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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May 05. 2020

새로운 시작의 다른 말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결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 중 가장 힘든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보이지 않는 결과를 믿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잃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시작이 두려워진다. 그렇기에 과감한(?) 선택 앞에서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나는 대학시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도전했다. 문과생이지만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마트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 시음행사를 하기도 했으며 얼굴이 예쁜 친구들만 가능하다는 카페에서 예쁘지 않은 얼굴로 음료를 팔았다. 어차피 용돈을 벌어야 한다면 다양한 직종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냥 남는 시간에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그만이었고 돈이 생기면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취준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다. 특별한 재주는 없고 어정쩡하게 공부하는 척했던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9급 공무원, 이게 뭐라고 나는 목숨을 걸어야 하며 친구도 만나지 않아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의문이 물밀듯 밀려왔고 합격하면 멋지게 그만두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습이 공부의 원동력이 되어버린 나를 보았을 때 미련 없이 시험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행복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언니의 결혼 준비를 함께 했다. 죄책감에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후 용기를 내서 어릴 적 꿈꾸던 취재기자를 해보기 위해 작은 지역 신문사에 들어갔다. 나는 나름대로 적응을 잘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조직의 안과 밖에서 바라본 직업적 특성에 대한 격차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하루하루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스템에 맞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조직도 살아남기 위해 사회에 적응했을 뿐.

알 수 없는 견고한 벽을 느끼며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고 따듯하게 맞이해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전에 그만두기를 결심했다.



현재의 나는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시스템에서 적절한 선을 찾아 타협하고 열심히 사는 중이다. 이전의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아르바이트인지 취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직장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또한 인생의 방향을 잡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에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모님께 미안하고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지는 한편 조금 더 의연해지고 성숙해진 내 모습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점심시간, 항상 먹던 불고기버거를 뒤로하고 치킨버거를 선택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것이 나에게는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달려있는 엄청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처음 가보는 여행지와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 다른 장르의 음악 등과 같이 일상 속 사소한 모든 것들이 모두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수많은 시작과 끝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때마다 나의 상황은 달라질 것이며 그에 따른 고민과 걱정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나의 작은 바람은 그저 끝나는 것의 두려움도 시작의 일부임을 잊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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