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연재 일기_산티아고
<Letro de ra Vaga> D+3 68.9km/88,988STEP
육체적인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가방 때문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온몸이 심하게 아팠다. 허리와 허벅지 엉덩이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왼쪽 검지, 새끼발가락에 고름이 생기고 오른쪽 아킬레스건에 고통이 느껴졌다.
아침숙소를 떠나기 전, 버릴 물건들을 쭉 둘러보았다. 누구를 더 버려야 할까. 두 친구가 후보에 올랐다. 스노클 장비와 외장 배터리. 둘 다 여행자들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다. 아끼는것들 중 하나였지만, 사실상 이곳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특히나 산티아고 길에서 스노쿨 장비라니.
그 두 친구를 버렸지만, 여전히 가방의 무게는 변함없이 무겁게 느껴졌다.버리기 전에는 버리기 아쉽고 아깝게 느껴지고 했는데, 막상 손을 떠나고 나니 오히려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산티아고에서 짊어진 가방은 내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 나의 욕심은 내가 짊어지어야 할 무게로 내게 돌아왔다.
내가 짊어진 것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페루에서부터 2년간 함께한 기타.
팔찌, 목걸이의 재료인 실타래들.
내가 찍고 프린트한 엽서 사진들.
2년간 내 집 역할을 한 텐트와 메트.
그리고 글을 적을 노트북과 일기장들.
이 모든 것들이 하루에 6시간씩 내 어깨를 짓 눌렀지만, 이 무게를 온전히 스스로 버텨야만 했다. 오히려 기타를 버릴 걸 상상하면 내 삶에서 기타가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들었고, 차라리 산티아고를 나중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앞 섰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택배 서비스가 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난 숙소에서 그날 도착할 숙소로 짐을 보내는 서비스인데 짐 하나 보내는데 약 5유로 정도 가격이다. 하루정도 가볍게 걷기 위해서 또는 어르신들에게, 아주 유용한 서비스이다. 나도 이 서비스에 대해 생각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답은 단순했다. 내 짐은 내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게를 줄이기보단 걷는 거리를 줄였다. 그럼으로써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있었고, 대신 아주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했다.
까미노에서 하루 10km를 걷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유로, 누군가에게는 패배로 해석됐지만, 나는 패배자가 되더라도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그러자 이 길이 정말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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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사람 - 권세욱 - facebook.com/kwonse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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