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일간 세계여행 한 달간 한국
한국에 잠깐 있던 한 달 동안은 ‘여행의 시작은 버리는 것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시간이 될 때는 이태원이나 인사동으로 나가 길거리에서 팔찌를 팔았다.
출국 4일 전, 강연을 하기 위해 원주에 가야 했다. 원주에서의 강연은 최대 180명이 듣는 강연으로 PAY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900일간 여행을 하다 잠시 들어온 일정이었기에 한국에서 아버지를 만날 시간이 넉넉지는 않았다. 귀국 후 3번째 만남이었다. 첫 번째 만남엔 함께 찜질방을 다녀왔고, 두 번째에는 같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원주로 가기 전 30분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보러 갔다.
30분은 시간을 냈다기엔 좀 부끄러운 시간이므로, 들렀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았다.
흔히 있는 부자간의 의사소통 오류로 아버지는 아들이 밥을 먹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2인분을 차려놓았다. 나는 아버지 집에 가기 직전 밥을 먹었기 때문에, 식사를 거절했고, 아버지는 혼자 식사를 하셔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가질 수 있던 삼십 분 중에 이십 분 동안 티브이를 보며, 대화 없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힐끔거렸다.
아버지 집에 오기 전에 먹은 식사 때문인지 입이 텁텁해 화장실에 가서 가글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어찌 보면 매몰차게 미련 없이 아버지께 말씀을 건넸다.
“아빠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가기 전에 다시 못 올 것 같아”
뱉고 나니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외국에서 또 보겠지.”
이번에 출국하면 최소한 일 년은 볼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
아버지는 한마디 말씀 없이 문 앞에 서서 내 발 주변 땅만 바라보셨다.
그러다 슬쩍 눈이 마주쳤고,
차곡차곡 담아두었던 마음은
찰랑찰랑 흘러넘칠 듯, 말 듯
아버지의 눈가를 적셨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마음이셨을까.
닫히는 문을 잡고 다시 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등을 안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상대적으로 작아진 어깨가 내 품에 속 들어왔다.
마주 보고
포옹하고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한참 동안 서서 마지막 눈 맞춤을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자
성급히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고 나는 뒤돌아서 하늘을 보았고,
아버지는 문을 잠그시며 언제나 그랬듯이
울컥 이는 마음을 다시 꾹꾹 눌러 담았다.
왜 그때는 고작 밥 한 수저라도
함께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서른 즈음에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짧은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