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여행을 하기 전 한국에서 얼마나 바쁜 하루하루를 살았던지.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 일어나 심리치료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수학 과외 2명 주에 4일, 주 2회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고, 그림을 배운다고 과외를 받았다. 주말엔 기타 동호회를 다녔다. 그러면서 지방에 사는 여자 친구와 연애까지 하고 있었으니, 하루하루가 끝없는 시간의 이어달리기였다.
그때뿐인가.
대학교 생활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에 5시간 남짓을 자면서 약 20시간을 꽉체워 살았는데도, 지치지 않았던 것은 주변에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앞만 보고 달렸는지.
뭐가 되고 싶어서, 어떤 미래를 그렸길래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쥐어 잡고 보냈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서 내 모습은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 6개월간은 한국에서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매일 일출을 보기위해 5,6시에 있어나 산책을 했고, 시간이 나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기타 연습을 하거나 무언가 할 것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재밌는 모습인가.
시간이 있다고 꼭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일랜드에 와서 새집에 이사온지가 두 달이 되었다.
집 앞은 작은 잔디밭이 있고, 그 잔디는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울타리로 둘러 쌓여 있다. 이 집도 슬슬 익숙해져 갈 때 쯔음, 잔디밭을 둘러싼 울타리 조차 돌아 가는 게 귀찮아져 버렸다. 항상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갈 때는 옛버릇이 나오는지 1분 1초가 크게 느껴진다. 결국 최근엔 작은 잔디를 돌아가는 게 귀찮아져서 가로질러 다녔다.
우연히 이 꽃 한 송이를 발견 했을땐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번에 찾으려니 잘 보이 지를 않았다. 잔디밭에는 꽃이 딱 한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 시인 반칠환
꽃도 동물도 인간도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소중하다. 근데 우리는 쾌락을 위해서 돼지를 사육해 도륙하고, 낙지를 산체로 씹어 먹으며, 우리들은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말은 변명은 지겹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도 상대적으로 거대한 존재에 비하면 잠시 존재했다 사라질 뿐이다. 그 시간에 잠시 의미를 가질 뿐, 사라진 후에는 먼지가 될 뿐이다. 하루살이, 파리, 모기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에 비교하면 인간 역시 잠시 생겼다가 사라질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다 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찮가지이다.
힘들고 상처받고 무시받고 지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이 괴로워도, 어차피 다 금방 지나가 버린다. 큰돈을 벌고 인정받고 상대를 짓 밝고 무너뜨려도 한때 일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달려봐도 우리는 다 똑같은 먼지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부족해도 괜찮다.
조금 더 못 나아도 괜찮다.
루저가 되어도 괜찮다.
우리는 좀 더 대충 살아도 좋다.
평생 경주 하며 이기려 애쓰기 보단, 천천히 산책도 하고, 앉아 쉬기도 하고, 가끔 달리기도 하면서, 꼭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단, 그냥 내 모습 부족한 그대로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것도 좋다. 그 부족하지만 나다운 모든 모습들이 형형색색 물감으로 남아 새로운 나의 모습을 그려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