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의 이름은, 여비

월급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

by 구어령

학자금, 할부

집대출, 할부

자동차, 할부

관리비, 할부

핸드폰, 할부

인터넷, 할부

드라마, 할부

영화도, 할부

음악도, 할부

월급도, 할부


사장님, 혹시 월급은 일시불 안 될까요?

아니면 할부수수료라도?




요즘 월급은 사이버머니다. 핸드폰 알림 한 번과 함께 들어와, 십여 개 알림과 함께 빠져나간다. 돈이 오가는 것도 다 온라인상이고 현금이 필요한 일도 점점 줄어든다.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모습도 찾기 힘들다. 어차피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월급이 데이터가 되어갈수록 월급에 대한 감흥도 사라져 간다.


하지만 월급은 그렇게 흘려보내도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월급은 직장인의 존재의 이유이다. 월급이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것이다. 내 존재의 이유를 그렇게 홀대하면 안 된다. 이유가 무너지면, 존재도 무너진다. 월급을 홀대하면, 내 존재 자체도 홀대받게 될 뿐이다.


이제 월급을 내 옆의 꽃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월급에 각자만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생계비'란 현실적인 이름도 좋다.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오늘의 '생계'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인생유흥비'도 괜찮다. 쉼 없이 빠져나가는 할부금 속에서 어떻게든 유흥을 위한 여유를 만들어내게 될 테니까. 그렇게 월급에 이름을 붙이면, 그렇게 월급에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려주면, 일을 하는 마음도, 월급을 바라보는 시선도 전과는 많이 달라진다.


추천하고 싶은 이름은 '여비'이다. 월급을 이 긴 인생을 여행하기 위한 여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 여행을 잘 꾸려가기 위해 잠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여행을 위해, 더 많은 여비를 벌기 위해 가끔은 비굴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거다. 그래서 개의치 않는다. 여비를 버는 곳이 내 목적지 일리 없으니까, 나는 단지 여행을 위한 여비가 필요할 뿐이니까 말이다.


여비를 벌었다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쉽지만 이 여비는 일시불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쓸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이다. 오래 모았다가 한 번에 긴 여행을 떠나도 되고, 짧은 여행을 자주 떠날 수도 있다.


직장인에게 취미란 후자에 가깝다. 매달 충전되는 월급이라는 여비를 들고 여기저기 흥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한 번 갔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달에는 다른 곳에 가면 된다. 몇 번 갔는데도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린다면 비로소 제대로 된 즐거움을 만난 것이다. 월급을 여비 삼아 내 마음속 즐거움이란 방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일, 이것이 바로 직장인의 취미이다.


어쩌면 그 취미가 단지 즐거움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취미로 하다 보니 직업이 됐다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 또한 취미의 매력이다.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다른 내일이 취미란 탈을 쓰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월급은 사장님도 누리지 못하는 직장인만의 특권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내지 말고 이 특권에 붙일 당신만의 이름을 꼭 찾기를 바란다. 그 작은 이름 짓기 만으로도 내일은 조금 더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