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르바이트 첫 출근을 했다. 간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돼서 기뻤다. 아무래도 요근래 외로웠던 것 같다. 만나는 일에 온갖 제한이 걸려있는 요즘에 드문 기회라서 유독 신이 났다. 우연히 겹치는 시간대의 모두가 동갑이었다. 그리고 둘은 원래 근무 시간보다 일찍 왔다. 매니저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커피 마시겠냐 물었다. 둘이 매장 한 쪽으로 사라진 뒤 물었다. 저분들은 왜 근무시간 전에 오냐고. 그냥저냥 스터디 카페 겸 사용하고 있는 거라 한다. 정말 우연히 같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서 이번주 내내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스태프 방에서 공부하는 게 되는 구나, 참 하나부터 열까지 신기한 업장이네 싶었다. 그러다 짐을 잔뜩 매고 온 둘이 나와 동갑이고, 어쩌면 내 동갑내기들은 누구나 준비했거나 준비하거나 준비 할 자격증을 이번주에 치러 간다는 사실에 순간 멍해졌다. 그렇구나, 자격증 공부가 당연해진 나이가 됐구나. 독서실을 끊고 입시 때처럼 공부하는 친구들도 꽤 있긴 한데 그런 소식은 SNS 너머로 들려와서 그냥 그런가보다에 그쳤었다. 그런데 오늘 세명의 99년생 중에 뭔갈 준비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작위 추출하여도 비슷할거다. 다들 컴활, 토익, 한국사 뭐 이런 걸 공부하고 있겠지. 다들 참 열심히 사는 구나 싶어져 멍했다. 나는,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는 않은데, 사회의 기준이 너무 열심인 거 아닌가. 이렇게 또 나는 기준 밖의 삶을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 하루에 대한 불만족은 그렇게 선득선득 뒷덜미를 스친다. 이런 걸 자격지심이라고 하지 아마. 그래서 잠깐의 휴게시간에 책을 읽었다. 단어장을 들고오긴 했지만, 도저히 그런 걸 들여다 볼 마음이 안 섰다. 그냥 읽던 책을 펼쳤다. 30분의 휴게 시간은 단편 하나를 읽고 느끼기에 알맞다. 그런 알맞음은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 잡아줘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카운터로 복귀했다.
교대로 휴게가 있는 터라 매니저님의 휴게시간에 다른 아르바이트 생과 둘만 남게 됐다.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직전에 학교 얘기가 나와서 그 얘기로 시작했다. 휴학하셨냐고. 네, 그런데... 하고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입술을 꾹꾹 거리다 말을 이으셨다. 사실은 학교 얘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아, 그렇군요. 하고 그냥 넘길 셈이었는데, 그런 말을 덧붙이셨다. 그 얘길 하면 제가 자꾸 작아져서요. 이 다음 말은 조금 더 유쾌했던 것 같고 우리는 자연스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대화를 할수록 참 무해하고 솔직한 사람이란 생각에 친해지고 싶었다.
스스로의 최대 강점이 솔직함이라고 여겨왔는데, 오늘 그걸 정정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나는 내 추한 마음에 별로 솔직하지 못 하다. 슬픈 건 그냥 울 수 있는데, 추한 건 꾹꾹 가둬만 둔다. 그래서 듣기 거북한 말도 그냥 넘기고 불편한 순간도 대충 얼버무려 버린다. 질투가 많아서 별로 축하하질 못하고 저울질 하다가 내 성취를 깎아내리곤 한다. 그런데 이런 추악함은 아무데도 꺼낼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입을 닫는다. 그렇게 비운 말풍선을 마음 속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감정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니까 그런 건 아무리 좋은 향이 나도 거짓말이 섞여 있는 거지. 그런데 오늘 만난 분은 자격지심이란 단어를 머뭇 거리면서도 정확하게 발음했고, 그로 인해 불편한 화제라고 명시했다. 내게 그럴 용기와 솔직함이 있을까.
고등학생 시절에 <질투는 나의 힘>이 실린 문학 교과서를 닳아 빠지게 읽었다. 몸을 가득 채운 것만 같은 질투가 힘이라면 천하장사도 거뜬 할 것 같아서 였고, 그런 건 절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허구로 해소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쟁을 코앞에 둔 지금 또 다시 그 시가 얼핏 마음에 들어찬다. 이번엔 좀 다른 마음일 지도 모르겠다.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기대와 바람이 조금은 깃들어 있다. 그러면 나도 내 자격지심에 솔직해 질 수 있지 않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