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암, 불꽃놀이 보러 가자.
- 좋아! 근데 어디로?
- 디즈니랜드 근처. 근처에 주차만 잘하면 불꽃놀이 볼 수 있대.
그래서 우리는 금요일 오후 여섯 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리암은 예정보다 한 시간 늦었다. 그 동안 나는 문득, 네가 영영 안 오면 어쩌지, 했다. ‘지원, 생각해 봤는데 나 도저히 못 하겠어.’하면 어쩌지라며. 그래도 너는 왔다. 사실 알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든 올 거라는 거. 알면서도 걱정했다. 미래를 위해서 미리 했다. 어차피 우리는 오래오래 안녕이니까.
“늦어서 진짜 진짜 진짜 미안해.”
“또 늦으면 죽여버릴 거야.”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입맞춤은 길다. 너의 입맞춤은 유독 길다. 네가 내 품을 파고들 때면, 숨 쉴 수 없다고 느껴질 때면, 지금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너의 숨소리가 저절로 해독될 때면. 멍해진 머리로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그래도 불꽃놀이 전에 저녁 먹을 시간은 있겠어.”
리암은 긴 입맞춤을 끝내고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낭만 없어.”
나는 다시 고개를 꺾어 입을 맞췄다. 리암의 코는 여전히 커다랗고.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디즈니랜드 근처로 향했다. 디즈니랜드 근방은 그곳을 빠져나오는 차들로 가득했다. 하긴, 폐장 시간 근처에 와서야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 게다가 우리는 디즈니랜드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꽃놀이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디즈니랜드 근처에서 디즈니랜드 표 없이 차를 세울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똑같은 길을 빙글빙글 돌면서 빙글빙글 말을 돌렸다. 다 괜찮은 것처럼 빙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빙글빙글. 이 순간이 영원이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 빙글 빙글 빙글.
“너 진짜 맘마미아를 안 봤다고? 거짓말 아니고?”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해! 진짜 안 봤어.”
“와, 진짜 실망이다 리암. 우우.”
“오늘 밤에 같이 보자.”
“...그렇게 나오면 내가 또 할 말이 없네.”
“나, 네가 좋아하는 영화는 다 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다 보고 싶다니. 이런 말이 나 같은 사람한텐 꼭 고백으로 들린다는 걸 모르고 리암은 또 좋다고 웃는다.
“너, 그런 말 할 때 예고 좀 해.”
우리는 마침내 주차를 하고 디즈니랜드 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왜 다들 집에 가는 거 같지?”
“그러게, 좀 있으면 불꽃놀이 하는데.”
“헉, 지원… 불꽃놀이 취소된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근데, 취소보다 최악인 건, 소리만 들리고 불꽃은 못 보는 거야.”
여기서부터는 못 한 말. 리암, 나 원래 불꽃놀이 진짜 좋아하는데 오늘은 상관없어. 너랑은 아무 상관 없어. 못 봐도 진짜 괜찮다는 거야. 너랑, 지금 여기에 있잖아.
그래도 폭죽은 터졌다. 정확히 우리 머리 위에서 터졌다.
“우와! 지원, 우리 자리 진짜 잘 잡았다, 그치!”
신난 리암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아이처럼 소리쳤다. 리암이 무언갈 올려다보는 걸 처음 본 것 같았다. 리암은 기다란 왼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지지리 궁상맞게 디즈니랜드 바깥에 서 있는 일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나는 리암의 가슴에 기댄 채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문득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게 기억이 나버렸다.
우리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말을 나는 지금껏 어디에서도 할 수 없었다. 같이 걷던 공원에서 요상한 자세로 누워있는 다람쥐를 봤을 때라던가, 식당 앞에서 조그만 도마뱀을 발견했을 때에도, 우리는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 속에 서로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보면 아플까봐. 그래서 불꽃을 찍으며 나는 조금 울고 싶었다. 너를 기억하고 싶었다. 너와 나를 기억하고 싶었다. 우리가 우리로 기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찮아?”
리암이 물었다. 괜찮냐고 묻는 건 네게 습관 같은 거였다. 나는 단 한 번도 안 괜찮다는 답은 하지 않았고. 근데 리암, 사실 가끔은 크게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어.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어, 아무것도 괜찮지가 않아, 너는 괜찮을 수가 있어? 아닌 거 알아. 거짓말하지 마. 하면서.
“맘마미아 보러 가자.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야.”
*
리암의 집에서 리암의 소파에서 리암의 어깨에 기대 리암의 노트북으로 맘마미아를 봤다. 나는 너 없이도 계속 맘마미아를 볼 거다. 너 없이 볼 날이 훨씬 많을 거고, 너 없이 봐 온 날이 훨씬 많다. 근데 왜 꼭 너와 오래오래 함께한 것만 같을까.
리암은 기타를 꺼내들고 맘마미아의 OST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늘 울던 장면에서 눈물이 안 났다.
“리암,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파파이스.”
“그래, 그럼 옷 입자. 가져다 줄게.”
리암은 하나도 귀찮지 않다는 듯 일어나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나의 하늘색 후드집업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 내 팔을 들어 후드집업을 입혀주고, 모자까지 씌워준다. 그렇게 우리는 대충 옷을 걸치고 차를 타러 갔다. 파파이스는 리암의 집에서 차로 5분도 채 안 걸릴 거리에 있다.
“안돼! 문 열기 금지!”
리암은 조수석으로 향하는 나를 막으며 외쳤다. 그리고 달려와 기어코 차 문을 열어주고 난 뒤에는 안전벨트까지 매줬다. 가끔은 내 손으로 해야 더 편한 것들을 굳이 리암이 하게 둔다.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그냥 리암의 얼굴을 감상하면 된다. 이런 비효율이라면 얼마든지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암, 네비 찍어야 돼?”
“하하. 직진하다 두 번 꺾으면 바로야. 안 찍어도 돼.”
그리고 리암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을 내 손을 향해 뻗었다. 직진하다 두 번 꺾으면 바로인 곳에 가는 동안에도 내 손을 잡으려고 하는 거다.
“출발할게!”
내 손을 꽉 잡은 리암의 새끼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길고 가는 새끼손가락. 나는 이렇게 슬프게 생긴 손가락을 본 적이 없다. 엉엉 울어버리고 싶다. 그치만 빌어먹을 눈물은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고,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나는 그냥 차에서 뛰쳐내리고만 싶어진다.
“...괜찮아?”
말 없는 내 눈치를 살피던 리암은 차를 세우며 묻는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말한다.
“아니, 안 괜찮아.”
이왕 한 거 한마디 더 한다.
“나,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거야.”
그리고 리암은 무슨 버튼이라도 있는 것처럼 또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내 몫까지 리암이 다 울어준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울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너는 계속해서 내 몫까지 울어버릴 테니까, 네가 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울어서는 안 될지도 몰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파파이스 주차장에서.
“바보야, 그만 울어. 파파이스 주차장에서 우는 건 별로 안 이뻐.”
*
싸구려 음식, 오래된 시트콤, 비디오 게임 같은 것들로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다. 리암은 그걸 모르는 척했고, 나는 리암이 나를 끌어안는 숨소리 한 번에 모른척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미안해 나도 알고 싶지 않아. 미안해 나도 외면하고 싶어. 근데 난 그걸 매번 못 한다.
“리암, 나랑 여행 가자.”
나는 리암이 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갈 거야. 나를 위해서, 내 버킷리스트 지워주러 갈 거야. 깊어질수록 상처받을 거라는 겁쟁이 같은 핑계로 도망치는 거, 이제 안 해. 그러니까 너도… 정말 내가 좋으면 따라와. 도망치지 마.”
리암은 한 번도 침묵한 적 없었다는 듯이 씩 웃으며 답한다.
“따라갈게.”
리암의 빌어먹을 미소를 볼 때면 모든 게 영화 속 대사처럼 변해버린다. 그러니까… 분명 여행을 따라가겠다는 말이라는 거 아는데, 어디든 따라갈게라는 말처럼 들려. 그리고 리암은 덧붙인다.
“무섭지 않아.”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괜찮아진다. 네가 내 남자 친구가 아니어도, 내가 네 여자 친구가 아니어도 괜찮아, 무섭지 않아. 내가 한국으로 가버리고 우리가 다시는 못 보게 될지라도 괜찮아, 무섭지 않아. 기어코 여행까지 가버려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버려도 괜찮아, 무섭지 않아. 내가 평생을 기억하게 될 순간에 네가 껴버려도 괜찮아, 무섭지 않아.
너라서, 무섭지 않아.
*
어디서든 안녕은 가슴 아플 거다. 그게 다음 주든, 지금 당장이든, 긴 여행의 끝 이후이든... 이별은 어떻게든 올 거니까. 우리는 우리 말고도 또 이별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이별 여행 같은 낭만이 아니다. 며칠을 더 붙잡으려는 구질구질한 집착이다. 그 집착을 우리는 사랑으로 기억하게 될 거다. 그게 우리 같은 겁쟁이들의 사랑일 거다. 그게 내 사랑의 모양일 거다. 있는 힘껏 구차해지는 것만이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다.
있는 힘껏, 그래. 있는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