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같은 ㅈ같은 생각에 대한 생각
세계여행 500일 차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거쳐 쿠바에 와있다.
체 게바라가 혁명을 일으킨 바로 그 나라다. 어릴 적부터 체 게바라를 좋아해서 기타에도 그려 넣고 자본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강의도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여기저기 했지만, 정말 가보픈 나라는 인도와 쿠바뿐이었다. 막상 쿠바에 와보니 인도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지저분한 길거리 더운 날씨, 모진 사람들, 특이한 삶의 방식 덕분에 생각이 참 많아진다.
가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이 세계여행을 해서 뭐가 남느냐는 질문이다.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해볼까 한다.
세계여행을 하면 뭐가 남나요?
나는 지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과일, 음식, 사람들, 건물, 옷들, 동물들을 보고, 수많은 세계맥주, 럼, 양주, 보드카를 마시고 취하고, 러시아, 폴리쉬, 중국어, 힌디어, 아랍어, 스페니쉬를 공부하고,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무중력으로 바닷속을 탐험하고, 히말라야 등반하면서 산의 높고 광활함을 느끼고, 자이살메르, 나미비아 사막, 우유니 소금사막을 다니면서 지구의 신비함을 느끼고, 아프리카의 대 초원을 달리면서 동물들의 세상을 관찰하고, 에티오피아 다나킬 화산과, 우유니 화산을 보면서 지구의 뜨거움도 느꼈어.
내가 지구라는 별에서 아등바등 외롭게 숨 쉬고, 생각하고, 걸으면서 봐온 것들이야. 회사에 처박혀 손가락으로 탐험하는 세상과는 사뭇 다른 경험 들이지.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가서 무엇을 얻어오냐? 배워오냐? 등에 대한 질문을 할 때가 많았어. 그때마다 어찌 대답할지 몰라 그냥 사는 거지 뭐 하며 뭉뚱 그렸었는데, 그런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막을 가본다고 내가 배우는 건 없어. 화산을 본다고 해서 내가 뭔가를 얻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며칠 연달아 술에 취해 방에서 늦잠을 자는 날들도 있고, 40도 이상의 더운 날씨에 지쳐 방에서 책을 보며 반나절을 보내고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자는 날도 있지.
그래도 하루하루 쫓기면서 살지 않아서 좋아.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바쁘게 살 거 아니냐고? 그건 가봐야 알지 않을까? 아무리 아니라 해도 미래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래도 이렇게 살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것 같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질 ‘나’인데, 내가 사라지면 없는 세상, 내게 없어질 세상인데, 세상이 하자는 대로 말고, 내 마음대로 해봐야지.
그러니까 누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뭘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거 하면 뭐하냐? 뭐가 남냐? 이런 것들 좀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을 때는 자기도 뭐가 남을지 뭘 배울지 모르니까.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응원해주고, 격려해줘. 빵이나 사주고 밥이나 사주면서 잘해보라고 해주면 끝이야.
그리고 혹시 여행에 꿈을 꾸고 있다면,
이제는 꼭 뭔가를 얻어야 하냐고, 꼭 뭔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냐고 말할 수 있어.
나는 이제 한 달 정도 더 여행하면,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 살 돈도 없어. 그래서 캐나다에 가서 일을 잠깐 하고 싶기도 하고, 남미 콜롬비아 식당에서 일하면서 살사춤을 배우고 스페니쉬를 익히면서 살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돈이 조금 모이면, 작년에 다쳐서 가지 못한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을까 생각이야.
그리고 한국에 간다면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할 거야.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부모님, 동생 세윤이, 친구들. 세상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숨을 쉬지만, 나를 웃고 울게 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60억 중에 몇 사람. 그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 거야.
꿈이 있다면 그냥 도전해봐. 무엇이 남을지 무엇을 배울지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과 다르게 살아 보는 거야.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면, 금방 일 년 지나고 연초 계획 다시 세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고,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려놓아. 그럼 새로운 것을 쥘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