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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르게이 Nov 01. 2017

우연의 반복은 인연이다.

세르게이 연재 일기_산티아고

<Letro de Ravaga> D+4 44.6km/ 88,988STEP


정지.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아파왔다. 때마침 남자 다운 척하는 남자들이 아킬레스건이 다쳐서 한동안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쫄았다기 보다는 이런 종류에 일에 오기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좀 쉬면서 다리를 회복하고 천천히 가는 게 내 여행 방침과 잘 맞는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하루를 더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24시간이나 되는 넉넉한 여유에 마음이 이렇게나 편할 수 없다. 며칠간의 일상은 장소만 바뀌었지 매일 반복적이었다.


7시 30분에 일어나 8시부터 걷기 시작한다. 오후 2시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오후 5,6시까지 책을 읽거나 기타를 쳤다. 저녁을 먹은 후에 잠시 일기를 쓰거나 산책을 하고, 밤 10시 즈음 잠에 들어 7시 30분에 일어난다.


사실 걷는 것 이외에 하는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지만, 그런대로 매일매일 꿀잠을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곳 동네 노인들은 BAR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했다. 동네 노인들이 다 모여도 자리가 남들 정도로 BAR가 크기도 했지만, 그 만큼이나 작은 마을이었다. 솔직히 그들이 무슨 벌이로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때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매일 나누는 똑같은 인사가 가끔은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활짝 웃는 얼굴에 새겨진 깊게 파인 주름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특히 노인들이 툭 던지는 미소와 ‘올라~’라는 인사가 참 듣기 좋고 보기 좋다.


이따금씩 오랜 세월을 타고 전해지는 고마운 선물로 느껴지기도 했다.


 

보통 이런 건 인연이라고들 하는데, 내 생각엔 성향이 비슷해서 며칠씩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검정 천과의 인연도 그 중 하나였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아무튼 이 4 총사 노인들도 벌써 3번째 같은 숙소를 쓴다. 아마도 우리는 가장 싼 알베르게를 쓰는 류일 것이다.


노인들은 모두 같이 온 건지 따로 와서 만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4총사가 같은 알베르게에 묵고, 걸을 때는 모두 따로 걸었다.


그들은 늙었다. 백발노인들이 배는 은근 툭 튀어 나왔는데 참 잘 걸으신다. 최근 3일간 그랬으니, 아마도 매일 같이 20km씩는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시작은 2시간이나 먼저 시작된다. 매번 내가 일어나면 그들은 이미 출발하고 없었다. 그들은 여유가 있었고 부지런했다. 그리고 그들의 배낭엔 짐이 별로 없었다.


내가 숙소에 도착해 책을 읽거나 잠시의 여가를 보낼 때, 그들은 코를 골며 낮잠을 잤다. 그들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코골이 소리를 냈다. 밤에 고는 코골이가 미안해서 미리 골아 두기 위해 였을 것이다. 그들의 배터리는 오래됐기 때문에 수시로 충전을 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4 총사는 낮잠을 자고 에너지가 충전되면 방을 나갔다. 그들 중 하나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총총총 마을을 돌아다녔고, 그들 중 둘은 매번 가까운 바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나머지 하나는 아직 무얼 하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늙은이들은 참 부지런하고, 또 하는 일이 확실하다.


 


 

소소 한 하루 일과 드림. 운명은 없음.

쓴사람 - 권세욱 - facebook.com/kwonsewook

오타 사냥 - 강보혜 - @b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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