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둘째 주

조금은 성숙해진 나의 첫 명절

by 코끼리

어느덧 2월 15일이다.


작년부터 그토록 기다렸던 설 연휴가 시작된 지 벌써 이틀째다. 나는 19-20일 연차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열흘 가까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다. 대부분의 본가에 있는 시간은 강아지 그리고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산책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대로 공간에 함께하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게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최소 2시간은 내 시간을 확보하자고 다짐하고 내려왔다. 과연 잘 보낼 수 있을까? 기대반 걱정반 내려온 본가이다.


명절맞이 장기 휴가(?)를 슬기롭게 지내보고자 목요일 퇴근 후 계획을 세우러 한강이 보이는 카페에 갔다.

노들섬 근처의 카페였는데 실내는 빛과 음악의 향연이 이어졌고 외부는 한강이 보이는 뻥 뚫린 전망이 무척이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뜻밖의 아름다움에 감사함을 뒤로하고 열흘동안 해야 하는 일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았다.


기본적으로 집에 가면 부모님과 아침을 함께 먹기 위해 9시 전에 일어난다. 체력적인 이슈로 늦게까지 혼자 밤을 새우며 무언가 할 수 없다. 명절이면 차례를 늘 지내기 때문에 여기에 따라오는 대청소, 음식준비, 계단 쓸기 등등 필수 일과는 피할 수가 없다. 또 우리 집은 명절마다 모여서 친척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데, 이 또한 빠질 수 없다. 아마도 식당과 카페에 갔다가 우리 집에 들러 한참 놀다가 가실 것이다. 그럼 또 하루는 무조건 비워두어야 한다. 올해부터는 갓난쟁이 조카 녀석이 함께할 예정이다. 멋진 이모의 역할이 추가되면서 이 또한 충분히 시간을 비워둬야지. 그래서 종합적으로 모든 고민 끝에 '하루 2시간'이라는 내 시간 확보하기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나는 금요일 밤에 내려왔고, 토요일이 지났으며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다.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아직 언니도 형부도 아가도 남동생도 친척들도 오지 않았다.


오늘은 곧 들이닥칠(?)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과 언니와 대청소를 하고 하루 종일 시장과 마트, 정육점 등을 돌아다녔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시장은 정겹고 사람 사는 냄새를 풍겼다. 들려오는 우스갯소리와 흥정의 이야기에 귀가 정다웠고, 다양한 식재료와 생필품 그리고 식기들까지 눈이 즐거웠다.

이후 함께 저녁을 먹고 목표로 했던 2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 근처 카페로 나왔다. 역시나 명절을 앞두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 대가족 단위의 손님이 눈에 띈다.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와 귀여운 아가 그리고 가족들의 대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까지 평상시에 보기 드문 풍경을 접하는 게 색다르다. 모르는 사이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서 좋다.


내가 어릴 땐 명절은 마냥 귀찮고 성가신 날이었다. 나에게 명절날의 연휴는 쉬는 날이 아니라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매년 친척들의 비슷비슷한 질문에 답하면서 굳이 왜 이렇게 모이는지, 또 부모님은 힘들다고 하시면서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여행을, 휴식을 각자 학교 다니느라 혹은 일하느라 못했던 것들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 명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명절은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리고 조상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 마음으로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매년 충분한 음식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가끔은 진짜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이제는 왜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제는 그저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함께하면서 명절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이번 주는 체감상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이번 주 월-금까지 일하고 금요일 밤에 부모님 집으로 왔다. 회사는 명절을 앞두고 일이 많지 않아서 조기퇴근을 여러 번 했으며, 복싱도 열심히 나갔다. 그리고 연휴에 읽으려고 책을 구매했다. (소유냐 존재냐, 헤테로토피아, 작별하지 않는다 총 3권을 읽을 예정이다.) 연휴가 낀 2주간 브런치 글을 여기서 업로드해야 한다. 또 다음 주에 면접이 하나 잡혔는데 그것도 기간에 열심히 준비할 예정이다. 집에 있는 동안 딸과 동생, 이모, 사촌언니 그리고 조카 등의 여러 가지 역할을 위해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30대, 이제는 귀찮기만 했던 명절을 조금 더 성숙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시간을 쪼개는 스킬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성장한 나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면서 슬기로운 2026년 설 연휴를 준비해 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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