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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Dec 20. 2020

영화, 어느 가족

약간의 스포 있습니다.  가족 설명 정도 (?)

어느 가족 포스터


영화를 봤다.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해서 골라본 영화. 보는 내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달리 보였다.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유난을 떠는 게 다 뭔가 싶다가도 또 그렇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다가 가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엄청난 반전은 없지만 볼만했던 영화다. 타인을 향한 얄팍한 동정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생각이 드는 영화다.  






영화 속 '어느 가족'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필요에 따라 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된다. 할머니가 오래전 사별한 전남편 덕분에 받는 연금이 이 가족의 가장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이다.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는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엄마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며 쓸만한 물건을 탐색한다. 처제는 업소에서 몸을 팔고 할머니는 도박이 취미인 가족.


이런 가족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과연 나는 편견 없이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 절대 아니겠지. 나도 고정관념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일 뿐이니까. 그래서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불편했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도둑질과 저질스런 농담에 눈살이 찌푸려지다가도 그냥 이게 생활인 듯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 가족을 보면 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길거리에 아이가 있었다. 불안해하는 눈빛과 헝클어진 머리, 빠짝 마른 몸으로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배고픈 듯 낯선 이 가 주는 크로켓을 받아먹고 집까지 곧잘 따라간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문 앞까지 찾아갔지만 부모의 싸우는 소리만 문 밖에 울려 퍼진다.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소리에  다시 애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렇게 포스터에 나오는 가족 구성원이 모두 완성되면서 영화의 도입부가 끝난다.



예상했겠지만, 여기 가족 구성원은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버려지고 도태된 사람들은 배신과 거짓에 익숙해지고 규칙을 비웃는다. 이들에게 죄의식이 사라진 지는 오래전 일이다. 필요에 의해 구성된 가족.

하지만 영화를 보면 정말 단순히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해서 가족이 된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진심인 듯 거짓 같은 대화 속에서 헷갈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감독이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는 자체로 이들은 이미 진짜 서로에게 진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헷갈렸던 건 일반적인 사랑에 익숙해 소외된 이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에 회복할 수 없는 불신과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사랑에 서툴다. 이들이 사회의 편견과 일반적인 시선에 대해 얼마나 염증을 느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부조리를 느낀 순간 우리의 삶은 흔들린다. 뿌리째 흔들린 삶의 끝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여 가족을 만들었고 이들은 누구보다 서로에게 진심이었다. 여러 가지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행위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이렇게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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