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이직 후 받은 첫 월급으로, 평소보다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곧바로 다음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따로 여행을 가거나 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돈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저 소소하게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로워진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1년에 한 번씩 손꼽아 기다리며 보았던 공연을 이직 후 2번이나 더 보았다. (보고 싶었던 작품을 한 해에 몇 개씩이나 보는 것은 그 당시 정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밖에도 내 관심과 주의를 끄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다른 가방
좋아 보이는 브랜드의 옷과 신발
종이의 질과 향기가 좋은 값비싼 노트
필기감이 좋은 만년필 혹은 필기구
내 돈 주고 사서 읽기 아까운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
집에 1시간 더 빨리 도착하는 KTX 표
한 달 이상의 정기 구독권
장기로 다니는 영어 회화학원
가성비보다는 분위기가 좋은 식당이나 카페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들(스피커, 헤드셋, 시계 등 )
동남아 말고 돈 모아서 미국 여행
그 밖에 모든 것들...
조금 돈이 생겼다고 이렇게나 좋은 것들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스스로 참 웃기기도 하고, 뜻밖의 물욕에 놀랍기도 하다. 동시에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좋은 물건들이 있었는지 보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이것저것 다 누리고 살다가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나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이니 누가 뭐라고 할까 한다마는, 이렇게 어른이 되고 또 세속적으로 물들어가는 게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욕이 생겨도 나의 소비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 번 물건을 사면 기능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까지 계속 사용한다. 쉽게 질리지 않고 익숙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성격이라서 나의 생활 패턴에 맞는 소비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평소 구매하는 것들 중에서 조금 더 좋은 것이 끌리는 것뿐이다. 그래서 좋은 걸 사서 오래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물욕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