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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공책 Oct 12. 2024

10. 영원 발굴단


“아무튼…그렇게 됐어.”

“지원! 그럴 줄 알았어! 너무너무 축하해!”


 메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아, 그나저나 나 줄 거 있어.”

“뭐야 갑자기?”

“이제 다음 주면 나 여행 가잖아. 거기서 한국으로 갈 거니까… 이제 우리 같이 살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더라고. 게다가 요 며칠 짐 다 싸서 한국으로 택배 보내느라 진짜 정신없었는데 그거 도와준 것도 고맙고. 아무튼! 그거 말고도. 그냥…그동안 너~무 너무 고마웠어서, 선물.”


 나는 목걸이 두 개가 담긴 상자를 메이에게 건넸다. 반쪽짜리 하트 두 개가 세트인 목걸이로, 하나에는 ‘베스트', 다른 하나에는 ‘프렌드'가 쓰여 있었다. 어쩐지 하이틴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그런 목걸이였다. 


“어때 메이, 진짜 유치하고 귀엽지. ‘베스트’ 할지 ‘프렌드’ 할 지는 네가 골라.”

“와! 진짜 너무 좋아! 막 다시 중학생 된 것 같아. 고마워 지원!”

“편지도 썼어.”

“야! 너 진짜 왜 그래! 왜 이렇게 다 끝난 것처럼 굴어!”


 질색하면서도 기뻐하는 메이. 메이는 바로 목걸이를 목에 걸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원. 너 있지, 마지막인 것처럼 굴지 마. 우리 연락도 계속하고, 가끔 페이스타임도 할 거잖아. 아, 릴스도 맨날 공유할 거야. 나 이미 너한테 릴스 보내는 거 습관 됐단 말이야.”

“맞아, 마지막 아니지. 맞아. 아, 그걸 왜 잊고 있었을까? 이 미친 최첨단 시대에 그치? 진짜 바보 같아. 고마워 메이.”


 나는 메이를 꽉 끌어안았다. 


“그나저나, 샌프란시스코는 어떻게 가기로 했어?”

“차 타고. 리암이 운전하겠대.”

“대단하네~”

“데리러 올 거니까, 왔을 때 인사 해.”

“와. 드디어 인사 시켜주는 거야?”

“엉. 우리 이제 ‘오피셜’이잖아.”

“어우 야!”


 메이는 내 팔을 꽉 잡고 흔들었고, 우리는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깔깔 웃었다.



*



 드디어 찾아온 여행 날. 일어나자마자 관리사무소로 가서 퇴소 계약서를 썼다. 리암은 내가 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도착했고, 나는 메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리암 데리고 들어갈게. 


 그리고 아파트 문을 열었더니, 메이가 굳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지만, 메이는 컨셉을 포기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안녕, 드디어 만나네?”


 나는 그저 웃겼는데, 리암 입장에서는 조금 긴장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어, 안녕, 메이 맞지?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 만나서 반가워!” 

 메이는 소파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들었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나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메이의 두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야, 살살해 좀!”

“지원, 내가 지금 너를 어느 수상한 백인 남자랑 단둘이 여행 보내게 생겼는데, 살살할 수가 있겠어?”

“살살해 그래도. 그 수상한 백인 남자애 표정 좀 봐. 쫄아서 바들바들 떨잖아 애가.” 


 리암은 쫀 적 없다는 듯 표정을 고치더니 말했다.


“걱정하지 마 메이… 내가 잘할게.”


 메이는 그런 리암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의 순수한 한국 소녀 울리면 가만 안 둘 거야.”


 메이의 뜬금없는 단어 선택에 어이가 없어진 내가 실소하며 말했다.


“메이, 나 안 순수해. 알잖아.”


 수상한 백인 남자애가 덧붙였다.


“그리고… 지원은 안 울어. 지금까지 운 건 전부 나야…”


 우리는 셋 모두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미안해, 질투 나서 그랬어. 리암, 우리 지원이 잘 부탁해!”

“목숨도 바칠게.”

“그건 좀…”


 나는 피식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정말 내 흔적은 하나도 남지 않은 방이었다. 내 물건이라고 하면, 여행의 짐이 가득 담긴 그 커다란 갈색 백팩 하나뿐이었다. 리암은 나를 따라 들어와 당연하다는 듯 내 백팩을 등에 메며 말했다.


“짐 이거뿐이지?” 


 그 순간 문득, 그랜드캐년에 가기 전 짐을 싸던 순간이 겹쳐 보였다. 이 커다란 만큼 무거운 백팩은 늘 나의 몫이었다. 기억도 안날만큼 오래전부터 나는… 저 백팩 하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걸 꽉꽉 채워 어깨가 부서질 것 같아도 들고 다녔었다. 야속하게도, 어깨가 아플 만큼 오래 걸어야 하는 길에서 나는 늘 혼자였다.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등에 메는 남자가 있다. 


“응, 그거뿐이야. 아, 잠깐만.”


 나는 리암의 뒤로 가 백팩 속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여기 봐봐."


 리암은 바보처럼 웃으며 양손으로 브이를 했다. 나는 리암의 독사진을 먼저 한 장 찍고 메이를 불렀다. 그리고 리암의 옆으로 가서 팔짱을 꼈다. 우리는 이제 우리로 기억될 수 있다. 



*



“이제 갈게, 메이.”

“조심히 가!”


 우리는 리암의 차 앞에서 마지막 인사, 아 마지막이라고 안 하기로 했지. 그냥 인사를 했다. 리암은 눈치껏 먼저 차 안에 앉아있었다. 


“연락할게.”

“당연한 소리를!”


 호탕한 메이의 외침 덕분에 우리는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나는 메이를 다시 한번 세게 껴안고 차에 탔다. 사이드 미러 속 메이는 아예 작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슬퍼?”


 리암이 물었다.


“음… 슬픈데, 괜찮아. 마지막이 아니거든.”

“좋은 말이다.”

“그치, 메이가 말해줬어.”

“있잖아, 차 문 못 열어줘서 미안.”

“하하. 됐어. 그놈의 젠틀맨 컨셉 진짜.”


 엘에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차로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나는 수능 끝-개강 전이라는 황금 시즌에 감히 면허를 따지 않고 논 죄로, 지금까지도 면허가 없다. 그러니까, 이 긴 운전을 리암 혼자 해야 한다는 소리다…


“나야말로, 운전 못해서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원한다면 운전해서 뉴욕도 갈 수 있어. 그리고 걱정 마. 나 미국인. 이 정도 운전은 익숙해.”



*



창문 밖으로는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가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긴 여정의 끝이 보이고 있었던 거다. 리암은 중간에 잠깐 점심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들렀던 때를 빼고는 줄곧 운전만 했다. 하지만 힘든 티는 하나도 내지 않았다. 나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리암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주황색 노을빛을 받은 리암의 갈색 머리칼이 반짝반짝 빛났다. 대낮의 햇빛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반짝임이었다. 


“리암. 나, 세상 모든 빛 아래에서의 너를 보고 싶어.”

“응?”

“...그니까, 노을 아래의 너, 진짜 예쁘다고.”

“우리 잠깐 내릴까?”


 리암은 이내 근처 골목에 차를 세웠고 우리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작은 언덕과 숲 뒤편으로 갖은 높이의 건물들이 빼곡했다. 


“운전하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리암.”

“아니야, 괜찮아. 그나저나, 같은 미국인데도 엘에이랑은 느낌이 정말 다르지?”

“응, 진짜 달라.”


 나는 고개를 꺾고 몸을 360도 돌려가며 주위를 둘러보다 눈을 꼭 감았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켰다. 나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당연히 혼자 올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 수상한 백인 남자애와 함께, 심지어 그 수상한 백인 남자애의 차를 타고 왔다. 리암은 내게 다가와 내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우리 정말 행복할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같이 오자고 해줘서 고마워.”


 나는 리암의 얼굴을 두손으로 꽉 잡았다. 너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단지 내가 오자고 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다. 문득 그게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인지 생각했다. 


“리암. 우리 정말, 정말 행복할 거야.”


 태양은 여전히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바라본 리암의 반짝거림은 다른 무엇도 아닌 금빛. 아, 내가 찾던 단어가 바로 금빛이었다. 골든. ‘정확한 단어를 찾았어.’ 어쩐지 벅찬 기분으로 리암의 얼굴을 양손으로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너, 금빛이야.”


 리암은 대답 대신, 씩 웃더니 내 손을 꽉 잡고 저기 보이는 작은 언덕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말 없이 달렸다. 숨이 가빠올 때쯤 도착한 언덕 꼭대기에서 리암은 풀썩, 잔디 위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다 알 것 같다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이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



 우리는 한참을 언덕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앉아있었다. 노을은 어느새 저물었고, 도시의 반짝임이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리암.”

“응?”

“지금은 영원이 될 거야. 영원히 기억될 거야,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영원이 될 거야.”


 어떤 순간은 분명 영원이 된다. 그런 순간들은 어떻게 아냐고? 그때가 오면 그냥 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눈치채는 게, 이제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나 지금, 코끝이 찡할 정도로 행복해.”

“나도, 너랑 있으면 항상 그래.”


 우리를 슬프게 할 일은 찾아보면 어디에든 있겠지만, 손잡고 있는 지금이 영원이 되리라는 걸 알았는걸.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겠어. 어디가 됐건, 언제가 됐건. 너라면 다 괜찮은데. 그러니까 어떤 미래도 견딜 수 있다고, 아니 그냥 웃으며 마주할 수 있다고. 


 아무것도 없는 언덕을 달리다 우리가 무한하다는 걸 또 한 번 눈으로 봐버린 날. 손잡아버린 날. 그럼 이제 놓아버리는 게 더 이상한 거잖아. 그렇지?


 리암은 왼손으로는 내 손에 깍지를 끼고, 오른손으로는 내 눈썹을 만졌다. 나는 그 손의 온기가 너무 따듯해서 모든 게 녹아내려 버리는 것만 같았고. 리암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리암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해.”


 떨리는 리암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리암은 바보처럼 또 울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또 우냐는 핀잔이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나도 사랑해. 이렇게 확신한 적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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