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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Aug 12. 2020

나는 절대 니가 아니다

장마와 홈캉스

8월 둘째 주 학원 여름방학을 맞이해 주말 포함 5일이라는 휴가가 주어졌다.  

때마침 나 말고 모든 가족들의 휴가기간이 겹쳤기 때문에 다 같이 모여 당일치기로 그냥 사람 없는 계곡이나 다녀오자고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계곡은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도 무서운 날씨라서 모든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얼굴이나 보자고 모두들 우리 집으로 모였다.

서울 사는 언니네도 대전 사는 동생도 부모님이 계신 전주로 왔다.




일요일


오전~오후

어차피 날씨도 그렇고 코로나도 아직 위험했기 때문에 집에서 그냥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놀자고 하면서 모인 게 일요일 저녁이다. 그전부터 엄마랑 아빠는 사위가 온다고 시장에서 겉절이를 담글 배추와 돼지고기를 사고 각종 밑반찬 만들 재료를 구입했다. 나도 장단 맞춰 요리하는 거 도와드리고 청소하고 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 볼 생각에 기분 좋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기다렸다.


늦게 온 언니네는 저녁을 간단히 먹었고 다 같이 치맥을 뜯었다. 시장 통닭이라며 야심 차게 준비한 아빠의 치킨. 사실 뭐..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다. 언니는 밥은 잘해서 먹는지, 직장은 잘 다니는지 물어보다가 또 아기는 언제 낳냐는 이야기로, 또 내 취업 이야기는 결혼까지 주제가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월요일  


아침

동생이 아침 일찍 대전에서 내려왔다. 일요일에 약속이 있다고 월요일 아침 일찍 온다고 했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히 늦잠 자고 늦게 오겠지 이 자식... 했는데 진짜 일찍 왔다. 8시 반인가 문 열고 들어오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엄마도 놀라고 아빠도 놀라고 철없는 동생이 이제 철이 든 거 같다며 칭찬해주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띄워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쨋든 동생 덕분에 아침이 생각보다 일찍 시작됐다. 늦잠 잘 줄 알았는데 동생의 등장에 9시 반 정도 아침을 먹게 되었다.

오징어 볶음과 수육 고등어 감자조림과 함께 각종 나물과 새로 담은 배추김치와 깻잎김치가 올라왔다. 거기다가 언니가 서울에서 맛집이라고 직접 가서 사 온 도가니탕 전골이 올라오면서 식탁이 정말 부러지는 줄 알았다. 모두 다 배가 터지게 먹고 다 같이 상을 치웠다.


오전

동생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커피를 쏜단다. 다 같이 카페에 갈까 0.5초 정도 고민하고 그냥  takeout 하기로 결정했다. 커피를 사서 올 동안 다 같이 볼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무난하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나온 영화를 고르고 형부가 USB에 영화를 받아 티브이에 연결시켜 틀어줬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성격 급한 엄마도 뭐라도 열심히 하려는 귀여운 사위를 기다려주셨다. 동생이 커피를 사 오고 아버지가 감동했다. 또 철이 들었다며 칭찬해주신다. 딸 셋에 아들 하나, 크게 대들지 않았던 딸내미들에 비해 자주 반기를 들었던 아들이라 그런지 약간 과하다. 쨋든 영화를 보며 갑론을박 하기보단 정말 재미가 없던 탓에 대동단결을 택하여 도중에 꺼버렸다.


오후

우리 집은 복층구조다. 1층은 생활하는 공간이고 2층은 방 하나와 거실이 있다. 사실은 여기가 동생 방인데 자취하기 때문에 그냥 손님방으로 해놓고 친구나 친척이 놀러 오면 자고 간다. 2층 거실에는 공간이 남아서 뭐를 놓을까 고민하다가 아빠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탁구대를 설치했다. 설치까지만 로망이었기 때문에 실제 운동을 하는 것은 엄마와 나와 언니들 뿐이다. 쨋든 집에서 다 같이 모여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다 탁구를 하러 올라갔다. 젊은 피 동생과 배운 사람 형부의 대결, 15대 7로 형부가 이겼다. 언니가 좋아했고 엄마가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가며 탁구를 쳤고 땀을 뺐다. 자존심이 상한 동생의 제안으로 팔씨름과 허벅지 싸움을 했는데 다행히도 동생이 이겼다. 그렇게 웃고 놀다 보니 오후가 다 지났다.


저녁 ~ 밤

오리불고기 외식했다. 한 동네 사시는 고모부와 함께 동네 식당을 예약해 식사했다. 대충 비슷한 근황 토크를 안줏거리 삼아 술자리가 이어졌고 배가 터질 때쯤 일어났다. 뭔가 아쉬운 기분에 우리는 다 같이 노래방으로 향했다.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동생과 언니, 흥만 많은 나와 수줍지만 잘 부르는 형부와 음치 박치 엄빠가 모였다. 백만 년 만에 노래방이었지만 재미있게 놀았다. 왠지 노래방 같이 놀고 나니까 진짜 형부가 우리 가족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와서 또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며 홈캉스 휴가가 흘러가고 있었다.



화요일


오전 ~ 오후

엄마 빼고 다 같이 늦잠 잤다. 사실 저는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하시는 거 알았는데 그냥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래도 일어나서 상 차리는 것 돕고 청소도 하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덜어냈다. 또다시 진수성찬이 펼쳐지고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고 수박과 포도 복숭아가 한 데 모인 과일상이 차려졌다. 배 터지게 먹고 비가 안 오길래 산책하러 잠시 나갔다 왔다. (더워서 금방 들어와서 이게 산책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 쨋든 그렇게 하니까 시간이 금방 흘러가 오후 2시가 됐다. 집에 간다고 준비를 하려는데 엄마가 떡볶이 해줄까? 한 마디에 모든 게 미뤄졌다. 엄마가 하는 떡볶이는 정말 맛있어서 밥을 먹고도 또 먹을 수 있는 정도다. 요즘 떡볶이 마냥 매운데 되게 옛날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또 걸쭉한데도 되게 깔끔한 맛이 난다. 떡볶이까지 클리어하고 집에 갈 준비를 마치니 4시가 거의 다 됐다. 언니는 김치와 고춧가루, 소금 등을 챙기고 동생은 김치와 시리얼을 챙기고 집에 갔다.


저녁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고 나는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거실에 에어컨 틀어놨으니 나오라는 말을 뒤로한 채 땀을 흘리며 내 방 책상에 앉는다. 부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부자가 되기를 꿈꾸면서 또 취업을 위해, 뭐라도 하는 척을 하기 위해서 그냥 약간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하는 습관인 거 같지만. 잡코리아를 뒤지고 다이어리 정리하고 하다 보니 저녁이 끝나버렸다.


 



내가 우리 가족이 계곡을 못가 아쉬워하며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홈캉스를 즐기는 사이.

우리나라에는 최장기간 장마가 이어지면서 무섭게 내리는 비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침수로 집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흘러나오는 소식에 때때로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리고 확실히 2020년이 작년보다 이상해진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뉴스의 소식에 깊이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뒤덮친 영화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굳이 이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도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다. 그냥 나로 인해 피해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평소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딱히 뭔가 달라지는 게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기사를 접하고 영상을 보아도 남의 이야기 일 뿐이다. 소설같이 느껴진다. 나는 그냥 휴가가 끝나버린 것이 아쉽고 당장 내일 일하러 가는 것이 귀찮을 따름이다.


 나이를 들수록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리 내가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을 한다고 해도 그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감정과 상황에 대한 느낌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말했던 것 같다.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고 아는 척을 했을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저 내 입장일 뿐이다.  나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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