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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Sep 16. 2017

아무도 모르게 자고, 일어나 사라지는

스텔스 캠핑.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처음 와 본 땅에서 길바닥에 탠트를 치고 잔다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탠트에 들어가 있으면 온갖 것들이 온통 다 신경이 쓰여 잠이 벌떡벌떡 깨기도 한다.

멈추지 않는 클랙슨 소리, 쌍라이트 불빛, 찢어대는 개들, 벌레소리들, 나뭇가지에 탠트가 스치는 소리까지도 신경이 곤두선다.

돈을 아낀다고 터키 온 첫날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예약한 숙소가 없었다. 주인도 없고, 주소도 잘못되어 있었다. 호스트는 연락을 두절했다. 이미 입금은 된 상태이었으므로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 다른 숙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미 사람이 찾거나, 너무 늦어 오늘은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Air BnB를 예약할 때는 후기 확인이 필수입니다.-)

터키는 Booking.com 또한 블락이 걸려있어서, 숙소를 찾는 방법은 직접 걸어 다니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였다.


저녁 8시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즈음부터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은 시내 중심지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떨어진 예를 들면 경기도 권 같은 곳이었는데, 숙소는 걸음으로 약 5분 거리에 한 개씩 정도 있었고, 그 시간엔 이미 모두 만실이었다.

이제는 다시 중심가로 가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8만 원짜리 호텔에서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날 무전여행할 때를 떠올리며, 캠핑할 곳을 찾았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캠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캠핑장에 자리값을 내고 캠프파이어를 하는 캠핑이 아니다. 늦은 시간에 몰래 탠트를 치고 새벽에 일어나 사라지는 스텔스 캠핑이다.

스텔스 캠핑은 스텔스 전투기가 유례인데, 스텔스 전투기 비행을 감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잠을 자고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캠핑을 스텔스 캠핑이라 한다.


나는 스텔스 캠핑을 위해 주로 가로등이 없는 큰 공원이나, 공사장 뒤편, 버려진 주차장 등을 이용했고, 혹시나 캠핑이 실패하는 경우를 대비해 주변에 큰 대학병원이나, 소방서, 주유소 등을 검색해뒀다. 대학병원에서는 밤새 환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숙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 묻혀 같이 잘 수 있었다. 소방서나 주유소는 밤새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노숙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점심때 먹은 기내식 이후에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럴 땐 세계적인 프랜차이즈가 최고다. subway에서 4500원짜리 콜라, 샌드위치를 시켰다.

내가 잇던 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병원이나, 주유소, 소방서가 없었다. 최소 30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고, 보험도 재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주변에 공원은 많이 있었다.


그 공원들을 모두 둘러볼 생각으로 로드뷰를 한 번씩 확인하고, 거리를 체크했다. 마음에 준비가 끝나고, 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만보기가 10000을 딱 찍었다. 하루 종일 비행기에 앉아있었는데도, 그 이후에 걸어 다닌 거리가 꽤 된다.


체크한 공원을 모두 돌아다녀봤지만, 나무도 많이 없고, 나무가 있더라도 너무 탁트여 스텔스 캠핑을 할 만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공원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했던 언덕이 있는 넓은 잔디밭이 떠올랐다. 큰 도로 바로 옆에 있었지만, 나름 사각지대에 탠트칠 자리가 있어 보였다. 그쪽으로 갔다.

 

텐트를 치기 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동물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변에 동물의 배변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없다.

개인 사유지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면 곤란하다. - 모르겠다.

노숙자들이 모이거나 술을 먹는 장소일 수 있기 때문에 깨진 병이나, 캔 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없다.

탠트가 잇는 곳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 보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탠트를 치고 밖에서 한번 확인을 해야 한다. 자동차 쌍라이트가 잠깐씩 비칠 때를 제외하고는 탠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탠트를 치고 차도 쪽으로 나와 잠깐 시간을 보냈다.

지난 내 모습들과 오늘의 내 모습 그리고 앞으로 무얼 하고 지낼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설레면서도 쓸쓸하다.

900일간 세계여행 그리고 잠시 머문 한국, 그리고 다시 외국 땅에 와 있는 내 모습이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는다. 마치 한국에 있던 한 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주변 환경이 통째로 바뀌어 버리니 남는 건 허전한 마음뿐이다.


탠트 속으로 속 들어가니 그 넓던 세상이 코앞에서 뚝 끊긴다. 다리를 쭉 뻗으면 그 끝이 살짝 닿는다.

그래서 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 벌레소리 크랙슨소리 발자국 소리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인터넷도 없고, 불을 켜면 밖에서 보이기 때문에 일기를 쓴다거나 책을 읽는 짓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오지는 않을까. 싶다가도 "어차피 죽지는 않을 테니"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탠트에서 나온 시간은 해가 뜨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 4시 30분 즈음이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고 많이 피곤했지만,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계속해서 꿈을 꿨다.

꿈속에선 한국에 있을 때, 여유 있게 시간을 내서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이별을 했다.

아직 한국이었고,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 그때마다 잠에서 깼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면 또 다른 친구가 나왔다.

잠에서 깰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한국이 그리운가 보다.

 

@kwonse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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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터키 시탤라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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