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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May 25. 2017

"딸"의 성관계를 목격한 "부모"

이해와 사랑


성관계는 원래부터 감춰야 했고, 묻어둬야 했을까? 왜 우리는 사랑을 감추고 살고 있고, 사랑에 당당하지 못한 것일까?


나의 첫 경험은 10대 때였다. 당시 1년 정도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의 집에서였다. 우리는 둘 다 경험이 없었고, 육체적 사랑에 서툴렀다. 서로의 손만 닿아도 설레도 떨렸던 때에, 우리는 훌렁 벗고 한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귀가하신 아버지의 모습에 여자 친구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당시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경찰서에 가지도 않았고, 학교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뚜드려 맞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 새벽 3시까지 여자 친구의 아버지와 소주를 마셨다.


그날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은 모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육체적 사랑이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정신적 사랑, 육체적 사랑, 금전적 사랑.

먼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분류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사랑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런 사랑의 대한 계념이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있었다.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연애경험이 조금 있다 보면 연애 상담도 많이 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더 다양하고 사이코 같은 사람들의 예를 많이 듣게 됐다.


금전적, 정신적, 육체적 사랑.

일반적으로 금전적 사랑을 단순하게 '돈에 대한 사랑'으로 치부할  있는데, 상대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할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여행할 때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숙소도 찾고, 적절한 가격으로 흥정해 물건을 사는 그런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다. 자본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돈도  벌고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아하는 사람들이 능력 있는 남자다. 원시시대 때는 사냥을 겁나 잘하거나 집을  만드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였을 게다. 결국 ‘ 사람과 있으면 걱정이 없다.’ 하는 그런 사람이 ‘금전적 사랑 받는다.

 

다시 말해 꼭 돈(금전)이 아니라 능력이나 의지할 수 있는 믿음 같은 것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능력이 어느 정도 비례하다 보니 금전적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이성의 능력을 보면 뭐든 해 줄 수 있을 것 같고, 평생같이 의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정말 행복을 느끼는 사람. 이 마음이 “진실” 된다면, 존중받을 만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정신적 사랑은 대화가  통하거나, 마음이  맞고, 가치관이 비슷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느낄  있는 사랑이라   있다. 대화에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매력이 있다.


이런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은 서로 성장과정이 비슷하거나 미래의 가치관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 가까운데 사랑이 있다.”.


육체적인 사랑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 정말 잘 맞는 사람들 있다. 마음이 식어도 같이 자고 싶고, 한바탕 싸우고 잠자리로 화해를 하는 사랑이 있다(고 한다.).


정확히 어떻게 잘 맞아야 잘 맞는 궁합이라고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육체적인 사랑이 주는 영향이 큰 것은 확실하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 그 이상을 함께 지낼 사람(배우자)과의 잠자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직도 혼전순결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잠자리도 가져보지 않고 그런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을 말도 안 된다. 이제 이런 말은 구닥다리 표현일 뿐이다.


육체적인 사랑을 감춰야 하고 보여주면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잠자리를 그저 사랑의  종류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가 남자랑  한번 잤다고 걸레짝 마냥 취급을 해버리는 것은 정말 무식한 언행이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육체적 사랑을 음흉하게 만들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 자극적인 미디어에만 노출시켜 진짜 변태를 양성하는  아닌가 싶다.


이제 자식들이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먼저 콘돔을 챙겨주어야 하는 시대이다. 혼전 관계를 장려하라는 것이 아니다. 트라우마가 아닌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고등학교 때 여자 친구가 생긴 것을 알고 손에 콘돔을 쥐어 주셨다. 당시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웠지만, 이 행위에 대해 음흉한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게 됐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는 애인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님께 털어놓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부모가 먼저 다가가 오픈하고 숨기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여자 친구와 관계가 적발(?)됐을 , 여자 친구의 아버지께서 숨김없이 대화를 시도 했고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었기에 마음이 진정   있었고, 무조건 적인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관계에 대한 책임이나 무게를 느낄  있었다.


정신적인 사랑만을 완전한 사랑으로 생각할  있다. 나는  마음대로 사랑을  가지로 나누었고, 사랑은, 인간의 감정은 일방적 잣대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생각한다.


이성과 관계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고, 존중해주어야 하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어른들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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