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가납사니

아버지

by 권일상

"아들, 엄마가 백숙해서 챙겨가니깐 식사하지 말고 좀만 기다리고 있어"

"아니에요 먹을 거 많아요 번거로우시니 오지 마세요"

"이미 출발해서 반넘게 왔으니 기다려"

"하..그럼 제가 내려갈 테니 올라오지는 마세요. 걸어 올라오기 힘드세요"

"아니야 일하느라 요새 힘든데 쉬고 있어"

"아버지, 그냥 제가 내려갈 테니깐 꼭 연락하세요"

"...알겠다"

"꼭 연락하세요"


그리고 5분 뒤 현관문 소리와 함께

아버지께서 역시나 집에 올라오셨다


우리 아버지다

절대 변하지 않는 우리 아버지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왜 올라오셨냐며 툴툴거렸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래왔다

하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부터가 먼저인 건데

알면서도 잘 안된다


왜인지는 모르게 매번 있었던 오늘같은 일이지만

아버지에 대해 그냥 글이 쓰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본인얘기는 거의 안 하셔서

어머니께 들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바라봐왔던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시절

선으로 만나셨다고 한다

그 당시 두 분 다 늦은 나이인 아버지가 32살 어머니가 29살에 만나셨고

흥미로운 점은 3번째? 만남에서

아버지가 계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참다못한 어머니가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아버지가 그 기다리는 칸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 뒤로는 뭐..


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시던 분이셨는데

어머니가 형을 임신하자마자 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을 낳을 때까지도

제대로 된 직업이 없으셨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아버지는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점잖고 왠지 모를 믿음이 갔다고 했다


사실 난 다른 이유도 알 것 같다

아버지는 좀 마르셨어도

188cm의 큰 키와 진한 이목구비를 가지셨다

뭐 어머니도 왕년에

소리를 할만한 정도의 외모셨으니


아버지는 화를 잘 못 내시는 분이다

안동 권씨의 선비정신을 가진 아니 그 자체이신 분


어릴 때 어머니에게는 확실한(?) 훈육을 받았다면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단 한 번도 우리 형제에게

그 흔한 사랑의 매조차 드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화를 낼 때도

약간 어설픔이 있는 그런 분이다


학창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안정감을 주셨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변함없이 말이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주지 않으셨고

남과 비교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으며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본인은 이해가 안가

반대를 하시다가도 결국에는 지지해 주셨다


20대 초에는 내가 부정맥 때문에

응급차를 타고나서

공황장애 생겨 새벽에

응급실을 몇 번 갔을 때도

집 근처 산으로 매일 가서

같이 걸으며 많은 얘기를 해주셨고 들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이겨낼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서도 내가 하려는 사업들에

조언 및 충고, 그리고 걱정도 많이 하셨지만

결국에는 지지해 주셨다

이 믿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힘이다


나의 가장 큰 울타리이자 버팀목

한결같은 아버지

오히려 너무 큰 사랑에 부담스러워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그래도 결국 어머니와 우리 형제가 다툼이 생기면

무조건 어머니편부터 드는 그런 아버지


한 번은 아버지에 물어봤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저희한테 잘해주실 수 있어요?"

"음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답은 간단했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줄 뿐이셨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이 뭔지 확실히 안다

아버지만큼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신은 없지만 말이다


70대가 다 되어가는 아버지는

두 개의 카톡 프로필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 형제의 어린 시절

두 번째는 풍경사진

그 프로필이 부끄러워 다른 걸로 하시라고 해도

웃으시면서 나는 이게 좋다는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의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보이시는 걸까

흠..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면 그냥 안아드려야겠다

아버지의 프로필 어린시절 형과 나(그 시절 유행했던 드래곤볼 베지터 머리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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