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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Apr 12. 2020

질문 없는 사회

외국인의 팩트 폭격은 아프다.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원어민 회화 교육을 해준다. 첫 수업으로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을 만났고,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기존에 단어를 외우고 읽고 쓰는 영어가 익숙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오가는 대화가 매우 어색했다. 알아들어도 바로바로 이야기하기가 힘들었고, 말을 하려고 해도 버벅거리는 모습은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코로나 19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실제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은 대응을 정말 잘하고 있다며 칭찬했고, 미래에 전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안내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사는 곳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2년 만에 도시를 만들었다는 놀라운 한국이라고 했다. (실제 도시는 아니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놀라우리만큼 발전된 한국이지만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안타까운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매우 편리하고 체계화된 시스템이 있지만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신이 처음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두가 빼놓지 않고 숙제를 다 해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뭐야.. 숙제를 내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외국인은 '왜 숙제를 해왔지?' 하는 질문을 했고 한국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켰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이 부분에서 아이들은 왜 그러한 과제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선생님 하기 참 쉽다고 말하는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해내면서 굳이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시키는 거 하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되는 줄 알았고 잘하고 빨리 하면 칭찬해줬으니까 그냥 그렇게 했다.


수동적이고 남들과 다른 질문에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학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학원에서 아이들은 틀리는 것이 싫어서 시험을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본다. 다른 일을 하는 선생님한테 말을 못 해서 우물쭈물 맴돌고 있는 아이들... 뭔가 그저 안타깝고  씁쓸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어떤 상황에 대해 생각하면 그것이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또다시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연결 회로를 가동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조직과 사회에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지 바라볼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당장 다른 사람에 비해 느리고 뒤쳐지더라도 본인이 현재 맡은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금은 느려도 자신이 낙오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는 사회, 작은 일에서도 자신이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남들과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불행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말을 쓰면서도, 

영어를 배워왔고 웬만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도 '원어민'처럼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바보 같다 느끼며 부끄러워하는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느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 이상 한국에 살았다면서도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외국인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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