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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Dec 13. 2020

나도 누나 하기 싫다.

한 살 차이 동생도 동생인가??

며칠 동안 동생이 집에 와서 함께 있었다. 이번에 아버지의 건설현장에서 현장 일을 돕겠다고 2주간 집에 머물렀다. 나는 동생이 돈이 떨어지니까 그냥 용돈벌이 하러 온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본가와 같은 지역에 있는 대학에 갔지만 놀다 보면 버스가 끊긴다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방을 잡았다.

( 남자애들이 원래 그런가...? 잘은 모르겠지만 )

그리고 얘는 항상 가족보다 친구가 먼저였고 우정과 사랑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멋짐?이랄까...  나름대로 가치관이 뚜렷해서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다. 한 살 차이가 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사고의 회로가 작동하는 동생이라 부디... 그냥 싸우지 않고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엄마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을 맞이해 귀찮다 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인다. 아들이 좋아한다는 식혜를 하고 팥죽을 끓인다. 마트에서 8시간씩 일을 하고 돌아오면서도 장을 봐서 무겁게 뭔가를 들고 오신다. 혹시 밥 먹기 싫으면 간식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잘 먹지도 않는 초코파이와 과자를 잔뜩 산다. 아빠도 동생 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 동생이 늦게 들어온다고 혼났을 때 딱 한번 아빠한테 반항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쫌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나는 엄마랑 아빠가 그러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 동시에 동생이 얄미웠다. 일찍 집 떠나서 사는 게 불쌍하지도 않냐는 엄마의 말이 나를 더 짜증 나게 한다. 얘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가끔 큰일이 있으면 훈수질을 멈추지 않는다. 나가서 잔소리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왜 돈 떨어지니까 아빠 도와준다는 핑계로 와서 왕 노릇을 하는지 진짜 재수 없고 짜증 났다. 한 살 차이도 누나라는 말을 들으며 잘해줘야 한다는 말에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수긍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싫다고 불공평하다고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환멸이 났다. 



그래도 입을 다물지 말아야지. 다짐한 날지 벌써 3년이 지났군. 



사실 나는 동생보다는 얘를 감싸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이 더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4남매 중 막내아들이라는 타이틀은 너무나 막강했다. 우리 집 7대 독자는 할머니의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와서 너무나 귀하신 몸으로 자랐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좋은 거 싫은 거 의사표현 확실하게 하는 것부터 나랑 달랐다.



나는 자라면서 불평 없이 뭐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주변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에 나를 맞춰왔다.


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서다. 남들 따라 시작한 시험, 내게 가장 큰 공부 동기는 보란 듯이 합격하고 멋지게 그만두는 것이었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병신 같았다... 일을 시작하면 막상 그만둘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생각으로 절대 합격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합격을 한다한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데,,... 뭐.. 이런저런 생각에 그냥 그만뒀다. 


나를 위한 무책임한 선택의 시작.  


시험을 그만두면 인생이 망할 것 같았지만 막상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잘 살고 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늦었지만 나는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시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습관처럼 다들 식탁을 떠난다. (내가 밥을 조금 늦게 먹기는 하지만.. ) 그렇다고 상을 치우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동생은 안쓰러운 게 아니라 평범한 거다라는 의견을 말한다. 


이런 얘기에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없는 듯이 살아왔는가를 깨달았다.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는 비난과 함께 누나면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래도 잘못된 걸 인지하고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하다. 누가 누나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한 살 차이가 뭐라도 되는 듯 말하지만 그딴 거 다 필요 없으니 그냥 누나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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