 반복을 한 뒤 나의 패배로 끝을 보게 되었다. 그래.... 같이 가... 그럴 수밖에 없어졌잖아....


영혼이 너덜너덜해졌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는데 등 뒤로 딸아이가 남편에게 조잘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오늘 있었던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남편이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그러길래... 어딜 혼자 도망가려고 그래.... 당신은 딱 걸린 거야!! 잘해봐 그럼~!!"



동지인지 적인지 모를 남편의 말에 난 눈물을 머금고 혼자 하는 욜로 여행을 과감히 포기했다. 욜로 따지다 골로 간다는게 딱 날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에휴....그래 같이 가지 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한번 가보지 뭐.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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