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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Apr 27. 2017

어쩌다 보니 760일.

10개월 잡고 나온 세계여행.

호스텔, 카우치 서핑, 텐트 그리고 때로는 공원 벤치, 대학병원, 소방소, 그날 만난 현지인 집 등. 2년 넘도록 집 없이 살고 있는 나에게는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컸던 적이 별로 없다. 나는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다시 떠나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래서 인지 집이 주는 의미는 '하루 끝의 휴식', '짐 보관소'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India Varanasi

하지만 내게도 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복층에 햇살이 잘 비추는 집, 나무로 만들어 집에 들어갈 때마다 숲에 온 듯 냄새가 가득한 집, 냉난방 없이도 겨울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한 그런 집. 그런 집을 상상했었지만,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집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이집트 다합에서 지낼 때의 이야기이다.
from Walking Studio 이정현

누구나 한 번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일탈을 꿈꾼다. 당연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을 꿈꾸며, 각자의 공허함을 쇼핑, 술, 섹스, 여행 등으로 자위하며, 무료한 자기 자신을 달랜다. 그런 소소한 일상이 그리워 질 때 여행자들은 이곳 다합에 모인다.


오랜 방황과 고독에 여행자들은 사람이 그립다. 이 곳에서는 한 달 이상 집을 빌려 살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많다. 그래서 고작 열댓 명의 한국인들이 가족처럼 모여 산다. 우리는 딱히 하릴없는 하루 일과를 같이 보낸다. 


나 또한 정착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매일 숙소를 옮겨야 하는 것도, 항상 어딘가를 향해야 하는 것도,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하는 것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사람 냄새를 맡으며 익숙함과 무료함을 즐기고 싶었던 때였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만들어 먹고, 다이빙과 수영을 하며 오전을 보내고, 오후엔 카드나 체스 판을 들고 친구 집에 간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이, 물론 약속도 없이 해변을 걷다 보면, 매일 가던 카페에, 또는 누군가의 집에 삼삼오오 모인다.


하루에 마무리는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하루 종일 한일이 없는 자신들을 자랑하거나 한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모두들 그런 소소한 일상을 원했던 것 아닐까?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워질 때쯤 여행자들은 또다시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난다. 

다합은 세계 3대 블루홀 다이빙 성지로 꼽힌다. 나는 계획에 없던 다이빙 보조강사 과정을 하며 호스텔에서 지내게 됐다. 호스텔은 1,2층이 나뉘어 있고, 작은 옥상이 있었다.


옥상은 푸르르고 광활한 바다와 노란 햇빛으로 가득 찬 사막이 만나는 지점 경계에 있었다. 매일 밤이 되면 저 멀리 들리는 파도 소리와 끝없이 반짝이는 별빛들이 만나는 경계가 됐다.

옥상 주변엔 높은 건물이 없어서 가만히 서있으면 푸른 바다와 해안선, 사막과 모레 산, 그리고 다닥다닥 줄지은 작은 집들과 카페, 술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에메랄드색 바다와 사막 사이 해안선의 일출과 일몰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었다.


한편엔 정강이 높이의 나무 식탁 3개, 그 주변엔 매일 아침 햇빛에 달궈진 따뜻한 방석과 베개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식탁과 방석, 배게 몇 개가 전부인 곳이 집이 되어 버린 이유는 첫날밤 본 별 때문이었다. 수 많은 별들이 환하게 빛나 옥상을 밝혔고, 그렇게 샐 수 없이 많은 별을 본 적은 인도에 자이살메르 사막 이후로 처음이었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빈다는 것은 정말 웃긴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별똥별을 다섯 번은 볼 수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덕에 방석을 깔고 침낭을 덮으면 별을 보며 잘 수 있었다.

오전에는 다이빙을 하거나 수영을 했고, 오후엔 친구집에서 밥을 해먹거나 해변을 걸어다녔다. 오후 4시쯤, 날이 서늘해지면 나는 옥상에 올라와 모레 쌓인 배게를 탁 털었다.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을 옥상에서 보냈다.


의자에 기대 누워 끝없는 바다를 보며 글을 쓰거나,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해가 지면 혼자 기타를 치며 와인이나 맥주에 취했다.

언제든 누구든 옥상으로 올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옥상은 나의 장소였다. 언제나 나는 옥상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 옥상은 3달간 지낸 집이었다.


천장도 없고, 벽도 없고, 집이라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별을 볼 수 있었고, 밤새 들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그리던 집과는 다른,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언제든 누구든 허락 없이 들어와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옥상은  마당이 있는, 숲 냄새가 나는, 복층 등 내가 가졌던 그런 편견들을 부숴버렸다. 밤하늘이 천장이 됐고, 아침 햇살이 알람이 되어, 가장 높고, 가장 넓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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