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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Sep 09. 2020

출근 전 반성

 

날씨가 선선해지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급하게 긴 옷을 꺼내 입었다. 후덥지근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는 생각에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를 탓하진 않았다.


오후 출근인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컴퓨터를 뒤진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큰 소득 없이 시간에 쫓겨 밥을 먹고 씻고 나갈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또 나는 저축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월급을 위해 1시간이 훌쩍 넘는 출퇴근길을 오간다. 기본적인 4대 보험조차 해주지 않지만, 그 말조차 꺼내기 부담스러운 일자리다.  굳이 꾸역꾸역 다니는 이유를 꼽자면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말과 행동 때문이다. 그 자체가 너무나 꾸밈없고 순수해서 계속 나를 끌어당긴다. 그 순수함 속에 있다 보면 어린 시절 어른의 세상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이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은 나쁜 쪽이 아닌 건 확실하다.


그러다가 문득 열정과 순수함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진짜 열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되는 게 어렵다. 뭔가 열심히 해도 항상 뒤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순수함과 열정을 잃어버린 나는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내가 짧은 지식으로 학원에서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어 가르친다는 게 우습고 불편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정성을 쏟는다.


꼭두각시 같이 사는 게 지겨워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때려치울 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들어간 신문사에서는 기대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무의미함과 공허함 같은 감정에 휩싸여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들어간 학원에서는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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