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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공책 Oct 12. 2024

7.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오늘은 드디어 찾아온 혼자만의 공강 날. 정말이지, 지난 3주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시험 기간, 끝 없는 인턴십 지원, 두 번의 면접까지. 와중에 리암과 아홉 번의 데이트, 두 편의 영화, 네 번의 밤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밖에 있던 것 같다. 집순이에게는 너무 잔혹한 처사라서 오늘만큼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리라 다짐했다.  


 무엇보다, 오늘은 마지막 인턴십 면접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두 번의 면접 중 하나는 그 자리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고, 남은 딱 하나. 이 결과에 내 귀국 날짜가 달려있다. 사실 어떤 결과가 있을 지는 뻔히 알고 있지만, 돌아갈 날을 땅땅, 확정 받고 싶은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안내 메일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메일로 도착한 친절한 불합격 안내가 내게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미국은 당신을 더는 원하지 않습니다.’로 읽혔다. 그리고 이 편이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안될 걸 알면서도 매달리는 경험은 너무 피 말리는 짓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리암에게 언제 어떻게 이 얘기를 하느냐다. 분명 이건 내 몫의 불운인데 나는 내 감정보다 리암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내가 어쩐지 꼴사나워졌을 때 리암에게서 문자가 왔다.


- 우리 내일 등산 갈래? 

- 헉, 등산? :O 뜬금없지만 좋아. 가자.

- 그럼… 아침 9시에 만나는 거 어때? 데리러 갈게.

- 좋아. 근데 어떤 산이야? 많이 높아?

- 왕복 9마일 정도일 거야.


 왕복 9마일… 리암의 문자를 소리 내 읽었다. 나는 아직도 마일을 모른다.  



*



 어릴 때부터 녹색 빛을 좋아했다. 늘 바다보다 숲을 좋아했고, 꽃보다 풀을 좋아했다. 그러니 초록 눈을 한 남자에게 사족을 못 쓰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오늘 리암의 차를 타고 도착한 산은 초록을 사랑하는 내게는 정말 꿈처럼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리암, 여기 진짜 멋있다. 나무들이 엄청 높아”

“좋아해서 다행이야. 여기 나무들이 레드우드라고, 캘리포니아의 명물이거든.”


 우리는 레드우드가 가득한 숲길을 손 잡고 걸었다.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이었다. 


“저기 새 있다.”

“저기는 다람쥐 있어.”


 이런 유치한 대화들을 반복하다가, 새나 다람쥐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째려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우리는 정말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무에 가려져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땅마다 클로버들이 가득했다. 나는 쭈그려 앉아 클로버가 가득한 땅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 네잎클로버 정말 좋아해.”

“그래? 그럼 내가 기필코 찾아줄게.”


 그 이후 리암은, 지친 내가 리암을 멈춰 세우기 전까지 땅에서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걸었다. 


“아, 좀만 쉬었다 가자.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

“앞으로 1.5마일 남았어!”


 1.5마일만 올라가면 정상이라는 네 말을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아니면 얼마나 가까운지조차도. 어차피 나는 마일을 쓰는 땅에선 어떻게 가도 꼭대기까지 갈 수 없고. 


 우리는 평생 다른 단위로 세상을 계산해 왔구나.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이 땅을 사랑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일을 쓰는 너는, 킬로미터를 쓰는 내가 우리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까. 우리는 같은 감각으로 서로의 공백을 느낄까. 내가 느끼는 것보다 네가 느끼는 게 더 가까울까. 


 침묵을 뚫고 리암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 그러니까… 2km 조금 더 남은 거야.”

“어?”

“마일에 대충 1.6을 곱하면 km라고 하더라고. 외워 왔어, 마일 쓰는 거 미국 뿐이잖아.”


 누군가는 별것도 아니라고 할 일이 내게는 너무나 별거라서 나는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그럼 진짜 얼마 안 남은 거네.”

“응. 거의 다 왔어.”


*


 등산을 마친 우리는 자연스럽게 리암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내게도 꽤 익숙해진 미국식 커다란 원룸. 


“리암, 나 먼저 씻어도 돼?”

“같이 씻으면 안 돼?”

“어. 안 돼.”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던 내게 리암은 과장되게 슬픈 표정으로 다가와 안겼다. 


“있잖아, 네잎클로버 못 찾아줘서 미안해.”


 아직까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니. 솔직히 너무 귀엽다. 나는 괜히 더 버럭하며 답했다. 리암은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야! 뭐가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네잎클로버가 괜히 네잎클로버겠어? 찾는 게 이상한 거야!”

“그런데, 네잎클로버를 왜 좋아해?”

“음…그러게. 웃긴 게, 전 세계 어딜 가든 네잎클로버는 사랑 받잖아.”

“그렇지?”

“근데 생각해 보면, 네잎클로버는 그냥 돌연변이일 뿐이거든. 그 유별난 애를 모두가 그냥 사랑해 주는 거야. 너는 다르구나, 그래서 완전 좋다. 하면서. 아, 어쩌면 이래서였나 봐. 질투 나서, 부러워서 좋아했나 봐.”


  리암은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더니 내 얼굴을 마주 봤다. 그리고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물었다. 


“너, 네가 네잎클로버 같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니까 이건, 네가 돌연변이 같냐는 질문이다. 남들과 다른 것 같냐고, 그래도 그런대로 사랑받고 싶냐는 말이다. 그리고 이걸 내게 묻는 리암의 눈에는 분명 눈물이 고여있다.


“응.”


 오랜 시간 세상을 미워했다. 어느 땅에도 마음 편히 정착할 수가 없었다. 그놈의 정상 궤도 속에 제대로 속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늘 시끄럽고 유별난 인간이었다. 안전을 위해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 억울해도 입 닥쳐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떠돌면서 느낀 건, 도망친다고 달라지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거. 형태가 다를 뿐 세상은 어딜 가나 비극투성이. 하지만 이 땅에 와서 느낀 건… 사람들은 저마다 견딜 수 있는 불행의 종류가 있다는 거. 돌아다니다 보면, 더는 숨을 필요 없고, 애써 입 닥치지 않아도 되는 땅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땅에서는 싸울 힘이 생긴다. 


 그러니까…이 땅을 사랑할 수 없어도, 이 땅의 너는 사랑할 수 있다. 고작 땅이 뭐라고, 인종이 뭐라고 그걸 막을까. 나고 자랐지만 끝내 정 붙일 수 없었던 땅에서도 사랑은 질리도록 했는데. 정 붙일 시간도 채 갖지 못한 땅에서 너를 사랑하지 못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리암, 나 할 말 있어.”


 우리 연애할까. 이 말이 정말이지 목구멍 앞에서 멈췄다. 왜냐면 이런 걸 묻기 전에… 먼저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나,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돼.”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해도 이해할게.”


 아, 이래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



 리암은 울었다.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초록빛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더는 초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리암의 우는 얼굴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같이 울어줘야 할 것만 같은데 나는 어떻게 해도 눈물이 안 났다.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하루 종일 손 잡고 걸었어도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서로 좋아하는 것쯤은 고백하기도 전에 알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 이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장애물투성이일 현실을 의식하지 않고 사귀자는 말을 던지기에는, 우리는 둘 다 너무 겁쟁이였다. 무엇보다, 너를 사랑하지 못 할 이유를 끝내 찾지 못한 나조차도 그 말을 못했으니까... 우느라 아무 말이 없는 너를 원망할 수는 없는 거다.  


“있지, 리암. 어쩌면 우리는 겁쟁이인 게 아니라, 딱 이 정도의 마음인 걸지도 몰라. 너무 좋아도, 현실에 겁 먹고 도망칠 정도의 마음. 그 이상은 아닌 거야.”


 리암은 눈물을 멈추지 않고 딱 한 마디만을 덧붙였다.


“아직.”

“응?”

“아직. 그 이상은, 아직 아닐 뿐인 거야. 그… 그러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겁 안 먹고, 도망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게 될 거야. 아니, 할 거야.”


 아직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내게는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아름다웠다. 


“고작 럭비공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 시간을 달려오게 만드는 사람은 너 말고 없었어. 그리고 나, 네게 향하던 한 시간 내내 웃고 있었어.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네가 좋아. 근데 나, 그 감정들이 단 한 순간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어. 너무, 너무 자연스러웠어. 지원, 그래서 나는 알아. 내가 너를 기필코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거. 그니까, 그만하자는 생각은 하지 마. 부탁이야.”



 * 



 한바탕의 눈물 쇼가 끝나고 지쳐버린 우리는 리암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리암은 계속해서 이 모든 게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지원, 지금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잖아. 너를 만나서 정말 기뻐. 미련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하면서.


 “리암. 나랑 여행이나 갈래?”


 나는 장난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장난은 딱 5% 정도고, 진심이니까 제발 같이 가자고 말해라는 마음이 95%였다. 


“여행? 어디로?”

“샌프란시스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금문교에서 자전거 타기’거든. 어차피 종강하면 아파트 방 빼야 하니 있을 곳도 없고… 바로 한국 가기는 싫고, 인턴으로 더 지내게 되면 생활비로 쓰려고 모아둔 돈도 있고… 여행이 딱이야. 그래도 학생 비자라고 배려해 주는 건지, 만료된 이후에도 여행할 기간은 주더라고.”


 리암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야, 네가 안 가도 나는 갈 거야. 처음 미국 올 때부터 가려고 했어. 그니까 걱정하지 마. 부담도 갖지 마. 잊어버려! 내가 너무 큰 걸 물어본 것 같아. 우는 거 아니지? 울지마! 더 달래줄 힘 없어.”

“나 사실 무서워…. 무섭고, 슬퍼. 네가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슬펐는데, 여행이 마지막이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이해해.”


 침묵이 또 우리를 슬프게 할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웃으며 리암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이 겁쟁아!”


 리암은 내 가슴을 파고들며 답했다. 


“맞아, 난 겁쟁이야…그래도 나 좋아?”


 그리고 다시 초록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네 얼굴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니.


“어. 그래도 너 좋아. 그래서 좋아.”


*


 오늘도 먼저 잠든 리암의 얼굴을 본다.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을 보니 문득 모든 게 우스워진다.


“그렇게 엉엉 울만큼 우리가 특별한 사이였니.”


 자는 리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나 때문에 이렇게 우는 존잘연하남이 있다니… 분명 기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하다. 나는 안 울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일까. 끝까지 그놈의 관계 정립은 하지 않아서일까. 


 뭐, 이미 늦었다. 어쨌든 너는 내 앞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도 특별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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